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한잔의 초대/ 최윤희 JHS189 학부모 코디네이터•뉴욕한인학부모협회 공동회장
타고난 디자인 감각, 어릴적 남대문 주얼리계서 히트
1983년 승마선수 샤프롱으로 미국행
“어린시절부터 다른사람 돕는것 내 삶의 일부”
설날 공휴일지정ㆍ동해병기운동 등 수많은 캠페인
최윤희 뉴욕한인학부모협회 공동회장(라정미•최윤희)은 최근 한국 SBS '그것이 알고싶다‘-붉은지붕집의 비밀’편이 최회장과 협회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SBS의 왜곡보도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인터뷰에 협조한 최윤희 공동회장이 마치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를 옹호하는 듯이 왜곡편집해 방영했다는 주장이다. (최윤희 회장과의 인터뷰는 이 일이 있기 전인 2월25일 JHS189에서 이뤄졌다.)
●우리 목소리 내기
“그동안 400~500명 초청 이벤트를 500개 정도 했다. 어떤 이벤트를 기획하면 아이디어가 뿅뿅 솟아 올라온다. 큰아들만 우대해선 안된다, 늦게 이민 와서 작은 아들이 된 우리도 같은 자식이다. 우리의 목소리를 내어 우리 권리를 찾아야 한다.”
최윤희는 올2월 뉴욕한인학부모회 공동회장(라정미, 최윤희)에 연임되었다. 본업은 JHS189 학부모 코디네이터다. 교육 세미나를 열어 뉴욕시 최신 교육정보를 전달하고 이민자들이 학교와 소통하도록 돕는 것이지만 한인들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대한민국 이미지에 해가 되면 열혈 전사가 된다.
뉴욕한인학부모협회는 그동안 공립학교 설날 공휴일지정, 동해병기운동, 뉴욕시행사 욱일승천기 문양사용 항의 등등 수많은 캠페인을 이끌었고 욱일승천기 문양사용 해명편지, 아시아나기 한인비하사건 미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공식사과, 맥도널드의 한인노인 홀대사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냈다.
한인사회뿐 아니라 타 커뮤니티에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고 관심을 모아 속전속결로 처리하니 본협회와 최윤희의 이름은 주류사회에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브롱스 몬트피어병원 김성수씨 사건해결을 위한 서명운동, 한기석씨 사망직전 사진 게재 뉴욕포스트 항의서한 보내기, 5월 스승의 날 행사준비를 하고 있다.
●열린 가족
최윤희는 1954년생으로 아버지 최순성씨 3형제(최무성, 혜성, 순성)는 1955년 ‘시발 자동차’를 개발 판매하여 어려서부터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했다. 친지 중 외교관이 많아 파티를 열면 어른들은 댄스, 노래, 승마를 했다. 가족관계도 4남4녀 중 2녀로 언니, 오빠, 남동생, 여동생이 모두 있으니 그야말로 최윤희는 다 가진 셈. 그러나 이 행복은 어느 날 갑자기 깨졌다.
5.16 군사정변이후 정부 보조금이 중단되고 일본차가 수입되어오며 한국최초의 지프형 자동차는 1963년 단종되고 말았다. “초등학교 4학년때 수영장에서 반바지 수영복 차림으로 북아현동 집에 왔는데 집앞에 트럭 5대가 서있고 짐들이 실려있었다. 하루아침에 집안이 망했다. 반항심으로 나는 대학은 안간다고 했다.”
3년간은 어머니대신 전당포에 가서 지닌 귀중품을 맡기고 생활했으나 집안은 가난했고 그는 당시 유행인 은팔찌를 하고 싶었다. 디자인을 한번도 배운 적이 없는 그가 그린 디자인은 이태원 디자인 가게를 거쳐 이후 3년간 남대문 시장 일대 실버 주얼리계에서 히트를 쳤다.
수도여고 졸업 후 1978~1982년 시사영어 출판사 영업담당자로 일했고 경기도 오산에 승마장이 생기자 버스를 타고 무작정 찾아갔다. “말을 타고 싶어왔다”는 젊은 아가씨의 당돌한 한마디에 승마장측은 순순히 말을 타게 했고 그날 그는 2시간동안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
이 날이 계기가 되어 승마를 하러온 국회의원의 영어강사를 했고 이후 승마 국가대표가 되는 김성중 학생의 샤프롱으로 미국에 오게 되었다. 메릴랜드대학 서울캠퍼스에서 영어를 배웠을 뿐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 미국 유학 올 방법이 없었던 그는 1983년 버지니아 모번 팍(Moven Park) 승마 인스티퓨터로 왔고 수중에는 주얼리 공구를 지녔을 뿐이었다.
몇 개월 후 최윤희는 LA를 거쳐 1983년 뉴욕으로 디자인을 배우러 왔다. “플러싱 샌포드애비뉴 키푸드 2층에 룸메이트로 들어갔다. 한국일보 광고에서 유대인 회사에서 보석디자이너 구한다는 것을 보고 찾아갔다. 인터뷰를 한 그날 밤 걱정반 기대반으로 잠이 안왔다. 새벽 6시에 채용하겠다는 전화가 왔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뉴욕최초 한인 학부모 코디네이터
주얼리 회사에서 신분 스폰서가 되어주고 낮에 일하고 밤에는 파슨스 스쿨에 슈즈 디자인을 배우러 갔다. 가불한 돈으로 식빵, 계란 한 줄, 피넛버터를 사서 아침, 점심을 해결하고 저녁은 먹지 않았다. 악바리처럼 살면서 디자인한 보석, 옷, 신발들은 고객의 눈에 뜨이고 빛이 났다.
“내 피 같은 돈으로 수업을 받는데 강의실 제일 앞에 앉아서 모르는 것은 다 물어봐야 했다. ” 최윤희는 프랫 그래픽 디자인 클래스에서 만난 리차드 갈리건과 결혼 후 두 딸을 낳고 키우면서 11년동안 퀸즈장로교회 성인영어반을 맡아 가르쳤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학부모회 활동을 시작했는데 PS209의 PTA 활동에 이어 한국학부모회(KPTA)를 만들어 설날 잔치를 열었다. 시원시원한 달변에 적극적인 그는 잡채, 김밥 등 한국음식을 잔뜩 갖고 가서 아리랑 노래를 부르고 버라이어티 쇼를 열었다.
그러자 “한국 학부모회를 따로 하느냐.,”, “너무 설친다”는 등 미국학부모들에게 인종차별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2년간 한국학부모회 회장으로 꿋꿋하게 버텼다. “말발이 서려면 알고 얘기해야 한다.”며 PTA 내용을 번역한 한국어 뉴스레터를 한인학부모에게 전달했다.
플러싱으로 이사 오면서 2000년도에 큰딸 사라가 입학한 JHS 189 전체 학부모회 회장과 부회장으로 2년간 봉사했고 라과디아 예술고에 가자 스쿨 리더십팀의 9학년 학부모 대표로 회장, 부회장을 했다. 뉴욕한인학부모협회 회장도 초창기에 했다가 몇 대를 거쳐 다시 2009년부터 공동대표이다.
그가 입는 특이한 한복과 헤어장식은 한국 남대문시장 한복점에서 사온다. 남들이 뭐라 하면 할수록 더욱 멋지고 화려하게 하고 다니는 그를 남편도 익사이팅하게 봐준다.
“라과디아 예술학교니까 학부모도 예술가처럼, 보라색 드레스에 초록색 신발, 머리는 트레머리로 올려서 온갖 장식을 하여 활짝 핀 꽃처럼 하고 갔다”니 이는 계획된 컨셉인 셈이다.
최윤희는 2003년 뉴욕시교육국의 최초 한인학부모 코디네이터로 임명되었다. “2003년 9월부터 오전9시부터 오후4시까지 주당 35시간씩 근무하고 있다. 한인사회 활동에 학교가 많은 도움을 준다. ”
최윤희는 2006년 뉴욕시 교육청 선정 최우수 학부모 코디네이터 선정, 2015년 뉴욕주 상원으로부터 올해의 ‘탁월한 여성상’을 받았다.
●아직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
최윤희는 노래도 춤도 디자인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지만 타 커뮤니티 무대에서 연설후 이를 보여준다. 중국인 회합에서는 첨밀밀의 ’꿈같은 사랑‘, 이태리나 히스패닉 모임에서는 산타루치아와 베사메 무쵸, 흑인 모임에서는 흑인영가를 부른다. 하지만 무대의 스타가 되기까지 미리 원어 노래를 연습하고 원고를 써서 녹음하며 연습해온 남모르는 노력이 있었다.
최윤희는 비즈니스를 하는 미국인 남편 리차드 갈리건 슬하에 두 딸을 두었다. 사라는 아티스트, 레베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모두 엄마의 예술적 재능을 이어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다른사람을 돕는 것이 내 삶의 일부였다”는 최윤희. 아직 그가 할 일은 많다.
인종차별이나 억울한 일을 당했다며 그를 찾아오는 한인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 주장이 옳은 지, 그른 지를 잘 가려서 판단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동안 한인사회 활동을 하면서 왕따가 되기도 하고 오해도 받고 욕도 먹었다.
“식당에서 마주치는 한인 중 수고하신다고 인사 해오는 분이 있다. 내 가족처럼,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와주고 싶다. 힘들긴 해도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힘들 때 기도를 많이 한다.”
사실 최윤희가 하는 일은 돈이 생기지 않는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열정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인권과 명예와 자존심을 찾는 일, 누군가 해야할 그 일을 그가 앞장서 한다. 최윤희는 말한다. “아직 나의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 70대에 올 것 같다.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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