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신 <에리자베스한인교회 담임목사>
연말연시에 하는 말이 있다. 시간이 참 빨리 간다는 것이다. 한해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연말이고 또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유독 해가 바뀔 때면 세월이 물같이 흘러간다고 말하곤 한다. 그렇게 시작한 2013년도 벌써 한달이나 지나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세월은 물같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화살과 같이 날아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런 시간의 흐름에 대한 느낌은 사람에 따라 매우 다르다. 젊을 때에는 시간 흐름이 빠르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한해가 마치 한달과 같이 느껴지고, 한달이 하루와 같이 느껴지는 것은 왠일일까? 인생의 선배들은 곧 일년이 하루같고, 한달이 한시간 같이 느껴질 것이라고 한다. 왜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질까?.
각 사람들마다 해답이 다르다. 혹자는 시간이란 살아온 세월에 비례해서 느껴진다고 설명한다. 똑같은 시간이지만 개인의 경험에 따라 길게도 혹은 짧게도 느껴진다. 4살박이 어린아이에게 일년이라는 시간은 자신이 살아온 세월의 1/4이나 되는 긴 시간이다. 그러나 40대 중년에게 일년은 그가 살아온 삶의 경험과 길이에 비하면 1/40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다. 일년이란 분자는 동일하지만 나이라는 분모는 가면 갈수록 많아지기 때문에 그 답인 느낌의 시간은 점점 짧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먹는 나이라고 한탄만 할 수는 없다. 똑같이 나이를 먹어가지만 어떤 사람은 갈수록 더 충실하고 보람된 한해를 보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눈깜짝할 사이에 이룬 것이 없이 한해가 지나갔다고 후회한다. 그 이유는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의 태도일 것이다. 기대를 가지고 보느냐 아니면 아쉬움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우리가 뭔가를 기다리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배가 출출한 밤늦은 시간,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할 때를 생각해 보자. 차가운 물이 담긴 냄비를 스토브에 올려놓고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의 시간은 마치 멈추어 선 것과 같은 지루한 시간이다. 반면에 헤어지기가 아쉬워 잡은 손을 놓치 못하는 연인들에게 시간이란 한순간이 아닐까? 청년의 때에는 어떻게든 어른이 되고 싶고, 꿈을 펼쳐보고 싶고, 많은 일을 하고 싶은 시절 시간이 느리게만 가는 것 같지만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면 갈수록 세월의 아쉬움을 실감하기에 시간은 화살 같이 날아가 버리는 것 같이 느껴진다. 결구 마음의 태도가 시간의 길이를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시간에 대해 논한 한 저널리스트가 이야기가 생각난다. 기억 속에 시간의 길이는 정보의 양에 비례한다는 주장이었다. 즉 일정한 시간에 뇌로 흡수되는 정보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시간은 길게 느껴지고 반면에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으면 시간은 그만큼 짧게 느껴지게 된다는 논리였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우고, 깨달으면 시간의 길이는 점점 더 길어진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가장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해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 논리는 우리의 나이와 시간의 길이의 반비례 공식에도 잘 적용된다. 어린 시절 시간이 더디게 가다 어른이 되면 갑자기 빨라지는 것이 바로 이 기억의 논리 때문이다.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한 어린 시절엔 호기심이 가득해 보고 듣고 배워야 하는 것도 많고 흡수해야 하는 정보의 양도 많아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만 같은데, 나이를 먹을수록 별로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에 시간의 길이가 점점 짧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논리이다. 분명히 시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한데 그 시간에 대한 느낌이 이렇게 길거나 짧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이왕 같은 시간을 보내는데 벌써 한해가 지났어 하며 아쉬워하는 것보다 길고 충실하게 살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성경에 "세월을 아끼라" (에베소서 5:16)라는 말이 있다. 세월을 아끼라는 의미는 후회는 삶이 아니라 만족하는 시간의 사용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가는 세월을 잡을 수가 없고, 먹는 나이를 멈출 수 없다면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느낌이라도 더 길게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시간의 느낌은 기대나 아쉬움이냐, 경험이나 허송세월이냐 하는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나이가 들어도 늘 기대를 가지고 오는 날들을 바라보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않고, 조금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알아가려고 노력한다면 시간을 길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경험과 새로운 시도, 이루어질 것에 대한 소망과 바램을 위해 정진한다면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하고, 미루어왔던 바람을 실천해 보자. 세월을 아껴 더 충실한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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