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MA 한국어 음성 서비스 들어보셨죠?”
뉴욕 현대뮤지엄의 한국어 관람안내도 및 한국어 음성 서비스 기초를 닦은 조봉옥 모마 행정담당관, 그는 어딜 가든지 한인들에게 현대미술을 쉽게 접하게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세계거장들 작품 보관 및 복원
뉴욕한인이나 한국관광객들이 현대뮤지엄(THE MUSEUM OF MODERN ART, 모마)안내데스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한국어 가이드북과 한국말 음성 서비스 비디오기다. 깜짝놀라는 한편 반갑기도 하다.중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나왔거나 눈에 익은 모네의 ‘수련’, 마티스의 ‘댄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세잔느의 ‘목욕하는 남자’,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 등의 그림을 보는 것도 놀랍지만 유명한 걸작에는 한국어 음성 서비스가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모마에서 27년째 근무하며 한국어 오디어 서비스를 건의하고 오디오 프로그램과 안내도 감수 작업 등에 참여한 조봉옥이 있어서 가능했다. 모마 작품 보존과(Conservation Department)조봉옥 행정담당관은 한인과 모마와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모마가 세계 각국에서 오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영어, 스페인어,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된 오디오 서비스를 하는데 어느 날 보니 일본어 오디오 서비스도 시작했다. 어라, 일본어도 하는데 한국어도 당연히 해야지 싶어 모마측에 건의를 하고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07년 3월 7일부터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나 뉴욕한인들은 한국어 음성 서비스를 통해 모마에 전시 중인 걸작 등을 감상하는데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한달뒤인 4월초에는 영구소장품들과 모마 프로그램 및 서비스를 소개한 한국어 관람 안내도가 배치되었다. 미술관 한국어 투어도 실시되며 관람객들이 편하게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다.
“한국어로 된 것은 모조리 내 감수를 거쳐야 인쇄 되었다. 작품 해설을 담은 한국어 음성 서비스는 젊은 목소리가 하고 미술관 폐관 안내 한국말 방송은 내 목소리가 지금도 나가고 있다.”조봉옥은 세계 거장들의 작품을 보관하며 손상된 작품을 복원하는 주요 업무를 해오고 있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5시까지 미술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면서 ‘명화를 보는 즐거움으로 일한다’고 한다.그는 한인사회 문화행사에서 자신의 재능기부 봉사를 하기도 한다. 2010년 6월에 열린 한국일보 문화센터 제휴 ‘명화감상’ 안내를 하며 유명화가의 걸작 해설과 보는 법을 설명하기도 했다.
▲교육자 집안에서 성장
조봉옥은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석봉씨는 동구여상 설립자이고 어머니 김정옥씨는 47~69년까지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로 평생 여성교육에 헌신한 교육자였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몰래 돌보는 등 제자들과의 끈끈한 정으로 유명한 분이다.
‘사회가 남녀공동의 힘을 활용해야 한다’며 남녀평등을 강조하는 가정의 1남1녀 중 장녀로 태어난 조봉옥 역시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후에는 유학후 모교에서 교수가 되는 것이 당연수순인 줄 알았다. 한국일보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날린 장명수씨와는 대학시절 이대학보를 창설한 동기인 조봉옥은 저널리즘을 공부하러 유학을 갔다.
미국을 가는 날 김포공항에는 이모할머니인 김활란 박사도 배웅 나와서 “공부하기 힘들지만 3년뒤 반드시 나와서 이대에서 가르쳐라”고 격려했다. 유학 중에는 가끔 편지를 보내며 힘을 주던 분이었다. 62년 시애틀에서 한시간 거리인 센트럴 워싱턴 스테이트 칼리지(현재는 유니버시티)로 유학와서 1년간은 향수병을 앓았다. 어머니의 모교로 유학을 왔지만 주위에 한인은 없었고 한국음식도 먹지 못했다.
전화비가 엄청 비싸던 그 시절, 유독 정이 도타웠던 모녀간은 전화가 개통되면 서로 한참동안 울다가 어머니가 “우리딸 목소리 좀 듣자”고 말했다.외롭고 힘든 유학생활이지만 독립심을 기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혼자 지내며 공부를 하던 중 아이오와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하는 과학도 이성규씨의 편지가 날아왔다. 어머니의 이대 제자가 자신의 오빠에게 조봉옥의 주소를 알려준 것이다.
어느 날은 소포가 왔다. “베토벤 전집 LP 9개가 들어있었다. 유학생 처지에 그 비싼 판을 구입하여 클래식을 좋아하는 내게 보내주었다”결국 조봉옥은 1년후 이성규씨가 유학 중인 와이오밍 대학으로 학교를 옮겼고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당시 그 대학에 한인 유학생은 15명뿐. 한국인 여자 유학생이 드물던 그 시기, 남학생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지만 2~3년간 함께 도서관 가고 학교를 다니면서 어느새 든든한 보호자가 된 이성규씨가 어느 날 대학 한가운데 있는 호수를 보러가자고 했다.
호숫가를 산책하면서 그는 조봉옥이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 콘체로토’ 전곡을 휘파람으로 불었다. 베토벤의 유일한 바이얼린 협주곡으로 아름답고 장대한 그 곡을 모조리 외워서 휘파람으로 부는 그 멋진 남자에게 조봉옥은 ‘녹아내렸다’고 표현한다.
조봉옥의 기숙사 밑에 와서 휘파람을 불면 미국인 친구들이 ‘새가 매일 와서 짖는다’고 놀림받던 그의 프로포즈를 허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 키우며 링컨센터로 클래식 연주를 보러 다니며 의좋게 살고 있는 부부다.
▲볼 때마다 색다른 감동
아이오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것이 이후 모마와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원래 어려서부터 미술에 취미가 있었다. 가장 나이 많은 학생으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숙제를 하면 내 것이 최고 점수이고 회사나 대학내 칼리지마다 필요한 로고 신청이 오면 내것이 늘 뽑혔다. ”
미국학생들이 ‘조봉옥’을 발음하기 쉽잖아 늘 틀린 발음을 하면 그는 그것을 견디지 못하여 꼭 따라가서 제대로 된 발음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학교 친구들이 부르기 쉽고 예쁜 ‘바니 리’‘Bonnie Lee)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조신하고 상냥하면서도 확실한 성격은 유학 초기에 초등학교 아이들의 여름캠프 카운슬러로 일할 때도 나타났다.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아이들에게 한국 홍보대사가 되어 역사와 문화를 소개했었다.
72년 남편 이성규씨가 뉴욕 라커펠러 대학 포닥으로 오며 뉴욕생활이 시작되었다. 78년부터 5년간 한국 카이스트 교수를 지낸 다음 그는 다시 라커펠러 대학 교수로 있다.
“1986년 어느 날, 꿈에 내가 갤러리 마루바닥에 턱을 고인 채 앉아있었다. 그러면서 전시된 그림을 가리키며 여기 있는 작가들 모두 다 내게 소개해주시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꿈을 꾸고 난 후 바로 모마에서 인터뷰를 하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어 엄마의 손이 갈 일이 없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조봉옥은 모마에서 신나게 일하고 있다. 현재 아들은 보스턴 근교 연구소에서 일하며 손녀 둘을 두었고 딸은 뉴저지 프린스턴에 살면서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조봉옥은 주류사회에서 일하면서도 한인사회 행사를 잊지 않는다. ‘모마 최고 멋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패션감각 뛰어나게 옷을 입으며 한인전시회, 콘서트 등에 나타나 작품을 감상하고 문화인들과 교류한다.
현재 년간 수백만 명이상의 관람객이 모마를 찾고 있다. 4, 5층의 상설 전시장외에 6층의 기획전시관(얼마전 모마는 욱일승천기 이미지가 합성된 미술작품 전시회에서 작가의 미학적 예술적 가치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공식입장을 밝혔다)을 비롯 모든 전시장에서 다양하고 복합적인 전시회가 열린다.
“모마는 한번 보면 감탄하고 두 번 보면 또 다르고, 볼 때마다 늘 색다른 감동을 준다. 그동안 한국인들의 관광 코스가 되고 한인 방문자도 무척 늘었다. 누구든지 나를 필요로 하면 전화 해달라. 모마의 역사부터 명화감상까지 성심성의껏 안내해 드리겠다”고 한다. 자신의 일에 관한한 ‘똑’ 소리가 나게 하는 조봉옥, 그에게는 현대미술에 관해 뭘 물어도 대답이 술술 나올 것 같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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