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신 목사
추위가 한풀 꺽이고 봄기운이 느껴질 때면 영화에 빠지곤 한다. 아직 해가 짧아 집에 있을 일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때면 각종 영화제를 겨냥한 영화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여름이 흥행을 겨냥한 오락성 영화의 계절이라면 겨울은 그래서 작품성이 강한 영화의 계절이다.
특히 2월말에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염두에 두고 좋은 작품들이 발표되고 또 그 상의 결과를 따라 적어도 작품상을 받은 영화, 최우수 남우와 여우상을 받은 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봐야 되겠다 생각하다보니 이때쯤이면 시간을 쪼개어 틈틈히 영화를 보는 게 솔솔한 재미이다. 게다가 예전과 달리 극장을 찾아가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심지어는 티비로 영화를 주문해 볼 수 있으니 더 편하고, 쉽게 영화에 빠져든다.
올해는 85번째 아카데미 시상식이었다. 늘 그렇지만 워낙 유명하고 역사가 깊은 상이다 보니 해마다 세인들의 관심을 끄는 사건이나 화두가 되는 일이 생기는 것 같다. 이번 아카데미상의 화두는 단연 남우주연상을 받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Daniel Day-Lewis)이다. 85년의 긴 역사에도 남우주연상에서는 한번도 3회 수상을 한 배우가 없었는데 올해 마침내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링컨(Lincoln)이라는 영화의 미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의 역을 통해 역대 최다 수상자가 된것이다.
유명하고 친숙한 말론 브랜도, 톰 행크스, 더스틴 호프만, 잭 니콜슨, 숀 팬과 같은 쟁쟁한 배우들도 2번 수상에 그쳤는데 대중에게 그렇게 익숙치않은 배우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라는 칭송을 듣게 되었으니 화두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열연한 링컨이라는 영화를 보고, 또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어떠한 배우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아카데미의 결정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영화의 배역에 완전히 동화되어 마치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연기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맡은 역할에 완전히 빠져들어 ‘그 사람’으로 연기하기 위해 자신의 생활까지 바꾸어 준비한다고 한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라스트 모히칸(The Last of the Mohicans, 1992)’이라는 영화에서는 모히칸 인디언의 역을 하기 위해 몇 달이고 앨라배마의 오지에서 야영생활을 하며 사냥으로 잡은 음식만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처음으로 그에게 아카데미 주연상을 안겨준 ‘나의 왼발(My Left Foot, 1989)’에서는 뇌성마비로 인해 휠체어 생활을 한 화가를 연기하기 위해 자신도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며 영화찰영이 끝날 때까지 식사나 자리이동까지 장애우로 지냈다고 한다. 가혹한 심문을 받는 역할을 할 때면 그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잠을 자지 않고 몇 날을 뜬눈으로 보내기도 하고 서서히 캐랙터에 빠지기 위해 말투나 생활의 모습까지 바꾸어 준비하여 완전히 배역에 젖어들어 연기한다고 한다.
세번째 오스카를 안겨다 준 링컨이라는 영화를 위해서도 배역을 맡은 후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링컨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링컨이 되기 위해 1년동안 준비할 기간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영국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목소리와 억양마저도 켄터키에서 태어나고 일리노이주에서 살았던 링컨 대통령을 표현하기 위해 힘쓰고, 생김새마저도 비슷해지도록 살을 빼고 수염을 기르며 자신이 링컨이 되도록 했다. 그 결과 그는 역대 수많은 링컨 대통령을 연기한 배우들이 있었음에도 가장 링컨의 모습에 가까운 혼신의 연기를 했다는 평을 들었고 아카데미상의 역사에 놀라운 기록을 남기게 된 것이다.
영어 표현에 ‘Walk a mile in someone else’s shoes.’라는 말이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속담 중에도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는 말이 있고 고사성어에도 역지사지(易地思之, 땅을 바꾸어 생각해 보자)라는 말이 있어 판단하기 전에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라는 교훈을 준다. 상대방이 되어 본다는 것은 실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아니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다면 거기에 이해가, 동감이, 어쩌면 감동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한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그 사람’이 되려고 몸부림치는 한 배우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감격을 준 것처럼 우리도 상대방이 되어 볼 수 있다면 거기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날이 갈수록 반목과 분열이 많아지는 세상이다. 정치나, 사회나 어디든 내 생각, 너 생각, 내 주장, 너 주장이 나뉘고 다투는 때이다. 이럴 때 우리가 데니얼 데이 루이스의 반만이라도, 아니 반의 반에 반만이라도 상대방이 되어 보려고 수고한다면 거기엔 분명히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성경에도 예수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비어... 사람과 같이 되었"(빌립보서 2:6-7)다고 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을 때 세상의 구원과 영생이 감사, 감동, 감격이 되어 이루어졌다. 각박한 이민의 삶을 사는 우리들이 나를 조금 버리고, 상대방이 되어보려고 한다면 영혼 구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웃음과 기쁨이 솟아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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