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선 (전 커네티컷한인회장)
올 것 같지 않던 봄이 찰나로 지나가고 어느새 초록이 번진 숲으로 5월이 떠나려고 합니다. 세월에 쫒기며 앞만 보고 달리던 나의 무심한 마음은 그리움이 되고…. 그래서 5월은 눈물겹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고 은사님이, 또 애써 외면했던 5월에 진 아픈 영혼이 달력 속에 기념일로 남아 상사화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한때 당신의 사랑을 자식에 대한 집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여 애써 피하기도, 때로는 매몰차게 모른 척 하기도 하면서 그 질기고도 강한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사랑은 한결같은 무게로 50여년을 따라 다녔습니다. 혼수로 생사를 넘나드는 무의식에서도 저를 찾으신다는 전언을 듣고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서도 믿지 못한 못난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중 나온 아우들과 잠시 길이 엇갈리는 그 순간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렸었습니다. 필경 한국에 오는 사이 돌아가신 걸 거라고 짐작하니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빈 듯 한 기분이었습니다. 아우들을 만나기까지 불과 몇 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50도 훌쩍 넘긴 못난 자식 가슴엔 그동안 쌓인 그리움이 회한의 눈물이 되어 아프게 고였습니다.
저에게는 늘 무거운 중압감이어서 피하고 싶었으나, 당신에게는 하느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대하는 사랑이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의 사랑을 되돌려 줄 수 없었기에 나는 당신의 마음을 애써 모른 척 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환자실의 어머니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작별을 하며 침상에 빨간 카네이션과 함께… 이 나이가 되도록 못해본 말을 더 이상 듣지 못하는 어머니께 남기며 돌아섰습니다… 사랑합니다. 용서하세요.
선생님의 서재는 크고 작은 난으로 늘 향내가 배어 있었습니다. 세배를 가면 마른 문어와 살짝 구운 은행과 호두, 잣 그리고 방금 데운 정종을 내어 주시던… 조선의 마지막 선비의 후예였던 임하(林下) 최진원 선생님…. 선생님의 서재에는 늘 많은 제자들이 자리를 메우곤 했었지요. 나이 어린 학부 학형에서부터 대학교수가 된 후학까지 선생님을 따르는 이유야 제각각 이었었지만, 저 또한 감히 범접할 수 없었던 선생님의 학문의 깊이와 관조를 흠모했었습니다.
선생님을 결혼식의 주례로 모시면서도 끝내 쑥스러워 보여드리지 못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혼자 꺼내 보며 아쉬워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생전에 찾아뵙지 못한 허물 많은 제자를 용서 하십시오.
5.18 광주 항쟁이 있던 그날, 나는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이방인으로 맞았습니다. 얼마나 큰 사건이 내가 발 디디고 선 이 땅에서, 내가 숨 쉬는 시대에 벌어지고 있었는지 무심한척 외면하며 비켜 서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훗날 민중 속에 꽃으로 다시 피어난 박기순과 광주시민군 대변인 청년 윤상원의 영혼결혼식에 바쳐진 노래굿 넋풀이 (빛의 결혼식)를 뒤늦게 접하며 참 많이 미안했습니다.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는 노래는 먼저 가신님들의 절규가 되어 마음을 흔듭니다. 진실로 열심히, 뜨겁게 살다 죽음을 선택했던 그분들의 영혼이 깃든 노래, 또 그 뒤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한숨이 마디마디 음표가 되어 배어 있는 노래를 마음으로 따라 부르며 오월이 가기 전에…. 님들이 남기고간 꽃보다 아름다운 5월의 푸르름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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