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교수)
한국에서 산 시간 보다 더 오랜 세월을 영어를 말하며 살게 되었다. 이제는 꿈도 영어로 꾸게 되니 영어가 모국어가 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는 꿈을 영어로 꾼 기억이 없었다. 내가 자랐던 마을 주변이 언제나 꿈속의 놀이마당이었다. 이제는 이름도 잊어버린 동무들 또 때로는 한없이 높아 보이던 고향집 솟을 대문 위를 새처럼 날아오르던 유년의 꿈들도 이제는 희미한 그림자로 만 남아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 고향으로 이어지던 그 긴 꿈을 다시는 꾸지 않았다. 고향과 내 유년의 모든 기억들을 이어 주던 튼튼한 끈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잊어버리는 많은 것들이 다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잊어버리는 것들은 장소와 사람, 그리고 사랑하고 미워하던 관계의 그림자뿐 만 아니라, 그 것들을 표현하고 그려내는 예술적 감수성과 일상의 언어인 모국어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르셀 뿌루스뜨(Marcel Proust)의 대작 ‘지나간 것들의 추억(Remembrance of Things Past/In Search of Lost Time)’의 첫 편은 일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파리에서 출판 되었다. 지난 간 것들의 기억, 죽음과 예술, 시대를 풍미하던 준수한 인물들, 파리 상류층 들의 호화롭던 시절과 환락에 찬 생활의 모습들이 뿌루스뜨 특유의 생동하면서도 명상에 가까운 문체로 채워져 있다. 다가오는 전쟁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가 파괴되거나 잊혀질 운명에 처한 것 들이었다.
마지막 편, 다시 찾은 시간(Time Regained)에는 내레이터 ‘마르셀’이 전쟁으로 흩어지고 잊혀졌던 사람들과 재회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모두 믿을 수 없을 만큼 늙어서 이제는 죽음이 초대하는 무도회에 마지막 걸음을 옮기고 있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 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간이라는 격랑이 휩쓸어간 것 들을 회복 할 수 있다는 느낌을 점차 되찾게 된다. 예술이 추구하는 심연의 세계와 예술이 가져다주는 신비한 능력이 치유와 회복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본능적 느낌이었다.
무엇을 되찾고 회복한다는 말인가? 시간 속에 잊었고 또 잃어버린 기억의 희미한 그림자들을 되찾는다는 의미는 청춘을 회복한다는 뜻은 아닐 것 이다. 상처받은 자신의 내면과 부서지고 사라져버린 의식의 지체들이, 창조적 에너지로 회복되고 새로워지는 내면의 극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예술이 그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뿌루스뜨의 믿음은, 세월 속에 인생의 모든 것을 잃는다는 보편적 비관론을 거부한다는 뜻 일 것 이다.
이민자들은 모두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뿌리를 뽑아 옮겨서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아내고, 이민으로 잘려버린 뿌리의 통증을 회복 하여야 한다. 예술적 감수성을 날카롭게 다시 세워 잃어버린 것들, 잊어버린 기억과 꿈과 모든 관계를 이어주던 끈들을 되살려야 한다.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되고 음악가가 되고… 빛바랜 사진 한 장위에 청산녹수 긴 타래실 같은 사연을 적어 넣어 소설을 쓰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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