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현 칼럼]
▶ 박정현 가주정부 전산시스템 경영자
8, 7, 6, 5, 4... 오늘 식당에 걸린 달력에 무언가 적다보니 문득 이상한 숫자들이 날짜표시칸 한 귀퉁이에 암호처럼 쬐그맣게 적힌 게 눈에 띈다. 아이의 글씨인지라 나는 얼씨구나 한 건 잡았구나 하고 신나서 살펴봤더니 너무 쉽게 풀어버렸다. 우리 꼬마가 여름 방학 전까지 남은 날짜를 빨리 셈하려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은 이렇게 끊임없이 우리 늙은이들을 웃겨주고 즐겁게 해준다. 우리 이 꼬마는 아주 어릴 적에도 한 달도 훨씬 전에 크리스마스 카운트다운을 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 수법이 제법 세련되어졌다. 아이들 여름 방학 학수고대하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구나 하고 피식 웃을 수 밖에...
사실 여름방학이란 아이들에겐 걱정거리 하나 없고 재미보따리만 한 꾸러미인 일년 최고의 멋진 계절이 아닌가. 나는 ‘여름 방학’이란 말만 들어도 별의 별 재미있는 일이 줄줄이 생각난다. 아침마다 비치가방에 밀짚모자 쓰고 형제들이나 친구네랑 배 타고 해수욕장 가던 일, 입술이 시퍼래도 저녁 맨 마지막 배편까지 버티고 놀던 일, 들판을 쏘다니다 밀이삭을 찾아내어 모닥불에 구어설랑 손바닥 안에 비벼가며 구수한 밀 알갱이를 씹어보던 일, 잠자리채 들고 하루종일 쫓아다니다가 허탕쳐도 재미만 있던 일, 동전 한 푼 손에 들고 아이스케키 장수 찾아 헤매던 일, 도화지랑 끼고 크레용 가방 들고 다니며 풍경화 그린답시고 화가 행세하던 일... 어릴 때 여름 방학 시절의 달콤한 추억은 너무나 많다.
이렇게 멋있는 아이들의 여름 방학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옛날 시절 같으면 재미있는 여름방학이란 아이들 각자 알아서 할 일이라고도 하겠지만, 요즘 시대는 그렇지 않다. 엄마 아빠의 여름방학 숙제가 너무나 크다. 엄마 아빠 모두 집밖에서 일하는 가정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뿐만인가! 텔리비젼, 비데오, 컴퓨터 게임, 인터넷 등등 아이들을 엉뚱하게 매여놓고 이 멋있는 한여름 계절을 허비하게 할 수 있는 유혹이 너무나 많고, 또한 그것을 이용 내지 방관하는 부모가 비일비재하지 않는가.
우리 식구는 여름 방학 시작하기 한 두어 달 전부터 이번 여름엔 무얼 할까 하고 이마를 맞대고 궁리한다. 최종 성적이 우수하면... 하고 부자간에 흥정도 하고, 아이가 좋은 친구들하고는 교제를 계속하며 같이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도록 잔소리 아닌 참견도 한다. 바다로 산으로 캠핑도 가야하고, 여름개봉 영화도 봐야하고, 재미있는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 무엇보다 신나게 밖에서 뛰어 놀며 적당히 까무잡잡해질 만큼 야외의 공기를 흠뻑 마시게 해야한다.
서구의 중산층 가정들은 한 여름동안 보통 2-3주간의 휴가를 즐긴다. 웬만한 아이들은 미국 대륙을 적어도 반쯤은 횡단 해보게된다. 유럽에서도 대부분 3주 내지 2개월에 걸치는 여름휴가를 고수하기 위해 아예 영업문을 닫거나 휴가간다. 이 얼마나 풍족한 삶의 태도인가!
한국인들도 그렇게 살 수 없을까? 365일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자영업 한국인들, 휴가가 많이 있어도 눈치 보느라 못쓰는 한인 직장인들, 좋은 집과 차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만족해하는 한국인들, 이런 이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몰라서 못 논다고도 들었다. 자라며 배운 게 그런 식이라 그렇다 하더라도, 새 세대를 살아가는 자녀들을 위해서 부모들은 생활방식을 조금씩 바꿔야 할 것이다. 부모의 직업귀천이나 재신 유무를 막론하고 찌들지 않고 구김살 없이 밝고 행복한 자녀들을 양육하는 데는 다소간의 대가가 필요하다 - 아이들과 보내는 자유로운 시간, 같이 읽는 독서의 기쁨, 행복한 여름날의 놀이 등등...
나는 여름이 올때면 어린 시절 여름날을 무대로 한 갖가지 옛날 책을 다시 찾아 읽곤 한다. 톰 소여의 모험, 샬롯트의 거미줄, 내 이름은 아람등등... 모두 삶과 여름을 어린이의 눈과 체험으로 사는 이야기들인데, 줄거리보다도 대화나 풍경 묘사만으로도 옛날식 여름정서 (the good ol' summertime!)에 푹 잠길 수 있다. 이 책들은 어린이들만이 볼 것이 아니다. 어른들이, 부모들이, 아이와 같이 보면서 같이 어린이가 되어 그 달콤한 여름날의 동심을 함께 느껴보며 동무가 되주는것... 여름맞이 준비엔 그만이다.
여름에는 아이들이 동심의 나래를 펴고 한껏 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바람과 햇볕과 물이 찰랑찰랑 담긴 아름다운 추억을 한아름 만들어 줘야한다. 아빠는 펜을 접어두고 낚싯대를 꺼내고 엄마는 피크닉 점심을 싸고...
행복한 어린 시절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없다. 활기찬 여름날보다 어린이를 더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없다. 아이랑 바닷가에 강가에 가서 발 담그고 물장구 쳐보자. 아이와 풀밭에서 맨발로 뛰어보자. 종일토록 네잎 크로버도 찾아보자. 아이 손 잡고 푸른 하늘 뭉게구름 잡으러 가보자... 아이들에게 여름을 찾아주자. 여름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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