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발병률 백인의 2~6배인 아메리칸 인디언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전통 빌려 교육, 예방 펼쳐
슐린의 절대부족으로 소아기에 발생하는 제1형 당뇨병과 달리 고지방식과 운동 부족과 연관되는 일이 잦은 제2형 당뇨병은 성인기에 시작된다. 미국에선 지난 90년 이후 환자가 세배 이상 증가했을 만큼 제2형 당뇨병이 만연해 현재 1,700만여명이 앓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연방 보건당국은 모든 비만증 성인들과 당뇨 발생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당뇨 전단계’ 검사를 받도록 권유했다. 이는 막상 당뇨가 발병한 이후에 닥칠 더 큰 문제들을 사전에 막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당뇨 예방 및 치료센터에 따르면 소수민족은 백인들에 비해 제2형 당뇨가 발병할 확률이 무려 2배에서 6배까지 높다.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의 경우 확률은 3배 정도 된다. 일부 부족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발병 가능성을 안고 있어 성인의 50% 이상이 당뇨로 고생하고 있다.
최근의 의학연구는 식생활 개선과 운동량 증가가 어떤 약물보다도 당뇨의 예방 및 치료 효과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합병증이나 부작용이 따를 수 있는 비싼 약물을 쓰지 않고도 당뇨를 막을 수 있다니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뜻밖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생활습관을 바꾸도록 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수민족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문화의 차이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주류사회 병원에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자주 ‘비협조적’이란 평가를 듣는다. 왜냐하면 환자 스스로가 식사나 약물복용으로 병을 치료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환자들이 치료에 관심이 없다고 단정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디언 헬스 서비스’의 간호사이자 호청크(혹은 위니바고) 부족의 멤버인 로렐라이 디코라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다. 문화적인 배경이 환자들로 하여금 치료과정을 기피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의사들이 간과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신의 안위보다 가족을 우선 생각하는 원주민 문화에서는 자기 건강을 챙기는 일을 이기적인 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오와 대학 간호학과의 토이 트립-라이머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당뇨에 걸렸다는 것은 곧 생활과 정신력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스런 일로 여긴다. 그래서 치료를 받으러 가거나, 당뇨에 걸렸다는 사실 자체를 드러내길 꺼린다.
디코라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문제 해결의 영감을 얻기 위해 기도하기로 했다. 며칠 동안 금식하고 춤추면서 자연과 정령과 대화하는 의식인 선댄스에 가서 조상들이 그랬듯 선과 악, 인간과 동물, 지구의 균형을 상징하는 선댄스 나무에 생각을 집중하다 계시를 받았다. 그 계시는 바로 “답은 우리의 전통 속에 있다.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은 우리의 전통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디코라는 동부 네브래스카의 위니바고족의 보호구역에서 자라면서 본 ‘이야기 서클’을 기억해 냈다. 부족의 멤버들이 커다란 원을 그리고 앉아 마을의 공통 관심사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삶과 자연의 순환을 믿는 이들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전통으로 지금도 원주민 문화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영감을 얻은 지 6년만인 지난 98년 디코라는 미네소타 대학 교수인 펠리시아 호지의 연구팀에 합류했다. 호지 교수는 국립보건기구로부터 시범 이야기 서클을 운영할 기금을 확보했다. 캘리포니아 와일라키 부족 출신인 호지 교수는 아메리칸 인디언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모델을 연구해 오고 있었다.
사우스다코다와 네브래스카에 있는 4곳의 보호구역에서 진행된 연구에서 당뇨 환자들과 당뇨 위험성이 있는 성인들은 이야기 서클에서 옛날 이야기, 원주민 의료인들을 통해 당뇨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3월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 서클에 매주 모여 2~3시간씩 3개월간 이야기를 나눈 결과 당뇨에 대한 무심한 태도나 운명론적 태도가 눈에 띄게 줄었으며 당뇨에 대한 지식이 늘어 전체적으로 건강이 증진된 것으로 나타났다.
위니바고 보호구역의 비상 의료요원인 조지아 고메스는 디코라의 연구에서 영감을 얻어 간호사 미셸 스미스와 함께 ‘팀업’이란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에게 전통 음식에 기초한 당뇨 환자용 식단과 교육, 운동 시범, 심리상담을 제공하는데 모두 이야기 서클의 형식 속에서 전개된다. 프로그램 내내 혈당 테스트를 계속해 단 3일간의 식사 개선과 운동 증가도 큰 차이를 가져옴을 눈으로 확인하게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 외에도 위니바고 보호구역은 어린이를 포함한 모든 주민들에게 무료 체력단련 교실을 열어주고, 체육관의 운동기구와 야외 육상 트랙, 산책로와 수영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부족에 전통음식을 다시 도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의 하나로 아이들에게 전통적인 채소밭 가꾸기, 음식 준비 및 보존 방법을 가르치는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전통이야말로 건강한 미래를 위한 열쇠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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