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칫집에서도 명암은 갈리기마련이다. 한국영화 중흥이라고 야단법석이지만 그 가운데 부익부 빈익빈이 더 심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영화판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모두 밝은 쪽만 바라보고 희망을 건다. 가지지 못한 쪽은 ‘언젠가는 터지겠지’라는 기대를 갖고, 또 가진 쪽은 ‘좀더 가열차게’라는 바람이다.
스타 아닌 조연급 중견 배우 세계에서도명암은 크게 엇갈린다. TV와 영화를 넘나들며 유명세를 떨치는 배우들은 시간을 쪼개서 겹치기 출연을 하고, 반면 간신히 1년에 한 편 그것도 주류가 아닌 변두리 영화에서만 얼굴을 볼 수 있는 배우들도 있다. 판이 커지고 풍족해질수록 이들의 명암은 더욱 강렬히 대비된다. 하지만 누구도 꿈을 잃진 않는다. ‘기회는 반드시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새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중견 배우들의 명암을 들여다보자.
톱스타 안부럽다
지난 연말 개봉했던형사 액션영화 ‘이것이 법이다’(AFDF, 민병진 감독)는 촬영에 무척 애를 먹었다.
이유는 놀랍게도 중견 배우들이 너무 바빴기 때문. 주연인 김민종 신은경 임원희 보다 주현 장항선 김갑수 등의 ‘40대 아저씨’들이 훨씬 바빴다. 제작진은 “조연이지만이들 세 사람을 한데 모아서 촬영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른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들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꼭 몇 차례씩 스케줄 조정을 거쳐야 간신히 촬영 날짜를 잡을 수 있었다.
영화가 개봉된 뒤장항선은 더욱 놀랍게도 “실질적인 주인공”이란 평가까지 받았다.
이 맛에 산다
작년에 영화 ‘라이방’(신화필름, 장현수 감독)을 ‘운전했던’ 세 택시 운전사 역의 조준형 최학락 김해곤 등은 이구동성으로 “’라이방’을 통해 배우가 된 기쁨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비록 흥행에서는 참패했지만, ‘라이방’의 빼어난 작품성으로 언론으로부터 따뜻한 관심을 받은 것이 이들에게 엄청난 보람으로 남았던 때문. 덕분에 세 사람은 꽤 많은 인터뷰를 했고, 짧지만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30대 후반의 이들 세 배우는 ‘라이방’ 전까지는 출연 횟수만 많은 단역 같은 조연에 불과했다. 하지만 ‘라이방’으로 당당히 주연 대접을 받았다. 바로 그 점 하나로 이들은 이전까지의 고생을 상쇄하는 뿌듯함을 느꼈다. 박한 출연료가 아니라 관객의 관심과 스포트라이트가 이들을 지탱한다.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영화판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 이 맛에 산다.
언젠가는 내게도…
개봉 초읽기에 들어간 로드무비 ‘아프리카’(신승수프로덕션, 신승수감독)에 출연하는 이제락(40)은 연기에 대한 회의로 오랜 기간 방황했다. 데뷔 이후 ‘개 같은 날의 오후’ ‘마리아의 여인숙’등 1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 대부분이 마이너리그 작품이었고, 확실한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했다.
그렇게 지내다 이제락은 97년 돌연 ‘다시는연기를 안한다’는 결심을 한 채 일본으로 떠났다. 오사카에 머물면서 돈 벌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했는데시간이 지날수록 드는 생각은 “무슨 짓을 해도 연기만큼 잘 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2000년에 다시 돌아와 영화계 문을 노크했다. 복귀 첫 작품이주진모 주연의 ‘실제 상황’. 거기서 맡은 역은 미미했으나 돌아와보니 영화판이 무척 풍성해진 것이 용기를 북돋웠다.
이제락은 “다른 일을 하면남의 옷을 입은 느낌이다. 이제부턴 연기에만 전념할 거다. 새로 시작한 기분 때문인지 의욕 하나만큼은 하늘을 찌를기세”라며 사람좋은 웃음을 지었다.
’아프리카’에서 그가 맡은 역은 형사를 꿈꾸는 귀여운 건달 ‘날치’. 이제락은 “처음으로 도전한 코믹 연기였는데 너무 재미있었다”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다시 한 번 파이팅을 외치는 이제락의 가슴 속에는 ‘언젠간내게도…’라는 희망이 담겨 있다.
이런 그들이 있기에 오늘 한국영화의 영화(榮華)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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