그는 지금 사랑에 빠져 있다. 달콤한 연인은 현빈 같은 젊은이가 아니라 깨달음이다. 메릴랜드에서 32년째 보석상을 운영하는 그는 몇 년 전부터 아침마다 묵상하고 일요일마다 절을 찾는다. 보리수 아래 적묵(寂?)의 세계를 좇는 것이다. 메릴랜드 법주사의 신도회장도 맡았다. 법계(法界)의 번다한 잡사(雜事)마다 그의 손길이 필요하다. 불교는 그의 마음과 일상을 떠나지 않는다. 모두가 교회로 달려가는 한인 이민사회에서 그는 왜 절을 찾는 걸까. 뭘 위해 깨달음의 진리에 목말라 하는가.
-‘절에 다닌 지’오래 됐나?
미국 온지 41년 됐지만 내 스스로 절에 나온 건 얼마 안 된다. 친정어머니가 80년대에 법주사 처음 세워질 때부터 열심히 하셨는데 11년간 중풍으로 투병하시다 2005년 돌아가셨다. 젊어서부터 어머니 모시고 절에 다니며 은연중에 불교에 ‘세뇌’ 됐나보다. 어머니 가시고 효를 다 못한 게 마음 아파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왜 불법(佛法)에 빠져들었나?
별게 아니다. 사는 게 바쁘고 힘들다보면 누구나 부모님께 죄책감을 안고 산다. 불교엔 사후 개념이 있다. 49재와 망자를 위한 기도처럼 부모님 살아계실 때 다하지 못한 걸 뉘우치고 마음을 달래며 좋은 세상으로 가시게끔 하는 것이 불교의식을 통해 가능하다. 또 불교는 나란 존재를 그대로 드러나게 해준다. 진정한 ‘나’를 찾을 때 살아가는 이치가 즐겁고 헐겁고 자유스럽다. 불교는 이민생활의 무거움을 내려주게 해주었다.
-며칠 뒤면 석가탄신일이다. 불교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쉽게 설명이 안 된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석가모니를 신봉하는 종교가 아니다. 석가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었으며 평범한 인격으로 사시다 간 분이다. 차이가 있다면 깨달음을 통해 가장 완벽한 인간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 삶은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이다. 참다운 진리를 깨닫는, 불교는 그래서 인생의 길을 밝혀주고 제대로 사는 법을 알려주는 자기완성의 종교다.
-남편이 미국인으로 들었다. 불교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 텐데 반대는 없나?
남편은 바이블을 머리맡에 두고 잘 정도로 태생 기독교인이다. 그럼에도 아내의 신앙체계를 존중해준다. 내가 아침마다 돌아가신 어머니 방에서 향을 사르고 기도를 한다. 내가 바쁜 날에는 남편이 손을 깨끗이 씻고 나 대신 향을 사르고 기도를 해준다. 어머니 병 수발도 친자식보다 더 정성스럽게 해주었다. 절 행사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어떤 불교신자는 사회생활하면서 눈치를 본다고 한다. 마이너리티가 가져야할 편치 않을 숙명인가?
내 가게로 수시로 교회분들이 찾아온다.“아직도 교회에 안 나오세요?”그분들의 공격적인 전도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무래도 미국에선 기독교가 흥하다보니 많은 불교신자들이 사회생활과 대화중에 소외당하는 느낌을 갖는다고 한다. 하지만 잠재 불교신자는 많다. 여건이 따라주지 못해 절을 찾지 못할 뿐이다.
-불교적 가르침을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있나?
불교라는 것은 밥 먹고 잠자고 일하는 우리네 일상 속에 살아 숨 쉬는 진리다. 평소 덕을 쌓고 복을 짓는 게 중요하다. 어려움에 처한 이에는 자비를 베풀고 하다못해 작은 벌레 한 마리도 살려주려는 게 불자의 마음이다. 그게 내생(來生)에 더 훌륭한 삶과 연결될 것이다.
-다음 생(生)과 윤회를 믿나?
어머니가 평소 다음 생에는 미국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1주기 때 남편이 꿈을 꿨다. 유모차에 남자 아기가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바로 장모님의 얼굴이었다 한다. 나는 어머니가 남자 아기로 환생했다고 믿는다. 윤회인 것이다. 현생은 미래의 씨앗이다. 제대로 살아야 미래(내생)가 좋다.
-신도회장이다. 법주사가 갖는 특별한 장점이 있나?
법주사는 과거에 매이지 않는다. 허관 주지스님이 군종승(軍宗僧) 출신으로 법과 속의 틀에서 자유로운 분이다. 종법은 지키되 신자들의 편의를 생각해 유익한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었다. 불교 교양대학이 5회째를 맞았고 워싱턴에선 유일하게 위패를 봉안한 효행단도 운영 중이다. 매주 셋째 일요일 선망 부모님들과 호국영령을 위한 천도재를 지낸다.
2세들을 위한 한국학교도 곧 개교하며 특히 절의 대소사는 카페(cafe.daum.net/usabubjusa)를 통해 공지되고 피드백도 받고 있다.
신도회는 혼자 이끄는 게 아니다. 수석부회장인 법운 김종헌, 부회장인 관음심 홍성예, 총무인 일중 손승현, 교무인 활지 민주헌 씨 등 임원들이 적극 도와줘 큰 힘이 되고 있다. 대부분 아이비리그 출신의 훌륭한 분들이다.
-미국사회에서 불교에 미래가 있다고 보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을 “동양의 불교가 서양에 전해진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현재 미국의 불교신자는 300만 명에 이른다. 한인사회처럼 이민불교도 많으나 고학력, 전문직의 백인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직은 명상과 호기심에 기인한 바 크다. 앞으로 불교의 관용과 합리적 사상 체계가 미국인들에 크게 어필할 것이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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