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가품 구입 위해 짐 가방에 돈 담아오기 일쑤… 봉급도 대개 현금 지급
▶ 제도권 금융에 대한 불신 뿌리 깊어 100인민폐(미화 16달러)가 최고액권 정부는 부패우려 들어 고액권에 난색
<상하이> 린 루는 자신이 일하는 자동차 딜러에 한 남자가 찾아 와 전액 현금으로 BMW 5시리즈 그란 투리스모를 구입했던 지난 12월의 어떤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린은 “그는 친구 2명과 함께 낡아빠진 혼다를 타고 왔다. 친구 중 한 명은 커다란 하얀 가방에 6만달러를 담아 왔고 차 구매자인 그 남자는 나머지 돈을 검은색 백팩에 담아 왔다”고 떠올렸다.
거의 13만달러나 되는 현금을 딜러로 짊어지고 왔다는 게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이 중국에서는 드물지 않다. 호텔요금과 보석구입, 그리고 심지어 방문 학자들의 강의료까지 중국의 화폐인 인민폐 다발로 지급되는 곳이 중국이다. 중국은 주택구입자들이 트렁크에 가득한 현금으로 다운페이를 지급하는 나라다. 심지어 대도시의 법률회사들조차 월급 지급일에는 돈을 안전히 운반하기 위해 현금수송 차량을 고용한다.
새로운 수퍼하이웨이와 초고속 전철, 그리고 도심의 마천루와 같은 근대화의 상징물들 가운데서도 중국은 여전히 과거 방식의 현금결제를 선호하고 있다. 그래서 장부와 돈 세는 기계는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이 여전한 것을 21세기 진입을 거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국민들과 정부사이에 형성된 경계심의 표현으로 본다.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데는 아주 많은 현금이 필요하다. 중국 정부가 고액권 발행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100 인민폐가 최고 액면가의 지폐이다. 이것은 미화 16달러에 해당된다. 지난 1988년 이래 모택동 초상화가 그려진 100 인민폐는 중국 최고액권이다. 그 사이 중국경제 규모가 50배나 커졌는데도 말이다.(모택동 초상이 그려진 중국 화폐들의 단위는 1, 5, 10, 20, 50, 100 인민폐이다)중국 경제학자들은 현재보다 액수가 큰 고액권을 발행할 경우 인플레가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워싱턴의 피터슨 국제경제 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인 니콜라스 라디는 “중국정부는 부정부패 때문에 고액권 발행을 꺼린다”고 말했다. 고액권을 발행할 경우 공직자들에 대한 뇌물 공여가 더 손쉬워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뇌물을 제공할 때 트렁크가 아닌 봉투에 담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고액권이 발행되면 더 많은 현금이 중국을 빠져 나가게 된다”고 덧붙였다.
물건 구입 시 현금 사용과 뇌물, 쌓아두기 등 때문에 중국정부는 엄청난 돈을 찍어내야 한다. 1,000년 전 세계 최초로 지폐를 발행했던 중국은 현재 전 시계 지폐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다고 중국 조폐공사는 밝혔다. 경제 규모를 고려해 볼 때 중국의 현금유통량은 미국의 5배에 달한다.
미국의 최고액권은 100달러짜리다. 일본은 1만엔으로 100달러 정도 된다. 유로는 500유로로 약 650달러짜리다. 주요 경제국가들 가운데 중국처럼 저액권을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 100 인민폐가 최고액권이 까닭에 중국인들이 TV나 스위스 시계 같은 물건을 살 때는 많은 양의 현금이 필요하다. 집이나 자동차, 요트 같은 것을 구입할 때는 말할 것도 없다. 이때는 트렁크에 돈을 담아가야 한다.
이런 풍경은 경제적인 붐 속에서도 중국의 금융시스템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경제 전문가인 제프리 윌리엄스는 “중국의 많은 지역은 아직도 1950년대 미국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은행에 돈 세는 기계가 하나면 되지만 중국에서는 모든 텔러들이 이것을 하나씩 갖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해안 도시들은 지난 30년 간 경제적인 풍요 속에 번성해 왔지만 내륙지역은 아직 가난하고 현대적인 금융시스템으로부터 격리돼 있는 상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들은 현금거래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자들도 현금거래를 좋아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자신들의 재산에 대한 정부의 추적을 피하려 이를 지하경제에 숨긴다. 다른 아시아 개발국들처럼 중국에서도 크레딧 카드와 체크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세계 지하경제 연구의 권위자이자 오스트리아 린츠의 요하네스 케플러 대학 경제학 교수인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교수는 “보통의 중국인들은 정부은행과 공산당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이것은 단순한 정부불신이며 그래서 이들은 현금 거래를 선호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신뢰부족으로 정부와 국민들 사이에 서로 쫒고 쫒기는 쥐와 고양이 게임 양상이 만들어진다. 국영기업에서 일하는 간부들의 경우 외부 컨설팅을 해 줄 경우 수수료를 비밀스런 현금으로 받는다. 정부는 거래의 흔적 없이 오가는 현금을 찾아내기 위해 지하경제 단속에 노력을 쏟고 있다. 하지만 주범들이 이런 법을 누구보다 잘 준수해야 할 정부 관리들인 경우가 많다.
중국의 한 지방도시의 경찰서장이었던 웬 퀴앙의 경우 그는 지난 2009년 100만달러에 상당하는 인민폐를 플라스틱 백에 담아 자신의 친척집 저수조에 숨겨 놓았다가 적발됐다. 또 전직 철도부장관은 500만달러에 달하는 인민폐를 집에 숨겨놨다가 걸렸다. 그런데 보관을 얼마나 엉망으로 했는지 돈에 곰팡이가 슬어 정부의 돈 세는 기계가 고장 날 정도였다. 불법적인 현금거래를 막기 위해 중국정부는 해외 송금과 외화 교환을 규제하고 있다.
중국에서 지폐 발행은 대단히 방대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 조폐공사는 80개 생산라인에 3만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6개의 은행권 발행업체와 두 개의 제지공장, 한 개의 조판 공장과 플레이트 공장, 그리고 위조방지를 위한 특수 라인을 생산하는 공장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 모든 공정을 관리하는 중국 인민은행은 정부가 ‘공화국의 명함들’이라고 부르는 지폐 생산과 관련한 언급을 거부했다.
<뉴욕타임스 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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