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미(용커스 거주)
엄마!
듣기만 하여도, 조용히 불러보기만 하여도 가슴속 저 깊숙이서 무언가 뜨거운 울림이 조용히 솟구치며 한편으론 편안하기 이를데 없는 이름…
친정어머니께서 올해로 3년째 작은 딸을 보러 뉴욕엘 방문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고국에 계시는 엄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한 채 살고 있다. 그럴 즈음 문득 "엄마! 오랫만에 뉴욕구경 안하실래요?"로 시작된 친정 엄마의 뉴욕방문이 올해로 3년째…다행이도 여행을 무척 즐기시고 아직은 건강하신 엄마는 고춧가루며 멸치, 오실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갓 김치 등속을 바리바리 챙겨 오시니 그 맘때쯤이면 늘 엄마를 기다리게 된다.
게다가 뉴욕의 짧고 아름다운 가을 10월에 오시는 엄마를 모시고 우리 부부는 단풍이 물든 캣츠킬 산으로 캠핑을 가곤 한다. 작년 10월말엔 Shenandoah국립공원으로 모시고 캠핑을 갔다가 때 이른 눈 폭풍을 만나기도 했다. 엄마와 산길을 걷고 캠핑 카 안에서 카드 게임도 하고 아름다운 절경을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고 사진을 찍은 그 고운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하려 애쓴다. 한국으로 돌아가셔서도 엄마는 항상 뉴욕의 이 가을을 그리워하신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엄마가 다녀가셨다. 그런데 80세를 3년여 남겨두신 엄마의 걸음걸이가 작년에 비해 현저하게 느려지신 것이 느껴졌다. 늘상 우리와 함께 걸으시던 산책길에도 자꾸만 뒤로 처지신다. 아! 그래…엄마도 이젠 힘이 드신 거구나…
언제까지나 젊고 활기차실 것 같던 엄마의 모습은 그저 내 바램이었던 걸까. 같은 연배 어르신들에 비해 외모부터도 훨씬 젊어 보이는 울 엄마는 절대 늙지 않으실 거란 근거없는 착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새삼 엄마의 키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드신 것도 보인다. 내가 많이 무심했구나. 얼마나 날씬하고 호리호리한 엄마였던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kill hill까지는 아니어도 운동하실 때 외에는 절대 단화는 신지 않으시던 엄마였는데. 그러고 보니 엄마가 신고 오신 납작한 신발이 괜스레 애잔해 보였다. 갑자기 가슴 한켠이 먹먹해온다.
엄마는 항상 아침일찍 일어나셔서 바지런히 얼굴단장을 하신다. "어디 가시고 싶은 데 있어요?"하고 여쭈면 "아니 …늙은이 흉한 꼴 안보이려고 그러지…"라며 수줍은 미소를 지으시던 엄마.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이것저것 옷을 몸에 대보시며 "이거 입을까? 저게 나을까?"하시면 "아우~아무거나 입어요"하며 귀찮아했던 퉁명스러움이 너무나도 후회가 된다. 대신 "엄만 뭘 입어도 예뻐요…" 이랬으면 좋았을걸… 한 번 더 보아드리고 한 마디 더 대꾸해드리고 웃어 드릴걸…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왜 좀더 따뜻하게 대해드리지 못했을까…
그다지 친절하지 못한 딸의 온갖 투정을 별다른 반문없이 다 받아내시는 것도 맘에 걸려온다. 젊어서부터 자신의 사업을 일구시며, 군 생활을 오래 하신 아버지를 대신해 온갖 궂은 바깥일을 척척 해 내신 울 엄마. 때로는 그 기세등등하신 성격에 눌려서 아무런 소리도 못하고 사춘기를 보낸 탓에 짐짓 억울해 하기까지 하는 나는 엄마께 그리 사근사근한 딸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덧 나도 자식을 낳아 키우며 내 자신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다보니 엄마의 그 드세고 억척스럽던 모습이, 자식들을 사랑하지만 일일이 챙겨주지 못하셨던 바쁜 엄마 나름의 애정의 표현이었음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그 엄마도 8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셔서 웅크리고 앉아계신 뒷 모습이 왠지 작고 슬퍼보인다.
요즘은 부모님들이 예전보다 좀더 오래 사신다 해도 갑자기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이 엄습한다.건강한 몸과 맑은 정신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 곁에 계셔주실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잖은가. 가까이 살면서 부모님을 항상 만나뵙지 못하는 것도 불효인데…이리 천리만리 떨어져 살고 있으니.
어찌 하오리까…나에게도 딸이 있으니 언젠가는 정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리라. 내가 딸에게 바라는 만큼, 아니 그 백분의 일 만이라도 엄마께 해드린다면 얼마나 행복해 하실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는 아침…전화를 드려야겠다.목소리만 들려 드려도 숨이 넘어가실 듯 반가와하시는 엄마가 오늘 따라 너무나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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