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떠들썩하던 중국 잔치가 끝났다. 지난 3일 항일·반파시스트 전승 70주년(전승절) 열병식 당시 제갈공명의 호풍환우(바람과 비를 불러일으킨다)처럼 먼지 하나 없던 베이징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스모그로 덮였다. 1만2,000명의 중국 인민군이 톈안먼 광장 앞에서 보여준 열병식을 중국 신문망은 다궈지펑(대국의 바람)으로 표현했다.
열병식이 끝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웨이신에는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와 시진핑 주석의 연설 내용이 올라온다. 열병식에 대한 중국인들의 자부심을 표현한 것이다. 가끔 얘기를 나누는 이웃은 열병식 사진을 휴대폰에 담아 보여주며 목소리를 높인다. 다궈지펑에 13억 중국인이 들떴으니 중국 입장에서 열병식은 자체로도 성공적이다.
중국 전승절은 시진핑 정부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줬다. “우리의 군사력과 정치력과 경제력이 이 정도다”라고 말한 열병식은 미국과 일본의 아시아 전략을 견제하고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시 주석은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하며 ‘중화민족의 부흥’을 첫 일성으로 외쳤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은밀하게 힘을 기르다)나 후진타오의 화평굴기(평화롭게 일어서다)와는 다른 중국을 예고했고 이런 예고는 이번 열병식으로 현실이 됐다. 여기에 전승절 기념식은 중국을 2차 세계대전 승전의 조연에서 주연으로 변모시켰다. 미국이 2차 대전 승리 이후 전 세계 패권국가로서 자리를 굳혔듯이 중국도 아시아 지역에서 2차 대전, 반파시스트 전쟁을 이끈 국가로서 경제·정치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주요 2개국(G2)으로 손색이 없다는 점을 전 세계에 인식시키려 했고 표면적으로는 확실한 효과를 거뒀다.
그런데 중국의 다궈지펑에 우리는 너무 세차게 흔들린다. 중국이 만드는 힘의 균형에 기존질서가 깨지며 나타날 수 있는 변화에 우리가 들뜬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중국 방문 이후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한중 간 한반도 통일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민감한 발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아직 중국 측은 이 부분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정상회담의 공식적인 내용만을 뜯어보면 과거보다 중국이 한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잔칫집에 찾아온 귀빈에 대해 최대한 예의를 갖춘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은 기자의 너무 주관적인 판단일까.
물론 이번 열병식이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있어 우선순위를 한국에 뒀다는 점은 큰 성과다. 하지만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강한 압박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는 성급하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본질은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유지다. 극단적으로 북한이 무너져 턱밑에 미국의 동맹국과 국경이 맞닿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의 힘의 쇼에 우리가 흥분해서는 안 된다. 좀 더 차분하게 실체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난 8일 중국 관영매체인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현재 북중 관계가 미묘하지만 통제가능 범위에 있다”고 강조했다. ‘미묘하다’는데 방점을 찍느냐, ‘통제가능 범위’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북중관계에 대한 해석은 크게 달라진다. 일각에서는 미묘하다는 표현은 최근 중국과 소원해진 북한을 겨냥하고 통제가능 범위는 북중 관계 갈등을 바라는 한국을 겨냥한 표현으로 분석한다.
8.25 남북합의에 대해 홍콩 매체인 싱다오르바오는 중국이 곤혹스러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대치국면에서 대화국면으로 갑자기 변화한 한반도 정세에 어떻게 적응할지 고민스럽다는 것이다. 싱다오르바오는 중국 정부가 여전히 북핵문제 등에 대해 한국과 소통을 강화해 한반도 문제에 주도권을 쥐려는 북한을 경계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의 첫 번째 한반도 정책은 영향력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무게 중심이 남쪽으로 이동했지만 판 자체를 깨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통일의 주체는 남과 북이다. 속내를 감추고 불어오는 다궈지펑에 쉽게 들떠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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