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역사박물관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역사박물관 외부 전경.
건국의 아버지 중의 하나요, 권리장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4대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의 부인 돌리 메디슨 (Dolley Madison)의 드레스 앞에 섰다.
“파티의 여왕이었죠. 아니 파티라기보다 사교계의 꽃이었죠. 하지만 2차 미영 전쟁때 백악관에서 도망가기도 했고, 후에 불에 탄 대통령 관저를 흰색으로 칠하여 백악관(White House) 이 되기도 했고 말입니다.”
해군장교 조지 훠크
내가 평소에 존경하는 장수영이라는 선배가 있다. 포항공대 총장을 지내시다가 은퇴하여 지금 이곳 워싱턴 지역에서 살고 계시다. 그 분은 항상 끊임없는 학구열과 새로운 지식에 목말라 하시는 분이다. 또한 참으로 많은 것을 아시는 분이다.
내가 스미소니언 역사박물관에 갈 예정이라고 하자 “한번이라도 전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조지 훠크(George Fouk 1858-1943)라는 사람이 있었죠. 그는 14살에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하고, 아시아 함대 사령관의 전속 무관으로 일본어를 단숨에 배웠으며 일본 여자와 결혼했어요. 그가 후에 귀국시 한국을 경유해 유럽으로 돌아갔는데 한국에서 많은 자료들을 수집한 것이 스미소니언 역사박물관에 소장 되어 있죠.”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이번 역사박물관 행에 같이 가자고 했고, 또 흔쾌히 받아 들여 동행하게 되었다.
역사박물관 구경은 거의 10년 전이라 마치 처음 오는 듯 했고, 장 선배 역시 그렇다고 한다. 안내 데스크에서 박물관 지도를 받아 펼쳐보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이었다.
미국의 역사의 전시물들은 1950년대에 신천지를 꿈꾸며 버지니아 주에 세운 제임스타운, 종교적 박해를 피해서 떠난 메이플라워호가 개척한 매사추세츠 주로 부터 시작함이 바람직한데 대부분의 경우 독립전쟁으로 시작되는 게 좀 못 마땅했다는 말이다.
사교계의 꽃, 돌리 메디슨
우리의 여정은 2층에 있는, 독립전쟁시 영국군의 진출을 지연시켜서 오늘의 독립이 가능했다는 대포가 실린 필라델피아 호(사진)를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옆에 대통령 방에 들어서면 ‘훌륭한 대통령은?’하면서 전자 인기투표를 하게 되어 있어 관심을 끈다. 1등이 조지 워싱턴, 2등이 링컨, 그리고 3등이 오바마 대통령이다. 행여 이곳에 흑인 관광객이 많아서 그가 3등을 한 것은 아니겠지?
대통령 방은 그 역할을 구분하여 몇 개의 방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국가의 리더’ ‘군 최고사령관’ ‘경제의 수장’ ‘행정의 수반’ ‘파티의 리더’ ‘외교의 수장’ 등등이다. 이러한 대통령의 역할 중 중요도가 어떤 것인지를 묻는 전자 투표도 있다. 그 투표 순위가 내가 윗줄에 열거한 순서대로다.
클린턴의 골프세트와 미국 대통령 선전 포스터 등을 대강 훑어본 뒤 대통령 부인(퍼스트 레디) 방으로 향했다.
방을 돌아다보면서 동행한 장 선배님은 확실히 속된 말로 백과사전이었다. 건국의 아버지 중의 하나요, 권리장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4대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의 부인 돌리 메디슨 (Dolley Madison)의 드레스 앞에 섰다.
“파티의 여왕이었죠. 아니 파티라기보다 사교계의 꽃이었죠. 하지만 2차 미영 전쟁때 백악관에서 도망가기도 했고, 후에 불에 탄 대통령 관저를 흰색으로 칠하여 백악관(White House) 이 되기도 했고 말입니다.”
21살에 백악관 안주인 되다
내가 대꾸를 했다. “제가 타이슨스 코너 근처의 비엔나에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 길 이름이 돌리 메디슨이고, 그 길 위에 있는 제임스 메디슨 고교를 내 아들이 졸업했습니다.”
“그녀는 젊은 과부의 몸으로 당시 미국의 수도인 필라델피아에서 17년 연상의 제임스 메디슨과 결혼했어요. 전 남편으로부터 자식은 있었으나 메디슨 대통령과는 자식이 없었죠. 메디슨이 국무차관 시절부터 퍼스트레이디(First Lady) 역할을 한 대단한 여인이었어요.”
우리는 다시 제22대 프랜시스 클리블랜드 대통령 부인 사진 앞에 섰다. 그녀는 나이가 제일 어린 21살에 백악관에서 결혼했다. 장 선배가 말을 이어간다.
“백악관에서 결혼을 한, 그리고 클리블랜드 대통령보다 27살이나 어린 나이였고, 가장 아름다운 퍼스트레이디였죠. 대통령 재선에 실패하고 뉴욕으로 떠나면서 ‘집기를 그대로 두세요. 우리는 4년 후 다시 올 터이니까요’라고 했지요. 그런데 정말 4년 후 2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다시 백악관 안주인이 된 거지요.”
퍼스트레이디들의 사진이 쭉 걸려있는 사진 속에서 링컨 대통령 부인이 보인다. 혹자는 악처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속에서 좋게 보면 근엄해 보이고, 나쁘게 보면 심술 있게 보인다.
제퍼슨의 흑인 여인
마사 제퍼슨이란 아름다운 여인상도 보인다. 누군가 자세히 보니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 조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장 선배가 보충 설명을 했다.
“세인들은 제퍼슨이 흑인 노예를 데리고 살았고, 아들딸들을 낳았다고 하지요. 그것은 사실이지만 그런데 내용은 좀 복잡해요. 제퍼슨 대통령의 장인이 흑인 여성과 관계를 맺어 딸을 낳았어요. 그리고 그의 딸을 제퍼슨에게 시집보낼 때 그 흑인 여인을 같이 보냈습니다. 족보로 따지자면 이복 자매인 거지요. 제퍼슨이 관계를 맺은 흑인 여인이 바로 그 여자였어요. 다시 말하면 자기 부인의 이복 동생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퍼슨 조카의 사진 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자원봉사 안내원이 다가와서 친절히 설명을 했다.
“여기 사진들이 꼭 퍼스트레이디만은 아니랍니다. 로열패밀리(Royal family) 라고 해야 겠지요.”
호기심이 많은 내가 질문을 했다. “아까 링컨 대통령 부인 드레스를 보니 키가 꽤나 작아 보이네요.”
그가 대답을 했다. “맞아요, 링컨 부인은 5피트, 돌리 메디슨 부인은 5.1피트로 작았지요. 반면 제일 큰 사람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부인이 5.9로 제일 컸지요. 오바마 부인이 등장하기 전까지요. 허지만 그녀는 6피트이랍니다.”
“아까 어느 대통령 부인의 하이 힐 슈즈가 보이던데 하이힐은 언제부터 신었나요?” “19세기 초 부터라고 보아야죠.”
아, 싱가 미싱
2층의 방들을 돌아보고 1층으로 내려오면 제일 먼저 커다란 성조기 무늬의 스크린의 방이 보인다. 국기(Star Spangled Banner)의 방이다. 이곳에서는 사진 촬영 금지다. 내부에는 모직으로 만든 초기의 엉성한 국기 이외에는 별것이 없다. 아마도 촬영금지는 경건함을 강조하려고 한 것 같다.
그러면서 미 국가 가사를 영상으로 비추어 주고 있다. 2차 미영 전쟁 때에 볼티모어 항구에서감금 당한 상태에서 영국군이 미국의 맥켄리 요새에 포탄을 퍼붓는 것을 지켜보다가 아침에 요새가 함락되지 않고 펄럭이는 성조기를 보면서 감격에 떨며 프랜시스 키(1779-1843)가 지은 시이다.
다른 방을 찾아드니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인물들, 산업의 발달 등이 전시된 방이 있었다.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한국 사람들이 아직도 기억하는 ‘싱가 미싱’이었다. 나의 어머니도 1.4 후퇴 때에 값 비싼 골동들은 다 팽개치고 이 ‘싱가 미싱’만은 가지고 피난길에 올랐었다.
다시 옆방에 들리면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 방은 미국 흑인들의 역사와 그림의 방이었다. 그리고 그림이 대부분이 아니라 전부가 노예로 아프리카에서 끌려오는 장면부터 학대받는 장면 같은 그림이었다. 흑인들은 긴 노예생활에서 끈질긴 투쟁으로 오늘에 이르렀고, 또 가해자인 백인들의 속죄의 마음으로 흑인들의 기념적인 상징들이 많이 있는 것이 이해는 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미국의 현재 인구수의 비율이나 미국의 역사 속에서 히스패닉 계통의 사람들의 역할을 생각할 때 이제는 그들 히스패닉에게도 그 무엇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로마의 마차 길과 철도
지하 1층 방에는 음식 조리기구 등과 함께 설명들, 그리고 배, 육지의 마차, 자동차, 기차 등의 발달사와 여러 전시물이 보였다. 매우 흥미로웠다. 그 중에도 기차 레일을 만드는 중국의 소위 ‘쿨리’들이 일당 1달러씩을 받고 12시간씩 일을 한다는 당시 신문 기사이었다. 미국 도시마다 소위 차이나타운의 뿌리가 이렇게 값싼 쿨리 후예로 부터 시작 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박물관을 나서면서 장 선배가 기차 레일이 전시된 곳에서 들려준 말이 맴돈다.
“영국에서 기차 레일을 깔 때에 폭을 얼마로 하느냐고 고민하다가 2천 년 전 로마 시대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바로 그 로마 길의 마차 바퀴 폭과 똑같이 했지요. 일본이 그대로 영국을 본 받아서 똑같이 했고요. 사실 처음에는 기술적으로 자신이 없어 철로에 까는 자갈까지 영국에서 수입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조선에서 부산-신의주까지 철로를 깔면서 기술 완성을 본 것이지요.”
이제 2천 년 전의 로마 마차의 폭은 영국, 일본만이 아니라 전 유럽과 미국 전체도 똑 같은 기차 레일의 폭이다. 이 통일의 움직임이 전 세계의 모든 곳에서도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영묵/미주 서울대 총동창회장 역임
워싱턴 문인회 회장 역임
한국 소설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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