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6 직전 장면정부 내세워 ‘국가개혁 배후조종’ 제안
▶ 존 F.케네디 도서관, 대통령집무실 공문서 공개
5ㆍ16쿠데타 당시 장도영(왼쪽)과 박정희(오른쪽). 얼마후 장도영은 국방부 장관에서 해임된 뒤 중장으로 예편했고 박정희는 대통령이 되었다.
1961년 2월24일까지 주한미군 원조사절단 부단장 역임 ‘휴 팔리’작성
한국상황 심각하게 전달, 갓 출범 케네디정부에 한국개입 계기 제공
미국이 박정희 한국 육군소장의 5.16 군사정변 발발 직전 한국의 ‘주권’(sovereignty)을 무시하고 장면 정부를 앞세워 국가 ‘청렴’(Integrity) 개혁을 배후조종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이 케네디 대통령의 개인비서를 역임한 에버린 링컨(Everlyn Lincoln)의 대통령집무실 공문서들을 최근 일반에 공개함에 따라 그 중 포함된 “1961년 2월 현재 한국의 상황”(The Situation in Korea, February 1961)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밝혀졌다.
■ ‘팔리보고서’ 요약
소위 ‘팔리보고서’로 불리는 이 보고서는 미국 국무부 역사기록국이 1996년 발행한 ‘미국의 외교관계 1961~1963년, 제22권, 동북아시아’편 한국판에서 첫 2 페이지에 담긴 ‘요약’(Summary)을 공개하고 본문 내용에 대한 해설을 참고로 덧붙여 존재가 널리 알려진 바 있으나 보고서의 요약을 포함된 총 18페이지 전문이 일반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국제협력처(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 ICA)의 기술지원계획(Technical Assistance Program) 책임자로 1961년 2월24일까지 주한미군원조사절단(United States Operations Mission, USOM) 부단장을 역임한 휴 팔리(Hugh D. Farley)가 워싱턴에 복귀해 같은 해 3월6일 케네디 대통령 국가안보담당특별부보좌관 월트 로스토(Walt W. Rostow)에게 제출한 이 보고서는 당시 갓 출범한 케네디 행정부가 한국 상황에 대해 획기적 전환책의 필요성을 점검토록 하는 계기를 제공한 중대한 문건으로 평가 받고 있다.
보고서의 요약과 전문 해설을 통해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만으로도 팔리는 이 보고서에서 한국사회가 부정·부패로 위기상황에 처해 있으며 국민들은 변화를 강력히 원하고 있지만 과거 이승만 정부처럼 부정·부패에 깊이 연루되어 있는 장면 정부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하다고 진단했다.또 이로 인해 한국에서 이승만 정부를 무너뜨린 4.19 기념일을 전후해 민중의 불만이 폭발할 것과 심지어는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하면서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했다.
이외에도 당시 서울에서 미국의 원조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주한미국원조사절단의 지도급 인사들이 장면 정부의 부패와 무기력에 대처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전제하고 미국정부가 고위급 인사를 주축으로 하는 특별사절단을 한국에 파견해 모든 현안 문제를 총괄하도록 할 것을 촉구했다.
■ 팔리보고서 전문
그러나 당시 팔리가 로스토를 통해 케네디 대통령에게 전달을 요청한 이 보고서의 전문은 당시 한국 상황을 알려진 것보다 더욱 심각하게 진단했으며 장면 정부의 전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이 취해야 할 적극적인 개입을 장면 정부를 앞으로 내세운 미국의 배후조종이라는 극단적 조치로 제안했다.
“1961년 2월 현재 한국과 국민들은 병든 사회(sick society)이다”로 시작한 이 보고서는 “정부, 언론, 교육, 교회, 기업 등 기본 기관들의 구조가 모두 부정, 부패와 사기로 관통돼있으며 실제로 한국인들은 마치 양상과 언행을 통해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꾸며대는 망상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팔리는 이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취해야 할 ‘행동’(action)과 관련, 한국의 주권 침해와 내정간섭이라는 문제가 제기될 것이 분명하다고 전제한 뒤 “정답은 우리는 이미 한국 정부, 그리고 아직까지는 한국 국민들의 요청과 기본 승인 아래 이미 간섭을 하고 있다”며 “우리는 주권이라는 단어의 울림에 우리 자신이 속아 넘어가게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는 그러나 한국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최대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우리의 조치가 한국의 주도로 비춰지도록 다루어야 한다”며 “(조치의 시기는) 자연스럽게 혁명의 다음이자 미완성 단계에 초점을 둔 1961년 4월19일이 적합하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미국이 구체적으로 취해야 할 조치로 ▲장면 국무총리 앞으로의 케네디 대통령친서, ▲(미국의) 조치를 주도, 설득, 설명할 한국 상황에 정통한 ‘특사’(Special Envoy) 임명, ▲한국인들과 세계 여론 및 공산당 선전 반응에 대응할 대외 언론 관계 자문 보좌관 1명, 재정 관리 및 조정 능력 자문 보좌관 1명 등 특사에게 2명 보좌관을 붙여 줄 것을 주문했다.
팔리는 대통령이 이 특사에게 한국 지원 프로젝트의 재정 및 운영에 대한 전권을 위임해 특사가 즉시 장면 국무총리를 설득해 학생과 학자들, 언론, 국회, 군부와 기업들의 대표들을 불러들여 한국에 청렴의 기치를 든 개혁을 시작하도록 하고 다음 단계로 능력이 있는 반정부 지도자들을 정부에 끌어들이도록 설득할 것을 권고했다.
그 후 단계로는 “전국경찰국장, 국가은행들의 행장, 새로운 감사관, 재무부 수주계약담당관 등 주요 직책에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인물들을 새로 임명토록 하고 4월19일부로 포괄적인 공무원 청렴 개혁을 선포할 것을 설득하도록 해 사실상 특사가 장면 국무총리를 움직여 미국이 한국의 개혁을 배후조종하는 행동조치를 내놓았다.
팔리는 보고서에서 끝으로 “만일 이 같은 노력이 실패하고, 장면 정부가 무너지면 최악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과 같이 군사정변이 일 것”이라며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미국은 간섭하지 않을 것이고 한국은 안정될 것”이라고 예측, 경고하기까지 했다.
■‘팔리보고서’에 대한 반응
비밀해제 문서들을 통해 이미 알려진 것과 같이 ‘팔리보고서’는 당시 국무부와 백악관을 비롯한 주요 관련 기관들과 관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주한미대사관은 팔리의 견해에 상당한 이견을 표명하면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보고서를 국무부에 보냈다.
월터 맥커너히(Walter McConaughy) 대사는 1961년 3월11일자 보고서에서 한국의 상황이 불안정하며 장면 정권이 부패하고 무능력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한국) 정부가 향후 2개월 동안 위험을 극복할 수 있다면 정부는 올 봄을 넘어 산재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 할 좀 더 자신감 있는 분위기에 휩싸일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대외정책에 있어서 대통령의 자문역할을 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참모들은 대체로 팔리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정부의 조치가 필요함을 역설했으며 팔리의 보고서를 읽은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5월5일 자신이 참석한 제483차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5월19일 한국정책을 토론하기로 하고 국무부의 동아시아담당 차관보의 책임아래 보고서를 준비할 태스크포스(Task Force)를 구성해 15일까지 토론을 위한 보고서를 마련해 회람시키기로 한 결정을 승인했다.
이 태스크포스가 보고서를 준비하던 중 1961년 5월16일 한국에서 군사정변이 발생했으며 미국은 당일 새벽 3시 한국군 참모총장 장도영이 유엔군 사령관 카터 매그루더(Carter Magruder)에게 전화를 걸어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군사 쿠데타가 진행 중이다”며 미군 헌병들을 움직여 대한민국 해병대를 저지할 것을 요청함에 따라 5.16 사태 발발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한편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은 에버린 링컨이 상당수 대통령 공문서들을 개인적으로 보관해오다 1994년 사망 당시 한 개인 소집가에게 대량을 물려준 사실을 발견하고 뒤늦게 이들 문서를 회수하기 시작, 일반 공개를 위해 전산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2003년 11월 국립기록보관소(NARA)의 기밀부문 삭제 검토(Sanitize) 도장은 찍혔으나 일반 공개 허용 여부(Classification) 도장이 없는 ‘팔리보고서’ 전문은 링컨이 수집한 ‘대통령집무실 파일’(President’s Office Files)의 253 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한국: 안보, 1961~1963년’이라는 제목 폴더 문서들 중 하나로 분류돼 공개됐다.<신용일 기획취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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