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의 명성 잃고 있는 일렉트릭 기타의 원조
1940년대 남가주에 살던 리오 펜더는 라디오 수리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1948년 기타를 수리하고 개량하던 중 혁신적인 악기를 만들어냈다. 바로 일렉트릭 기타였다. 지미 핸드릭스, 조지 해리슨, 에릭 클랩턴, 브루스 스프링스틴, 커트 코베인 등 전설적인 음악인들의 전설적인 악기, 바로 펜더 일렉트릭 기타이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시대가 바뀌면서 펜더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며 음악적 취향도 변화
불경기 겹치면서 펜더 악기사 고전
펜더 악기사(Fender Musical Instruments Corporation)는 세계 최대의 기타 제조사이다. 펜더사가 1954년에 데뷔시킨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는 여전히 최고의 베스트 셀러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스트라토캐스터의 독특한 사운드는 로큰롤 그 자체를 의미한다.
하지만 로큰롤의 심장이나 다름없던 이 기타 회사도 전 같지가 않다. 미국의 많은 다른 제조업체와 마찬가지로 펜더도 어려운 경제 속에서 버텨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올해는 판매도 이윤도 감소했다. 결국 스트라토캐스터는 소비자들이 꼭 사야만 하는 생활필수품은 아닌 것이다.
애리조나, 스카츠데일에 본부를 둔 펜더사의 현재 소유주는 투자기업 웨스턴 프레시디오이다. 회사 지분의 거의 절반을 가지고 있는 이 투자회사는 여기서 손을 뗄 길을 찾느라 부심하다. 지난 3월 기업공개를 시도했지만 투자자들의 반응은 부끄러울 정도로 부정적이었다. 가격은 너무 높고 펜더의 발전 가능성은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것이 펜더가 맞고 있는 아픈 현실이다. 시대가 바뀌고 음악도 바뀐 것이다. 1950년대, 60년대, 70년대에는 일렉트릭 기타가 록과 팝을 주도했다. 오늘날에는 턴테이블 장치며 드럼 기계, 신서사이저 같은 것들이 힙합 류의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일렉트릭 기타는 제이 -Z, 케인 웨스트 등이 주도하는 이 시대에 과거 같은 마력을 잃어버렸다.
‘기타 히어로’ 같은 게임들이 기타에 대한 관심을 좀 부추긴 측면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과거 기타를 붙들고 음악에 심취하던 10대들은 이제 랩탑으로 작곡하는 일에 빠져 있다. 아코디언이 한때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악기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펜더는 막강한 브랜드이기 때문에 경제가 좀 어려워도 헤쳐 나갈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 불경기 중 모든 악기류의 판매가 감소한 후 회복이 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미국내 전체 악기류 판매고는 총 65억 달러였다. 판매가 최강세였던 2005년에 비해 13%가 떨어진 것이다.
요즘 팔리는 기타는 중국 등 해외에서 싸게 만들어진 제품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펜더 아티스트 ‘에릭 클랩튼’ 스트라토캐스터의 1,599달러의 몇 분의 1도 안되는 가격의 기타들이다. 펜더도 수년 전부터 해외에서 저가 기타들을 제조해오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급속도로 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회사가 발전을 하면서 이윤도 남기느냐가 큰 숙제로 남아있다. 이윤 압박은 이미 상당하다.
미국 악기업계의 또 다른 거대기업 기타 센터(Guitar Center)는 이미 재정적 압박을 벗어나지 못했다. 세계 최대의 악기 소매 체인인 기타 센터 역시 펜더처럼 투자기업이 운영을 맡고 있다. 미트 롬니의 기업이었던 베인 캐피털이다.
애널리스트들에 의하면 기타 센터는 펜더에 필수불가결하다. 펜더의 판매고의 대략 1/6이 기타 센터와 연결되어 있는 만큼 두 기업사이의 연대는 깊다. 펜더의 현 최고경영자인 래리 토마스가 과거 기타 센터의 최고경영자였다. 토마스는 지난 2007년 기타 센터가 한창 잘 나갈 때 21억달러에 부채를 포함하는 조건으로 회사를 베인에 팔았다. 그리고 나서 기타 센터는 계속 적자이다.
미국 음악계의 변화는 맨해턴의 ‘음악 거리’인 웨스트 48가를 봐도 확연하다. 타임스 광장 동쪽 블록인 이 거리는 한때 악기상, 음악연습실, 악기 수리점들의 고향이었다. 뉴욕에서 펜더 기타를 사려면 반드시 찾아가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지금 이 거리는 높은 임대료, 웹과의 경쟁 등으로 침체 일로이다. 1920년대 이후 이곳 터줏대감이었던 샘 애시조차도 웨스트 34가로 이사를 한다.
펜더가 변화하는 취향과 시장에 맞추느라 애를 안 쓴 것이 아니다. 기타의 대명사였던 이 회사를 창업주 리오 펜더는 1965년 1,300만 달러에 CBS에 매각했다. 그러나 이후 펜더는 거대 기업 구조 속에서 회사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느라 고전을 했다. 분기별 이윤 창출의 숫자를 맞추느라 경비절감 정책들을 도입했고 그것이 질적 저하를 가져오면서 판매고가 곤두박질 쳤다.
반면 이때 등장한 것이 일본의 야마하였다. 야마하는 저렴하고 품질 좋은 기타로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1980년 펜더는 총 판매고 4,000만달러에 1,000만 달러의 적자를 내면서 문제에 봉착했다.
“1970년에는 아무도 야마하 악기를 원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1980년 일본의 많은 다른 기업들과 함께 야마하가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라고 펜더의 전 최고경영자 빌 멘델로는 말했다. 그는 덧붙였다.
“솔직히 야마하 악기들이 미국 제품들에 비해 더 잘 만들어졌고 가격은 훨씬 쌌지요.”
결국 CBS가 손을 떼고 회사 경영이 바뀌는 과정을 거친 후 지난 2001년 웨스턴이 펜더 지분의 43%를 사들이면서 경영을 주도했다.
이후 이번의 불경기가 펜더에게는 결정타였다. 펜더를 비롯한 악기업계 전체가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다. 사람들이 도무지 무서워서 아무 것도 사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장이 얼어붙었다.
게다가 펜더의 순 판매고의 27%를 차지하는 유럽의 경제가 바닥인 것 역시 펜더로서는 어려운 상황이다. 멘델로 등 주주들은 펜더의 기업공개를 여전히 염두에 두고 있다. 펜더 지분의 4.8%를 소유하고 있는 멘델로는 그 자신을 비롯, 주주들이 개인적인 부를 염두에 두고 기업 공개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펜더를 사랑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업입니다.”
주주들은 펜더의 존속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강구할 생각이라고 그는 말한다.
<뉴욕 타임스 - 본보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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