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주 알링턴에 위치한 35에이커 규모의 ‘브링거 농장’은 지난해 큰 손실을 입었다.
경작지에 심어 놓은 딸기와 랩스베리의 4분의 1이 수확기를 놓쳐 그대로 밭에서 썩어버렸다. 제때 과일을 수확할 일손을 충분히 구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 농장의 인력관리 매니저인 사만사 본드는 지난해의 끔찍한 악몽이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올해는 수확기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농장 일손 확보에 만전을 기했다.
지난해 가장 높은 생산성을 기록한 일꾼들에게는 개별적으로 연락을 취해 전년 대비 20%의 시급 인상을 제안했다.
크레이그리스트에 꾸준히 구인광고를 올렸고, 길가 전신주와 교회 화장실 문에도 덕지덕지 광고지를 붙였다. 인근 고교에 청탁을 넣어 아침 방송 조회시간마다 농장 일손을 모집한다는 안내광고를 내보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수확에 필요한 인력이 100명인데 비해 농장을 찾은 일꾼은 60명을 밑돌았다. 어김없이 인력부족 사태가 재발된 것이다. 본드는 심한 좌절감에 며칠간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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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 부족으로 참담한 고통을 겪은 농장주나 매니저는 그녀 한 명에 그치지 않는다.
과일과 채소 재배농가는 물론 미국의 낙농업자들은 멕시코에서 넘어오는 불법이민자들의 감소로 농장 일손을 구하지 못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미국의 경제사정이 호전되면서 일자리가 늘어난 것도 허리 휘는 농장일이 외면을 당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더럽고, 어렵고, 힘든 이른바 3D 직종에 대한 기피현상이 경기호전에 맞춰 다시 기지개를 켠 것이다. 3D 기피현상은 주거비가 싼 지역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악명이 높은 농장 기업들은 물가상승률을 앞지르는 임금인상과 의료혜택 제공 등을 통해 인력부족을 해소할 돌파구를 마련하려 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가시적인 열매를 맺지 못했다.
‘미국의 신경제를 위한 파트너십’이라는 단체가 연방 정부를 위해 마련한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의 과일과 야채의 연간 생산량은 일손 부족으로 인해 9.5%, 금액 기준으로는 31억달러가 축소됐다. 신경제를 위한 파트너십은 이민정책 완화를 지지하는 무당파 그룹이다.
일손 부족 사태가 본격화한 것은 벌써 수년 전의 일이지만 올 여름은 계절 근로자 비자 처리지연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멕시코 농장 노동자들의 미국 입국에 차질이 빚어지는 통에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일부 주에 수백만달러 상당의 작물손실이 발생한 것.
농장주들은 자신들이 연방 정부의 불법이민 단속의 최대 피해자라며 아우성을 친다. 이들의 최대 고민은 불법이민 단속으로 크게 줄어든 농장 일손을 채워줄 마땅한 대체인력을 구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출생한 근로자들은 고된 농장노동에 익숙하지 않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뜨거운 지열을 참아가며 딸기를 따는 작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껏 모집한 미국 태생 인부들은 불과 며칠을 견디지 못한 채 도망치듯 농장을 떠난다.
대부분 멕시코인으로 구성된 농장 노동자 인구는 과거 몇년 사이에 대폭 줄어들었다. 이유는 두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는 미국 정부의 불법이민 단속 강화다. 멕시코와의 국경을 접한 지역에 불법 월경을 막기 위해 펜스를 설치하는 등 통제 수위를 크게 높였다. 아무래도 국경을 조이면 불법이민 시도가 줄어들고 월경 성공률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두 번째는 멕시코의 출산율 감소다. 전반적인 출산율이 감소하면서 미국 국경을 넘으려는 청년들의 발길도 이전에 비해 뜸해졌다.
농장 일손 확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농장기업들은 근로자들에게 거처와 직업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등 선심공세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최대의 레몬 재배업체인 리모네이라는 5년 전부터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거나 지역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취업교육을 받기 원하는 농장 일꾼들에게 재정지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주 샌타폴라에 위치한 상장업체인 리모네이라는 은퇴연금을 20% 확대한데 이어 벤추라 카운티에 65채의 2베드와 3베드 주택을 지어 종업원들에게 시장가격보다 저렴하게 렌트하는 등 신규 농장 일손 유치와 기존 인력의 이탈 방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회사의 운영담당 최고책임자(COO)인 알렉스 티그는 이밖에도 종업원들의 임금을 시간당 16달러에서 17달러로 인상했다고 덧붙였다. 리모네이라는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에 2,000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다.
이처럼 혼신의 노력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리모네이라는 지난해 수확기에 5%의 작물손실을 기록했다.
충분한 인력 확보를 하지 못해 때맞춰 농작물을 거둬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렉스 티그는 상당수의 근로자들이 더 많은 페이를 제시한 이웃 농장으로 옮겨가 인력 수급에 구멍이 생겼다고 밝혔다. 일꾼들을 빼내간 농장은 리모네이라에서 불과 수마일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올해 리모네이라는 1억달러의 연간 수입을 올렸지만 썩거나 땅에 떨어진 과일들로 인해 생산량이 8% 감소했다.
티그는 “인력난 문제는 도대체 끝이 보이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농장 일손 부족사태는 어제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일부 업체에 국한된 현상도 아니다.
2년 전 작농업체인 ‘캘리포니아 아티초크 & 베지터블 그로워스’는 자체적인 분석을 통해 매년 적정수준에서 10~20% 미달하는 만성적인 일손 부족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멕시코 등지에 총 2만에이커의 경작지를 보유한 이 회사의 최고운영책임자인 조 페지니는 인력 확충을 위해 임금을 시간당 평균 14달러로 상향 조정했지만 신통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밝혔다. 현재 캘리포니아의 최저 시급은 9달러다.
캘리포니아 캐스트로빌에 본거지를 둔 이 회사는 매년 800~1,000명의 농장노동자를 고용한다.
그러나 애써 확보한 농장일꾼들은 힘겨운 노동을 견뎌내지 못한 채 불과 며칠 만에 보따리를 싼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멕시코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계절노동자들의 급속한 감소세에 따라 미국 현지에서 대체인력으로 채용한 ‘본토인’들이다.
인력 이탈이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아티초크 & 베지터블’은 새로운 농군을 데려오는 직원에게 보너스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다만 250달러의 보너스는 새로 들어온 일꾼이 최소한 3개월 이상을 버틴 후에 지급된다.
이에 따라 지난해 총 2만달러의 보너스가 지급됐지만 전반적인 인력난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상태다.
오션 미스트 팜스 브랜드를 소유한 이 회사는 최근 2%의 작황 손실을 맛보았다. 돈으로 환산하면 수백만달러어치다.
손실을 일으킨 원인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일손 부족이었다. 수확할 일손이 모자라 땀 흘려 재배한 작물의 2%가 밭에서 썩거나 땅에 떨어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페지니는 “노동은 늘 우리가 하는 일의 중요한 한 부분이지만 식품안전이라든지 농업용수 등의 문제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며 “현실적으로 우리는 가용 노동력 확보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방 농무부의 자료에 의하면 지난 4년간 전국의 농장주들이 직접 채용한 품앗이 농군들의 물가를 감안한 시간당 평균임금은 11.33달러로 5.3% 인상됐다. 이는 도매업을 비롯한 일부 업종에 종사하는 비숙련 근로자들의 실질 임금이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장기적 추세에 역행하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농장주들은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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