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언론팀은 항상 말리지만 더 질문하세요. 나는 기자회견을 사랑하고 매일 당신 같은 친구들(you guys)과 얘기하기를 원합니다.”
지난 6월30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기자회견장.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조시 어니스트 대변인을 향해 “미안해, 조시”라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는 연방 대법원의 오바마케어 합헌판결과 동성결혼 전면 허용조치, 의회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핵심 관련법안 통과 등 잇따른 승전보에 자신감을 찾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지난주는 대통령에게 최고의 한 주였다”는 기자의 말에 “최고의 한 주는 (부인인) 미셸과의 결혼이었고 두 딸의 출생 때가 정말 기쁜 일주일이었다”며 농담으로 되받았다. 아직도 미국 역사에 써질 ‘오바마만의 정치적 업적’이 더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실제 다음 날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와 양국 대사관 재개설을 공식 선언했다.
요즘 오바마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 전임자들과는 달리 임기 말을 맞아 되레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있다. 불과 보름 전 TPP 관련 법안이 ‘친정’인 민주당의 반대에 가로막히며 레임덕(lame duck) 위기에 놓였을 때와는 천양지차의 분위기다. 당시 민주당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마저 TPP 협상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며 미래 권력을 잡기 위해 현재 권력을 배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오바마 르네상스’를 이끈 것은 미국 내 보수 세력이다. 이들은 왜 오바마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을까. 사실 최근 여러 진보적 판결을 내놓은 미 연방 대법원에는 보수 성향의 대법관 수가 더 많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은 TPP 관련 법안 통과를 위해 공화당과 손을 잡거나 민주당 반대파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등 정치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복음주의 세력의 퇴조,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과 이민자들의 발언권 강화 등으로 미국 내 ‘문화전쟁’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결혼의 경우 10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인들의 3분의 2가 반대했지만 지금은 60%가량이 찬성하고 있다. 연방 대법원도 합법화의 근거로 “결혼제도는 달라진 사회상을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바마케어나 TPP 협상,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등의 다른 이슈에서도 지지 여론이 훨씬 더 많다. 오바마 대통령의 잇따른 승리도 개인적 역량에 더해 미국사회의 변화 욕구와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췄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자신의 한계를 잘 아는 듯하다. 그는 최근 한 언론의 인터뷰에서 재임 중 가장 낙담했던 순간으로 초등학교 어린이 20명이 살해된 샌디 훅 총기난사 사건을 들었다. 그는 “미국총기협회(NRA)의 의회 영향력은 너무나 막강했고 총기규제를 위한 법적 조치를 시행할 수 없다는 사실에 구역질이 났다”며 “(총기 보유를 찬성하는) 대중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좌절감을 드러냈다. “못이 박힌 손으로 벽돌을 하나하나 쌓듯” 미국사회의 변화를 이끌겠지만 결국은 국민들의 선택에 달렸다는 뜻이다.
역설적이게도 마음을 비운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때 슬로건인 ‘담대한 희망’을 더 결사적으로 밀어붙일 태세다. 그는 “임기 동안 나이애가라 폭포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시간을 충분히 겪으면서 이제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해방감을 느낀다”며 “이런 게 연륜의 미덕 가운데 하나로 (젊은 시절 농구광이었던) 내가 농구를 더 이상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상해 주는 것 같다”며 속내를 토로했다. 앞으로 공화당과의 빈번한 충돌을 예고하면서도 더 노련한 국정 운영을 다짐한 것이다.
단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코미디 프로그램 예찬론에서도 드러난다. 단지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머를 국민과 소통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좋아하는 코미디 토크쇼를 볼 때마다 인상 깊은 점은 숱한 연습을 통해 프로그램 전반을 뛰어난 공예품처럼 만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난 얼굴의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채 여당 원내대표를 ‘배신자’라 낙인찍으며 너무나 서툰 방법으로 권력투쟁을 벌이는 현실과 교차되는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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