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께서 여자도 생활수단이 있어야 한다며 약학대학을 권하셔서 그쪽을 택했다. 남편 따라 미국에 와서 다시 약대에 편입했다. 약이 우리 몸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또 우리 몸이 어떻게 약을 분해하고 배설하는가를 공부하며, 우리 인체의 아름다운 조화와 평형을 보았다.
졸업 후 ‘Peoples Drug’에서 일했다. 낮, 저녁, 주말 등 번갈아 일하고 아이 셋 기르며 바쁘게 살았다. 식품의약국(FDA)에서 일하고 싶었으나 들어가기 어려웠다. 정부 직에 일단 발을 들여놓고자, 워싱턴 시내의 ‘VA Hospital’에 약사로 취직했다. 가끔 야간근무를 했는데 밤 12시에 출근하여 아침 8시까지 일했다. 외래환자 약국이며, 약창고가 여러 개 있는 그 커다란 공간에서 밤에 혼자 일하며 갑자기 어느 구석에서 누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 무서웠다. 아침에 워싱턴 교외의 집으로 퇴근할 때, 신호등 앞에서 깜빡 졸다가 차가 앞으로 스르르 미끄러지곤 했다.
드디어 FDA에 자리를 찾았다. 처음엔 제약회사에 공식편지를 쓰는 업무를 맡았다. 의약품의 독성에 관심이 있어 일하는 틈틈이 독성학(毒性學)코스를 택해 공부했다. 독성학자 시험(American Board of Toxicology)에 합격하여, 마침내 새로운 의약품의 안전성을 심사하게 되었다.
약국에서 10년, FDA에서 22년, 도합 32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그동안 아이들은 성장하여 집을 떠났다. 그 애들이 어릴 때 조용하게 시간을 같이 보내며 인생을 음미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제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미국에서 더 오래 살았다. 영어권 독자에게 한국인의 희로애락을 문학으로 보여주고 싶다. 우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게 내 남은 과제가 아닐까?
영어권 독자를 위해 열 한 편의 영문 단편을 써서 소설집 ‘River Junction’을 펴냈다. 한국이란 강과 미국이란 강이 만난다는 제목이었다. 한글 독자를 위해서 번역판인 ‘두물머리’ 즉 “두 물이 만나는 지점”도 출판되었다. 아마존에서 ‘Sukza Park’으로 검색하면 ‘River Junction’과 ‘두물머리’가 뜬다.
또 장편소설 ‘하멜의 후손’이 작년에 한국에서 출판되었다. 하멜은 17세기에 한국을 처음으로 서양에 소개한 분인데, 한국에 남은 그의 후손을 그려보았다. 아침에 창밖 숲을 내다보며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항상 안전하고 확실한 것을 주장하셨던 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온다. 두 갈래 인생 행로에서 갈등하며, 두 나라 말을 쓰며 많이 보고 배웠다. 한 많은 역사를 가진 한국을 배경으로 영어권 독자를 위해 의미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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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자 /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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