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도 워싱턴의 한 연방법정에서는 2차 세계대전의 주범 아돌프 히틀러가 그린 4점의 수채화의 향방을 놓고 치열한 법정공방이 벌어졌다.

2차대전과 홀로코스트(유태인 대학살)의 원흉 히틀러가 상당수준의 아마추어 화가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정부가 지금까지 육군역사보관소에 비밀보관하고 있었던 이들 히틀러의 그림들은 원래 히틀러의 절친한 친구이자 전속사진사였던 하인리히 호프만 소유였다.

종전후 미국정부는 이 그림들이 나치의 선전도구로 쓰였다는 죄목을 붙여, 호프만의 방대한 사진자료들과 함께 압수했다. 무려 250만점에 달하는 사진자료 중에는 히틀러가 특유의 선동적인 연설을 연습하는 컷을 비롯, 그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매우 개인적인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정부는 당시 이 자료들 이외에도 수천 점에 달하는 나치의 중요한 예술품들을 함께 압수했다.

이 작품들은 뉴렌버그 전범재판에서 증거물로 채택된 후, 훗날 워싱턴으로 옮겨졌다. 그후, 1950년대 그 대부분이 독일로 반환되었으나, 나머지 수백점의 작품들은 워싱턴의 한 비밀금고에 보관된채 오늘에 이르렀다.

호프만은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치선동가로 기소되어 독일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교도소에서 5년을 복역했다.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작품들을 임대해 준 대가로 엄청난 로열티를 받아 챙겼었다. 석방된 후 호프만은 미국정부를 상대로 반환소송을 벌이다가, 1957년 딸 헨리에타를 유산후계자로 지명한채 세상을 떠났다.

헨리에타는 텍사스의 소장가 빌리 프라이스와 함께 소송을 계속하다가 지난 1992년에 사망했다.

원고측 변호사들은 호프만의 소장품이 오래전에 정치적 의미를 상실한 만큼, 이제는 독일정부가 아니라 원고측에 반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또, 이 작품들이 정치적 이유로 억류되고 있는 것은 일종의 절도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몇몇 법적근거를 제시하며 소유권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연방정부 규정 및 전후 독일정부와 체결한 협약에 의거, 미국정부가 문제의 작품들을 소유할 권리가 충분하며, 반환청구 시한도 오래전에 끝났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그동안 미 연방법무부의 입장을 대변했던 제프리 엑셀라드 변호사는 이렇게 주장한다.

"미국정부가 2차 대전에서 승리한 대가로 압수한 히틀러의 작품들을 소유할 법적근거는 충분하다"

나치독일 및 홀로코스트 전문가인 시빌 밀톤도 동조한다.

"히틀러의 그림들과 관련사진들이 대중에게 공개될 경우, 히틀러와 나치독일의 끔직한 야만성을 순화, 은폐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호프만은 생전에 히틀러의 전속 사진사였을 뿐 아니라, 그의 대중연설을 지도한 코치이기도 했다.

히틀러가 그의 첫 번째 정부 에바 브라운을 만난 곳도 호프만의 스튜디오였다. 그 당시, 에바는 호프만의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예일대학의 심리학자이자 ‘히틀러: 파괴적 예언자의 심리분석’의 저자인 프릿츠 레드리히는 말한다.

"호프만은 히틀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사진을 통해 히틀러의 변덕과 편견을 포함한 개인적 성격을 누구보다 잘 포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1936년 히틀러는 호프만의 50회 생일 때, ‘뮌헨의 옛 궁중안뜰’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손수 그려서 선사했다.

그로부터 9년후 나치가 패망했을 때, 호프만은 이 궁중그림을 포함한 히틀러의 그림 4점을 뮌헨 외곽의 한 중세 고성과 교회예배당에 다른 사진작품들과 함께 은폐했었다. 독일항복 이후 이 작품들은 연합국 조사관들에 발견되었고, 1945년의 포츠담 협약에 따라 미국정부에 의해 압수되었다.

그후 사진들과 그림들은 제각기 다른 운명을 걸었다.

250만점에 달하는 사진작품들은 워싱턴의 국립고문서보관소에 보내져서 지금까지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이들 사진들은 19세기말 독일 사회상으로부터 1945년 히틀러가 자살하기 며칠 전까지의 광범위한 영상들을 담고 있다. 몇 년전 법무부는 고문서보관소에 있는 호프만의 사진작품들의 가치가 300만달러에 달한다고 감정한 바 있다.

이들 사진작품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이 알려져 왔지만 히틀러의 그림들은 미육군의 군사역사센터에 비밀 보관되어 왔다.

현재 시중에는 이들 4점의 그림 외에도 히틀러 작품으로 알려진 수백점의 그림들이 유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히틀러의 그림작품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작품당 1만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전한다. 한편, 소송 원고측은 그동안 이 작품들에 대한 사용권이 침해당한 점을 감안, 9,900만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