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는 조선시대의 인물로서 대동여지도를 완성한 인물이다. 한반도를 몇 번씩이나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힘들고 지칠 때는 산마루에 올라 아득히 이어져간 산봉우리들을 보면서 유구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고 한다.
길게 이어진다는 것, 끊이지 않는 다는 것, 영원하다는 이것이 그를 위안하고 힘을 솟게 하여 대동여지도를 완성케 했다는 것이다. 점점이 이어진 봉오리들은(연봉) 결국 산맥이 되는 것인데 이 산맥과 국토에서 영원성을 발견한 김정호를 나는 반만년 한 민족의 역사 중에서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는 위대한 Walker(걷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대륙을 종횡무진으로 걷고 또 걸은 간디도 위대한 분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작달막한 체구를 가진 그 분은 어찌 그리도 빨리 걷는지. 그는 자기 자신을 Mr. Walker라고 불렀다. 예수께서도 광야를 불구하고 많이 걸으신 분이고 孔子님도 한없이 걸으신 분이다. 위대한 인물 치고 많이 걷지 않는 이는 드물다. 뒤집어 말한다면 많이 걷지 않는 이는 아무리 뭐라고 뽐내어도 위대한 인물이 아니기가 십중팔구라는 말이다.
많이 걷는다는 것은 대중 속으로 몸을 던진다는 것이다. 山中에 도인은 있어도 山中위인은 없는 법이다. 위인은 市中에 居하는 것이니까. 산중에서 가르치는 길은 小道요 저자거리에서 가르치는 道는 大道다. 산 속에서 워낙이 門이 없었던 까닭으로 空門이라 하고 대문과 창문이 즐비한 市中에서도 그 문에 열림이 없음을 무문이라 하고 大道는 無門하다고 한다.
저자 거리를 문 없이 드나들었던 대 원효같은 이는 大道를 성취하신 것이었을까. 석가모니 부처님도 걷는 것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시는 분이다. 45년을 걷고 또 걸었으니 그 걸은 길이가 얼마나 될까. 그는 밥을 빌기 위해서도 매일 市中을 걸었다.
금강경에는 부처님께서 바리때를 들고 교외의 숲 속에서부터 市中에 들어가 밥을 걸식하시고 돌아오는 장면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위인들이 많이 걷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소원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약사여래 부처님은 일체중생이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12가지 원을 세웠다. 아미타 부처님은 일체중생이 고통 없는 세상을 이룩할 것을 기원하여 법장비구로 있을 때 48원을 세우셨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과거세에 500가지 원을 세웠으니 그 원은 아미타 여래의 10배가 넘고 약사여래의 40배가 넘는 大願이시다.
대저 이 500에 달하는 많은 소원은 모두 널리 베풀어서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것이니 중생이 있고 고통이 있는 곳은 바로 그의 땅 如來地인 것이요, 일터인 것이다. 이것이 그가 45년에 걸쳐 중생있는 곳을 찾아다닌 一大事였던 것이다.
부처님이 사과나무 숲 속에서 열반하시어 관 속에 들어 있은 채로 7일을 머물며 맏상좌(큰 아들) 가섭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 지방에서 교화를 하고 있던 가섭이 부처님의 부음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7일이 걸렸고 당도하지 곧 부처님관을 시계방향으로 일곱바퀴돌고는 관을 잡고 멈추어서자 관밖으로 부처님의 두 발이 쑥 내밀어졌다.
그 위대한 두 발이 말이다. 가섭과 모든 제자는 전부 부처님의 두 발에 절하고 예를 올리는 足禮다. 그 이후로 부처님께 귀의 할 때는 반드시 부처님의 그 두발을 존경해서 귀의하는 것이니 귀의불 兩足尊이라하는 유래가 된 것이다.
불교는 발에 귀의하는 종교다. 우리의 발도 부처님의 발과 같이 위대한 발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점을 알아 가는 종교인 것이다. 두 발로 버티고 선 인간을 믿고, 좋아하고, 친하는 가르침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두 발로 버티지 못하고 주저 앉아야 하는 사람은 가장 슬프고 괴로운 사람이다. 다른 것은 다 외면해도 다리에 힘이 빠져 무너져 내린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어려운 입장에 있어도 두 발로 버티고 서 있을 기력만 남아 있으면 그래도 괜찮다. 땅은 우리가 최후로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땅에 주저앉은 이는 이르켜 세워야 한다.
나는 평소 불상에 대한 명상을 많이 한다. 우리의 딱한 처지를 민망해 하고 슬퍼하는 그의 눈빛을 나는 좋아한다. 한량없이 자비스러운 그의 미소를 또한 좋아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두 발은 존경과 성스러움과 예의를 갖추지 않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부분이다. 앉아 계실 때도 두 발바닥까지 유감없이 들어 내 놓고 있는 가부좌를 하고 계신다. 자비심 때문에 고통이 많았던 분. 그리고 이 고통을 걷고 또 걸어서 잊으신 것은 우리의 수행지침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부처님 오신날이 겹쳐있는 五月을 당하여 그의 두 발에 대한 존경심을 금할 수 없다.
귀의불 양족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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