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대생 93%가 “팻 톡 해봤다” 시인
▶ “난 뚱뚱해”“난 숏다리”등 친구 사이에 유대강화성 멘트 우정에 도움 되지만 때론 모두 다치는‘양날의 칼’되기도
팻 톡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상대의 자기비하적 발언에 대해 그보다 더 강력한‘내 몸 흉보기’로 응대하는 정형성을 지닌다.
말에는 힘이 있다. 사람들은 서로 주고받는 말을 통해 영향을 받는다. 어떤 말은 아프고, 또 어떤 말은 행복감을 불러일으킨다. 부부 사이의 험악한 관계는 가슴에 쌓인 감정이 말로 표현되면서 구체화된다. 물론 연인 사이의 사랑도 밀어를 통해 무르익는다. 말은 그 말을 하는 화자와 상대 모두에게 힘을 행사하는‘양날의 칼’이다. 따라서 서로 작심하고 벌이는 말싸움은 칼날과 칼날이 맞부딪치며 시퍼런 살기의 불꽃을 튕겨낸다.
말로 베인 상처는 치료가 힘들다. 둘 사이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기도 한다.
이처럼 말은 ‘권세’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내뱉어선 안 된다. 꼭 해야 할 말이 있는가 하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도 있는 법이다.
사람들 사이의 말 섞기를 흔히 ‘대화’ 혹은 ‘담화’라고 부른다. 담화 가운데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제3자에 대해 떠들어대는 것이 ‘뒷 담화’다. 당사자 모르게 오가는 뒷말이니 그 내용은 “안 들어도 오디오”다. 한마디로 ‘씹는 말’이다.
이처럼 부정적인 ‘말 섞기’ 가운데에는 ‘지방 담화’ 혹은 ‘살 담화’도 포함된다. 지방 담화는 영어의 ‘팻 톡’(fat talk)을 우리말로 그대로 풀어쓴 것이다.
지방 담화는 3자를 겨냥한 ‘우리끼리 뒷말’과는 다르다. 마치 인사말처럼 일정한 패턴을 지닌 팻 톡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상대의 자기비하적 발언에 대해 그보다 더 강력한 ‘내 몸 흉보기’로 응대하는 정형성을 지닌다.
물론 상대에 대한 위로의 뜻이 담겨 있을 터이지만, 결과적으로 둘 모두 심리적 상처를 입게 된다. 그냥 하는 말 같지만 그 안에서도 ‘말의 권세’가 어김없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팻 톡의 진짜 사례를 들어보자.
대학 4학년생인 캐롤린 베이츠와 그녀의 친구는 지난 겨울 인디애나폴리스의 갭(Gap) 매장에 들러 마음에 드는 몇 벌의 청바지를 골랐다.
두 친구는 나란히 연결된 피팅룸에서 한 무더기씩 안고 들어간 청바지를 입어보기 시작했다.
가까운 사람과 함께 옷을 입어볼 때 여성은 절대 입을 그냥 놀려두지 않는다. 시시각각 옷에 대한 품평을 쏟아낸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둘 사이의 대화가 갑자기 끊어졌다. 수상쩍은 침묵이 한동안 감돈 후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젠장, 다른 곳은 다 맞는데 허벅지가 너무 끼이네. 코끼리 다리도 이 보다는 가늘겠다.”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상대의 맞장구가 터져 나왔다. “내 청바지도 다 좋은데 기럭지가 너무 길어. 내가 완전 숏다리인가 봐”잠시 후 ‘코끼리 다리’와 자칭 ‘숏다리’는 어깨를 늘어뜨린 채 매장 문을 나섰다.
심리학자들은 이같은 팻 톡을 “여성들 사이에 흔히 오가는 일종의 ‘유대강화 의식’으로 전염성이 강하며 자신의 신체에 관한 심상, 즉 바디 이미지(body image)를 훼손함으로써 10대 소녀들의 식이장애로 연결되곤 한다”고 정의한다.
일부 연구원들은 팻 톡이 여성들 사이에 하나의 의식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은 상태이기 때문에 화자는 자신의 몸에 대해 실제로 갖고 있는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예상하고 듣기 원하는 ‘정답’을 내놓는다고 지적한다.
설문조사 결과 대부분의 여성이 “내 몸 흉보기”를 즐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여대생 응답자들의 93%가 팻 톡을 해본 적이 있다고 시인했다.
노터데임 대학의 심리학 연구 부교수인 알렉산드라 코닝 박사는 지방 담화를 하는 여성의 사이즈가 그녀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호감에 영향을 주는지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코닝은 온라인 실험을 통해 여대생 139명에게 마른 체형의 여성 두 명과 뚱뚱한 몸집을 지닌 여성 두 명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들 네 명이 내놓은 자신의 몸매 품평을 들려주었다.
코닝은 과체중에 붙어 다니는 오명을 감안할 때 자신의 몸에 관해 긍정적 발언을 한 마른 체형의 여성이 가장 높은 호감을 살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빗나갔다.
학생들의 호감도 조사 최고 득점자는 자신의 몸집에 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한 과체중 여성이었다. 그녀는 “비록 완벽하지는 않아도 보이는 그대로의 내 몸을 사랑한다.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꾸려 가느냐가 중요한데, 나는 그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코닝은 실험 결과는 지난 20년간 진행되어 온 긍정적 바디 이미지 캠페인이 드디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평가하면서도 “학생들이 정말 과체중 여성에 호감을 가진 것인지 확실치 않다”고 시인했다. 정말 좋아서가 아니라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온 ‘의무적 대답’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스 웨스턴대학의 리니 엔젤린 교수는 자신만만한 여성에 대한 일반적 반응은 복잡하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몸에 자신감을 보이는 여성에게는 ‘교만하다는 딱지가 붙기 쉽다.
팻 톡은 제동을 걸기가 어렵다. 까딱 잘못하면 관계를 해칠 수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먼저 첫 번째 여성이 이렇게 호들갑을 떤다. “맙소사. 브라우니를 다 먹어치웠다니 믿어지지가 않아. 난 정말 뚱보야”여기에 관한 친구인 두 번째 여성의 반응이다. “농담도 심하다. 내 허벅지 좀 봐라. 네가 뚱뚱하다면 난 뭐겠니?”두 번째 여성은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첫 번째 여성의 몸에 대한 반사적 칭찬을 제공함으로써 그녀가 내심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주었다.
그러나 이를 위해 두 번째 여성은 자기비하라는 ‘심리적 독극물’을 삼켜야 했다.
그렇다고 그 같은 상황에서 침묵으로 ‘동조’하거나 “이제까지 네가 뚱뚱하다는 걸 몰랐던 모양이구나”라는 식의 ‘입 바른 말’이라도 던지게 되면 둘의 관계에 한 가닥 균열이 일게 된다. 실낱같은 균열이 거대한 둑을 무너뜨린다.
최근 노터데임 대학을 졸업한 베이츠는 “옷이 안 맞는 이유를 자신의 몸에서 찾는다면 옆에 있던 친구는 정직한 말을 해주기 힘든 입장에 처하게 된다”며 “몸이 옷에 안 맞는 게 아니라 옷이 몸에 맞지 않는다는 쪽으로 말을 하면 최소한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말은 너도 다치고 나도 다치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지만 제대로 쓴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윤택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부정적인 팻 톡은 대화의 주체인 쌍방 모두에게 도움이 안 된다. 옷이 몸에 맞지 않는다면 ‘몸 투정’을 하지 말고 ‘옷 투정’으로 끝내는 것이 좋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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