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살 먹어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충청도 사투리를 아주 심하게 했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아이들이 흉내를 내고 골려대는 통에 나는 말없는 아이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표준말을 익혔고 더 이상 놀림을 받지 않았다. 그런 어느 날 나의 어머니께서 학교를 방문하셨는데 선생님을 ‘선상님’으로 부르고 내 이름 ‘배희남’이를 ‘배흐냄’으로 부르신 통에 아이들마다 나를 ‘흐냄’이라고 부르며 골려댔다.
집에 돌아와 나는 화가 나서 어머니께 대들었지만 “핵굘 못댕겨 그렁걸 워떡혼대냐?” 하고 안타까워 하셨다. 당시만 해도 표준말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고 학교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표준말을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시 말해서 지독한 사투리를 하는 사람은 학교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으로 이해되었다 하겠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다른 것 같다. 인정이 메마른 세상이라 표준말 쓰는 도회지 사람들 보다는 구수한 사투리의 순박한 시골사람들이 더욱 정겹게 느껴지기 때문인지 지식층에 있는 사람들도 거침없이 사투리를 쓴다. 오히려 잃어버렸던 사투리를 애써 기억해서 사용하여 동향인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기야 대통령이 어느 지방 출신이냐에 따라서 각료와 지도층이 같은 지방 출신으로 바뀐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겠다.
입으로는 지방색이나 지역감정이 나라를 망친다고 외치면서도 지방색 짙은 사투리 하나 못 고친단 말인가? 전라도 사투리 말을 하면 전라도 사람이고 경상도 사투리 말을 하면 경상도 사람이다. 지방색을 없애고 한국인 모두가 한국인이기를 원한다면 사투리가 아닌 표준말 쓰기 운동부터 전개해야 할 것 같다.
특히 대중을 상대로 하는 방송인이 강한 지방색을 띤 억양으로 거침없이 방송을 내보내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같은 노래도 부르는 가수에 따라 맛이다르고 속삭이듯 감미로운 목소리도 자꾸 들으면 싫증나는데 지방색 짙은 탁한 목소리로 강한 논조를 펴나가 보았자 따라 움직여줄 사람이 있을까 싶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차로 가도 세시간이면 충분할 만큼 작은 땅덩이에서 사는 한국사람들이 수십년을 두고 지방색 때문에 정치를 그르쳤으면서도 사투리 하나 버리지 못하고 산다. 미국은 용광로에 비유되는 나라다.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를 짊어지고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왔어도 ‘아메리칸’이라는 한 가지 이름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같은 사투리를 쓰는 동향인이라 해서 우대하고 같은 학교 출신이라 해서 출마자에게 표를 주어야 한다는 논리는 위험한 논리이다. 한국사람이 출마했으니 한국사람으로서 당연히 찬표를 주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떠들어대면, 다른 민족이라고 똘똘 뭉치지 않겠는가?
이 미국땅에서 애국심을 말할 때에는 좀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한국민의 정치적 신장을 위해 유권자등록을 해야 하고 투표에도 한인들이 많이 참여해야 하지만 한국인은 한인후보만 찍는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한인 유권자는 미국시민권자들이고 선서할 때 이미 한국시민이 아닌 미국시민으로 살겠다고 서약을 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차피 손은 안으로 굽고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인들’ 혹은 ‘같은 민족’ 운운하면서 파당을 짓고 구별화하면 다른 민족도 그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소수민족인 우리 한국인에게 이득 될 것이 없다. 어설픈 애국심이나 민족우월주의, 그리고 민족이기주의는 평화 속에서 살기를 갈망하는 글로벌시대의 주인공인 우리들에게 가장 큰 적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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