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가 전혀 없다”
태어나서 몇 년이 지나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춤추고,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한다. 10살이 되기도 전,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그림 작품이 박물관에 전시되고, 깜찍한 댄스와 노래로 유튜브 조회수 기록을 깨는 사례는 종종 있다. 하지만 그 나이에 소설을 써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경우는 없다.
예술 본능은 있지만, 글쓰기 끼는 존재하지 않는다. 끼가 있다 하더라도, 어린 나이에 얼마든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음악ㆍ예술ㆍ운동을 제치고 홀로 외롭게 백지와의 만남을 추구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춘기에 들어오면서 일부 학생들은 글을 쓰기 시작한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눈총이나 왕따를 속으로 갈구며 글로써 한땀 한땀 자신을 표현해 나간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쓸데없는 공상으로 글이나 끄적거리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는 질타에 컴퓨터 자판기는 조용해진다.
잠잠해진 자판기의 파장은 대학 지원서 에세이를 작성할 때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어릴 적부터 수백 권의 책을 읽었다, 시험이라는 시험은 모조리 만점 받았다, 토론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학생, 학업이나 교 내외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들은 한가지 공통된 고민을 지니고 있다. “무슨 주제를 어떻게 써야 할지 아이디어가 전혀 없다.”
한편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당락에 치명적인 역할을 하는 지원서 에세이를 우습게 보는 학생도 있다. 에세이를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며 몇 시간 즐기는 게임이나 채팅 정도로 착각하는 것이다. 잠시 무엇을 쓸까 망설이다 대충 써서 교정은 보는 둥 마는 둥 귀찮은 일을 해치우는 식으로 에세이를 써낸다.
그런 태도를 보이는 학생일수록 온라인 문법/철자법 교정 프로그램을 절대적으로 의지한다. “베풀어 주신 hospitality(호의)에 감사한다”라는 문장을 쓰려고 했지만 단어를 잘못 적어 hostility(적개심)으로 쓰면 교정 프로그램은 찾아내지 못한다. 물론 자신의 에세이를 누가 읽는지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학교의 과학 수업 과제물로 제출한 ‘지구 온난화로 인한 경제적 피해’같은 논문 스타일 글을 살짝 고쳐서 내는 경우도 있다. 지원서 에세이를 심사하는 사람은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어주는 지원 대학의 교수가 아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 백개 에세이를 읽어야 하는 즉, 따분하기 짝이 없는 일을 하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에 잠기거나, 이번 주말에는 여자친구와 무엇을 할까에 더 관심을 쏟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눈길을 끌려면 글쓰기를 향한 태도부터 달라야 한다.
글쓰기는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다. 생일 파티ㆍ주말모임ㆍ운동경기 등등 여기저기에 쫓아다니면, 자연스레 줄어드는 것은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다. 로마의 시인 호레스는 “사색은 글쓰기의 시작이다”라고 했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장소에서 그런 사색이 가능할까.
“나는 글 쓰는 재주가 없어서 다른 작가들보다 두배, 세배 노력하며 교정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사교모임에 나가지도 않는다. 보이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시간을 소모한다는 것은 내 소설을 읽어주는 보이지 않는 독자들을 소홀히 생각한다는 뜻이다. 쓸데없는 시간낭비로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40개 국어로 번역될 정도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가 하루키 무라카미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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