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이 되면 오클라호마 주민들이 종교생활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풋볼시즌이 종료된다. 이때부터 일부 오클라호마시티 사람들은 다음 풋볼시즌이 올 때까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농구장을 찾는다.
얼마 전 NBA 마이너리그인 오클라호마 스톰팀의 경기가 열리는 1만4,000여석 규모의 실내구장에는 2,500명의 관중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NBA팀이 없는 오클라호마시티의 농구팬들은 스톰팀 선수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그런데, 이날 관중들로부터 가장 큰 환호와 사인 요청을 받는 사람은 어느 선수가 아니라 스톰의 신임감독으로 부임한 커림 압둘 자바였다. 압둘 자바는 생애 처음으로 농구감독으로서 팬들의 환호를 만끽했다.
55세의 압둘 자바는 NBA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새로운 농구인생을 찾아 인구 50만명 남짓한 오클라호마시티로 옮겨왔다.
압둘 자바는 오랫동안 NBA나 대학농구팀 감독직을 희망해 왔으나, 농구 지도자로서는 성격상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이에, 압둘 자바는 자신에 대한 의문부호를 지우기 위해 마이너리그 감독으로서 와신상담의 길을 택한 것이다.
압둘 자바는 마이너리그 팀이나마 자신에게 성원을 보내는 오클라호마시티 팬들에게 크게 고무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열렬한 팬은 오클라호마의 변호사이자 스톰팀의 구단주로서 이번에 압둘 자바를 고용한 제임스 브라이언트다.
브라이언트는 말한다.
"압둘 자바는 옛날 나의 역사 선생님을 연상케 한다. 그는 지적인 운동선수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지적인 인물이다. 나는 압둘 자바의 어떤 면이 농구계에서 오해를 샀는지 잘 알고 있다"
압둘 자바에 대한 농구계의 냉담한 대접은 대부분 그의 금욕적인 침묵습관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압둘 자바는 현역 시절 코트 안팎에서 타인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 성격이 농구 감독직을 수행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은 이제 압둘 자바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압둘 자바는 스톰팀의 경기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기가 잘 풀리면 환호를 지르다가 꼬일 때는 인상을 찌푸렸고, 스톰의 승리가 결정되자 주먹을 치켜들고 깡충깡충 뛰면서 코트 안으로 달려들었다. 마치, NBA 챔피언전에서 레이커스가 숙적 보스턴 셀틱스를 꺾고 우승했던 순간을 연상케 했다.
현역 시절 압둘 자바는 코트에서 상대팀 선수들과 부딪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레이커스 전성시대를 이끈 또 다른 두 명의 위대한 센터, 윌트 챔벌린과 샤킬 오닐이 거대한 몸집을 이용해 진로를 방해하는 상대선수를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데 비해, 압둘 자바는 세련된 농구기술과 집중력으로 상대선수들을 압도했다.
농구 역사상 압둘 자바만큼 많은 축복을 받은 선수도 드물 것이다.
그는 신장 7피트2인치의 엄청난 장신이면서도 단신 포워드 같은 민첩성과 포인트 가드를 방불케 하는 슈팅 감각을 겸비한 천부적 선수였다. 게다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스카이훅 슛은 상대팀의 방어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런 평가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압둘 자바는 뉴욕의 파워 메모리얼 고등학교 시절 4년간 팀의 95승 6패 기록을 주도했다. 그 중에는 경이적인 71연승이 포함되어 있다. 또, UCLA에서는 4년 동안 88승 2패를 기록하며 팀을 세 차례나 NCAA 정상에 올려놓았다.
프로 전향 후에는 밀워키 벅스에서 한 번, LA 레이커스에서 다섯 번 등 모두 6회의 NBA 정상을 차지했고, 그가 프로생활 20년간 기록한 개인득점 3만8,387점은 아직도 NBA 최고기록으로 남아있다.
압둘 자바는 선수로서는 이처럼 화려한 기록을 남겼으나 대중이나 매스컴에는 비친화적 인물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 때도 특유의 차가운 시선으로 짤막한 답변을 하고 황급히 집으로 가버리곤 했다. 그는 농구만 잘하면 됐지 팬들의 환호는 크게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압둘 자바의 개인적 스타일은 1979년, 매직 존슨이 레이커스에 합류하면서 더욱 부정적으로 채색됐다. 존슨은 자바와는 달리 커다란 함박웃음과 소탈한 태도로 매스컴의 취재 표적이 됐기 때문이다.
압둘 자바는 은퇴 후 한동안 휴식을 취하면서 자신의 농구 커리어 및 흑인 역사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대학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농구에 대한 꺼지지 않은 자신의 열정을 재발견하고 농구 지도자의 길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그는 원래 친정팀 레이커스에 합류하기를 원했으나 거절당하고, 1999~2000시즌부터 LA의 또 다른 NBA팀 클리퍼스의 보조코치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끝내 NBA 무대에서 자신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극복하지 못한 채, 마이너리그에서 자신의 진면목을 증명해 보이겠다며 절차부심하게 된 것이다. 오클라호마 스톰팀의 선수들 역시, 압둘 자바에 대한 NBA의 시각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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