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식당 없는 블락 아일랜드 소형 비행기 ‘배달의 기수’… 섬 주민·관광객 사랑 받아
▶ 미시간주 비버 아일랜드 매사추세츠주 낸터킷서도 웨딩케익·돼지구이 등 취급
[로드아일랜드주 피서지 섬에 공수 서비스 인기]
미국인들은 중국음식을 즐겨 먹는다.
2000년대 초반 케이블 TV를 통해 방영돼 국내·외에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성 담론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에는 뉴욕 맨해턴에 거주하는젊은 남녀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소품으로 중국음식이 자주 등장한다.
드라마에서 묘사되듯 미국 북동부 지역의 주민들은 아메리칸 피자보다 중국음식을 더 자주 먹는다. 한국인이 국수보다 자장면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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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피서지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로드아일랜드주의 조그만 섬 블락 아일랜드 주민들에게도 중국음식은 꽤나 인기가 있다.
문제는 사방 10평방마일의 면적을 지닌 이 조그만 섬에 중국음식점이 단 한 곳도 없다는 점이다. 소형 항공사 소유주 겸 파일럿인 빌 벤도카스가 중국음식 배달원으로 나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소규모 지역 항공사인 뉴잉글랜드 에어라인스의 어엿한 창업주다. 블락 아일랜드와 동부 해안지역의 하늘 길을 연결해 주는 뉴잉글랜드 에어라인스는 1970년에 설립됐으며 현재 6인승과 10인승짜리 소형 항공기 7대를 보유하고 있다.
벤도카스는 1970년 이후 지금까지 약 50만명 이상의 승객을 실어 나른 베테런 조종사로 처방약에서 자동차 부품과 농장 가축에 이르기까지 블락 아일랜드가 필요로 하는 모든 물품을 운송해 주는 ‘배달의 기수’이기도 하다. 관광지인 블락 아일랜드에는 중국식당도 없지만 약국도 없다.
요즘 그가 가장 자주 운반하는 ‘화물’은 김이 펄펄 나는 중국음식이다. 파인트 사이즈의 컨테이너에 담긴 줘중탕지와 무슈 포크, 슈림프 로메인 등이 블락 아일랜드 주민들의 가장 많이 찾는 아이템이다.
이름이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팬다 익스프레스 등 미국에 진출한 중국식당이면 어디서나 취급하는 단골메뉴로 닭고기와 돼지고기, 새우와 면을 볶거나 튀겨 만든 음식이다.
벤도카스는 레스토랑 운영자도 아니고 셰프도 아니다. 그저 배달원일 뿐이다. 로드아일랜드주 웨스터리에 위치한 최소한 2곳의 본토 중식당이 블락 아일랜드 주민으로부터 직접 전화주문을 받아 요리를 만든 후 이를 로드아일랜드 웨스터리에 위치한 뉴잉글랜드 에어라인스의 사무실로 전달한다. 물론 음식은 블락 아일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의 출발 스케줄에 맞춰 배달된다. 그래야 주문을 한 고객들이 김이 식지 않은 따듯한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뭍과 블락 아일랜드를 연결하는 페리 서비스가 따로 있긴 하지만 선사 측은 음식배달을 허용하지 않는다.
전원풍의 아름다운 관광지인 블락 아일랜드에는 최소한 50개의 레스토랑이 있다. 고급 음식점과 해산물 전문 식당이 대부분이고 멕시칸 음식점이 두어군데 있다.
여름이 가고 가을과 겨울이 찾아오면 섬의 인구는 2만명선에서 1,000명으로 뚝 떨어진다. 관광객들이 짐을 싸들고 본토로 철수하는 데서 생기는 현상이다.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식당들도 대부분 문을 닫는다. 자연히 현지 주민들은 외식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관광 성수기에는 그나마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할 수 있지만 중국음식을 먹으려면 뭍으로 나가야 한다. 이 모든 수고를 덜어주는 주인공이 바로 벤도카스인 셈이다.
그는 음식배달 서비스를 위한 ‘화물 운송료’로 보통 8달러를 받는다. 팁을 주면 받긴 하지만 운송료보다 많은 액수는 사양한다.
사람 좋은 벤도카스는 “우리가 하는 일은 그저 뭍과의 연결일 뿐”이라고 말한다.
블락 아일랜드 주민들은 1주일에 평균 다섯 번 정도 중국음식을 주문한다.
벤도카스는 섬사람들이 만두와 볶은 밥 등 중국음식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상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비단 로드아일랜드의 작은 커뮤니티 구성원들뿐 아니라 자신을 포함해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중국음식을 즐겨 먹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인들은 중국요리에 익숙하다”고 덧붙였다.
중국 요식업계 소식지인 차이니스 레스토랑 뉴스에 따르면 미국에는 약 4만6,700개의 중식집이 영업 중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시장 조사업체인 IBISWorld가 집계한 미국 내 스시 집은 4,200개에 불과하다.
미국인들의 끝없는 아시안 음식 사랑을 담은 책 ‘포천 쿠키 크로니클’을 펴낸 제니퍼 리는 “중국음식을 먹는 것은 미국인이 미국인 됨을 보여주는 일종의 벤치마크(기준)로 자리를 잡았다”고 주장했다.
리는 ‘좌 장군의 닭’(General Tso’s chicken)이라는 뜻을 지닌 닭과 누들을 섞어 만든 볶음요리 줘종탕지와 애플파이와 같은 미국의 대표적 식품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주문한다.
애플파이보다 줘종탕지를 선호하는 미국인 훨씬 많다는 뜻인데, 사실 이 음식은 정통 중국요리가 아니라 현지인의 입맛에 맞춘 퓨전에 가깝다.
어쨌건 줘종탕지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블락 아일랜드의 경제적 현실은 중국식당의 존속을 어렵게 만든다.
블락 아일랜드에도 중국집이 한 곳 있었다.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다.
처음 오픈했을 때 문전성시를 이루었지만 얼마 못가 문을 닫았다. 주인은 적자폭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손님은 많았지만 엄청난 경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중국 요식업체 소유주들은 1년 열두 달 가게 문을 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블락 아일랜드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관광객들이 철수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짐을 싸들고 돌아가면 섬에는 1,000여명의 토박이들만 남게 된다. 관광시즌이 끝나고 외지인들이 떠나면 이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식당들도 일제히 문을 닫는다.
수가 다소 적긴 해도 주민들만을 상대로 비수기에도 계속 문을 열고 장사를 하면 될 것 아니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차이니스 레스토랑 비즈니스 뉴스의 대변인 베티 시에는 블락 아일랜드의 방세가 너무 비싸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중식당이 번창하기 위해선 영업장의 위치 선정이 대단히 중요한데 블락 아일랜드는 업주들의 원하는 입지조건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중국음식점 업주들은 레스토랑 자리를 볼 때 인근 거주지역의 방세부터 살핀다. 입지 선정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동네 아파트 렌트인 셈이다. .
베티에 따르면 식당 종업원이 대부분 중국에서 건너온 저소득자들이기 때문에 주거비가 비싼 곳에 음식점을 차리면 주방 일손을 구하기 힘들다.
부동산 웹사이트 투룰리아(Trulia)가 집계한 블락 아일랜드 주택 중간 판매가격은 100만달러를 약간 웃돈다.
부유한 북동부 지역의 관광지이다 보니 집값이 비싼 것이 당연하다.
집값이 비싸니 방세도 장난이 아니다. 비수기에는 그나마 값이 약간 떨어지지만 성수기가 돌아오면 다시 치솟는다. 싼 값으로 1년 내내 묵을 수 있는 방을 잡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는 중국인 주방 일손이 장기적으로 머물 수 있는 조건이 전혀 아니다.
이렇게 보면 블락 아일랜드가 중국음식점이 들어서기에 마땅한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 전역으로 범위를 확대할 경우 음식 공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주는 벤도카스 외에 더 있다.
미시간주의 비버 아일랜드 주민들은 설립된 지 9년째인 지역 항공사 프레시 에어 에이비에이션을 통해 중국음식을 공수 받는다. 비버 아일랜드는 미시간호에 있는 섬들 가운데 가장 크다.
매사추세츠주의 마사스 비녀드와 낸터킷 주민들이 호수 건너 식당에 주문한 중국음식은 케이프 에어와 뉴잉글랜드에 본부를 둔 자매사 낸터킷 에어라인스에 의해 배달된다.
케이프 에어와 낸터킷 에어라인스의 부사장 트리시 로리노는 중국음식뿐 아니라 웨딩 케익도 종종 공수하고 있으며 돼지 통구이 화물을 받은 적도 있다고 밝혔다.
항공편으로 음식을 배달하는 것은 사실 이상적인 방법은 아니다. 블락 아일랜드의 경우엔 특히 그렇다.
블락 아일랜드에서 가장 가까운 동부 연안도시 로드아일랜드주의 웨스터리까지는 비행기로 불과 12분 거리다.
그러나 주문한 음식이 고객에게 전달될 때까지 실제로 걸리는 시간은 90분을 훌쩍 넘긴다. 공항에서 물건을 내리고 주문한 사람의 집에까지 차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벤도카스의 책임은 블락 아일랜드 공항까지 음식을 옮겨 오는 일이다. 픽업은 주문한 고객이 직접 하도록 되어 있다.
주문 고객들도 “김이 펄펄 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식탁에 오른 줘종탕지는 따듯하긴 하지만 뜨겁지는 않다.
블락 아일랜드의 유명 관광호텔인 ‘애틀랜틱 인’의 소유주인 브래드 마덴스는 “솔직히 말해 중국음식은 식어도 맛있다”고 말했다.
<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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