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철학교수)
만리붕정 (萬里鵬程)이라는 말이 장자의 첫 편 소요유 (逍遙遊)에 나온다. 붕 (鵬)이라는 새가 구름 같이 거대한 날개를 펴면 만 리를 날아간다는 말 이다. 자질구레한 세상사에 얽매이지 않고 무위무애 (無爲無碍)의 길을 가던 도인들의 세계관을 표현한 것 이다. 그러나 나는 장자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만 리도 넘는 길을 벌써 2년째 걷고 있는 대학을 갓 졸업한 한 젊은 여성, 에이미(Amy)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케이프타운에서 출발해서 끝이 없어 보이는 먼 길을 터벅터벅 걷는 젊은이가 있다. 무수한 신발이 떨어져 버렸다. 걷고 또 걸어서 대륙의 최북단 지중해 연안까지 가는 중 이다. 걸어서 2~3년쯤 걸리는 길이라고 한다. 직선거리로 8,600마일(3만 4천리)이니 걷는 길은 그 두 배 정도 되지 않을까.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실 수 있는 맑은 식수를 마련해 주자는 의식을 높이기 위해 끝도 없는 그 길을 오늘도 가고 있다. 소요유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길이다. 대붕이 날아도 얼마가 걸릴 지 알 수 없는 그런 길이다.
에이미는 커네티컷에서 태어나 자라고 시카고에서 대학을 마친 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기독교 계통의 자선단체에서 일을 했다. 기독교의 인생관은 삶이 곧 순례의 길을 가는 것이며, 그것은 잠깐이라는 믿음이다. 산티아고 순례의 길을 지금도 걷는 많은 순례자의 모습이 그 가르침을 말하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에이미의 순례는 산티아고 도상의 순례자들처럼 자신의 영적성숙을 위한 순례가 아니라, 세상에 태어나 풍요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순례이다.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해 병으로 죽어가는 수 없이 많은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위한 순례인 것이다. 어쩌면 목숨을 건 결단 일 수 있다. 그 큰 대륙을 종단하는 여정의 위험과 고난을 생각하면서, 나의 딸아이가 그 길을 가겠다고 결심했다면 아버지로서 나는 무엇이라 말해주었을까?
에이미의 아버지와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컴퓨터 엔지니어링 교수다. 진실한 사람의 표본처럼 보이는 아버지 찰스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에이미를 생각하고 있을 그의 마음이 가슴에 와 닿는 듯 했다. 고인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에이미의 결정을 존중한다. 또 도울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고 조용히 말했다. 아이들을 법대와 의대에 보내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우리는 우리 부모들과는 너무도 먼 거리에 사는 사람 같았다. 우리를 참되게 하는 힘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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