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내리듯 펑펑 잠을 자기로 했다.
자다 지치면 깨어나 TV를 보며, 배가 고프면 먹고, 아니, 먹고 싶으면 먹고 또 먹고, 이불 속에서 뒹굴 뒹굴 하루 종일 지내리라 계획을 했다.
그렇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도 세밀한 계획을 요하는 것이다.
새벽에 몇 번씩 눈을 뜨다가 아침 7시경에서야 잠에서 깨었다. 꿈이 연속된 밤이었다. 글쎄 몸이 불편했었나?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을 피하기 위해, 가볍게 공중으로 뛰어올라 있다가 사뿐히 내려오는 꿈이었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은 자면서 꾸는 꿈이던 낮에 공상하며 꾸는 꿈이던 기분이 좋은 꿈이다. 공이 땅을 치고 휙 공중으로 올라가는 기분. 잠 중에도 명쾌하였다.
눈을 몇 번 뜨기도 했고 화장실도 다녀왔지만 그때마다 잠을 다시 취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하늘을 계속 오르고 내리는 꿈의 연속이었다.
부시시 눈을 뜨고 일어나 7시경이라는 시간을 보고는 또 잤다. 다시 깨어난 것은 오전 10시가 되어서였다. 이불 속에서 TV를 틀고 채널을 이리저리 바꿔보았지만 케이블이 없는 나의 TV는 별다른 프로그램이 없었다.
채널 9에서는 ‘THE GREAT WARS’를 방영하고 있었는데 정확히 몇 시였는지 모르겠다. 12시 이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때부터 시청하기 시작하여 오후 4,5시까지 전쟁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전쟁 프로그램은 TV에서 자주 방영한다. 가끔 보기도 했고 고등학교 다닐 땐 세계역사시간에 비디오를 클라스에서 보고 지루한 시험문제를 풀어야 했던 기억도 있다.
특히 한국전쟁 편을 볼 때는 그 전쟁당시의 한국으로 착각하고 나를 쳐다보며 불쌍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던 그 당시 육십이었던 모리스 선생님도, 반 학생들도 나는 정말 질색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는데 특히 러시아의 여성군인 삼백 여명이 독일군을 대항해서 싸우는 부분이 있었다. 러시아 여군 삼백 여명은 지원자 천 여명으로 시작했다한다. 이발사들이 그녀들의 머리를 빡빡 밀었을 때 조금이라도 훗훗하고 웃은 사람은 다 불합격시켰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제외하니 삼백 여명만 남았다는 것이었다.
그녀들은 전쟁터에서 거의 다 죽고 말았지만 그녀들의 용감성은 새삼 아무것도 안하고 먹고 자고 뒹굴뒹굴 하루를 보내겠다는 나에게 폭탄이 되어 터졌던 것이다. 세계에 이나마 평화가 있다는 것이 그 누구의 희생 때문이었을까 생각하니 정말 부끄러웠던 것이다. 또 세계의 평화에 대해 심각히 생각해 보는 내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이런 기분으로 공처럼 침대에서 일어섰다. 간밤의 꿈속에서와 같이 하늘로 휙 올랐다 내려와 보았다. 보니 부엌이고 방이고 집안이 말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뒤뜰잔디에 물을 주었고, 빨래를 했고, 이층 아래층의 먼지를 털었고, 베큠을 했고, 마루바닥은 무릎이 아프도록 걸레질했으며, 화장실을 청소했고, 수요일 아침에 들리는 청소차를 대비해 쓰레기통도 길가에 내 놓았고, 세수도 하고, 영양크림을 듬뿍 얼굴과 목에 바르기도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다. 오후 늦게는 오랜만에 운동도하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기 위해 온 창문을 열고 맑은 공기를 마시기까지 했다.
꿈속에서의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기분좋은 꿈때문일까.
여하튼 기분 좋은 꿈 때문인지 몸에 활력이 솟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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