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날은 여름은 해가 지고 나면 바빠진다. 마당을 쓸고 물을 뿌리고 십여명이 앉을 수 있는 평상을 마당 가운데로 끌어다 놓고 멍석을 펴 놓으면 대충 저녁 맞을 준비가 된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앞이마에 자꾸만 흘러내리면 연신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우리식구 열 명과 일꾼 세 명의 밥상을 차리느라 분주하던 농부의 아내인 나의 어머니는 항상 종종 걸음을 쳤다. 그래서 바쁘게 돌아치는 사람을 마당발이라하지 않던가. 그러나 이런 바쁜 와중에서도 셋이나 되는 우리 누나들은 부엌에는 잘 보이지를 않았다. 저들도 커서 시집가면 늙도록 실컨 할 일이라면서 누나들의 부엌나들이를 어머니가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내인 나는 항상 부엌 주위를 맴돌았고 그러다보니 어머니 일을 많이 도왔는데 빨래통을 냇가에 가져가거나 채소바구니를 우물가에 가져가거나 바깥마당에 솥을 걸고 불을 때는 일등이 고작이었다. 이것은 방학때 집에 온 나를 조금이라도 더 자기 곁에 붙잡아 두고 싶어한 어머니가 그렇게 하기를 졸라대기 때문이다. 옆에 두고 있어도 또 보고싶다고 하였다.
여름날의 저녁은 대개 수제비나 칼국수가 아니면 보리가 대부분인 밥과 소쿠리 채로 앞에 놓여있는 상치쌈같은 것이었지만 모두들 포식을 하도록 양껏 먹어치웠다. 저녁을 먹은 후 냇가에 나가 몸을 씻고 돌아오면 평상에는 햇감자 삶은 거나 수박 참외 복숭아 같은 것이 내다놓이고 어머니와 누나들은 빨래를 정리하거나 풀먹인 여름 옷을 다리미질하는데 보통 밤이 늦고 하였다. 나는 대부분 그 옆에 누워서 어머니와 누나들이 하는 얘기들을 들으면서 총총히 박혀있는 하늘의 별무리인 은하수를 원도 없이 쳐다보면서 풀벌레들의 합창을 들으며 잠들기 일쑤였다.
그 찬란한 별무리에 기가 질린 나의 누이 하나는 만일 저 별무더기가 쏟아져 내리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걱정이 태산같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런 누이의 걱정도 잘 달래 주었다. 조상대대로 별이 무너져 내린 그런 일은 없었는데 지금 뭐하러 그런 일이 벌어지겠느냐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 뒤에 학교에서 만유인력이니 뭐니하는 등등을 배웠지만 선생님의 설명보다는 아직도 어머니의 그 설명이 더욱 확실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 누이는 자기 아이들에게 왜 하늘이 무너져서 별이 쏟아져 내리지 않는지를 어떻게 설명하며 키웠는지가 궁금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항상 모기장이 쳐져 있는데 꼭 텐트를 치고 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지금도 공원같은 곳이나 야외장에서 텐트 친 것을 보면 모기장 생각이 난다. 뒷날 내가 초의선사가 편집한 진묵대사의 일화를 읽었는데 그곳에도 모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랬다.
옛날 전라북도 전주 근방에서 진묵도인이 그 어머니를 아랫마을 사하촌에다 모셔놓고 자기는 작은 암자에서 살았는데 여름이면 모기떼가 너무 극성스러워 어머니가 많이 시달리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여긴 직묵도인이 그 산의 산신령을 불러 모기를 멀리 내 쫓으라하여서 지금까지도 그 산에는 모기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제문을 지어 추모하기를 ‘열 달동안 태중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며 설하에서 삼년동안 길러주신 은혜 잊을 수 없습니다. 만년 위에 다시 만년을 더하여 사셔도 자식의 마음은 부족하온데 백년생애에 백년도 채우지 못했으니 어머니의 수명은 어찌그리도 짧습니까’하고는 만경평야의 북쪽 끝자락에 스스로 묘지를 찾아 장사지냈는데 그 묘소를 깨끗이 쓸고 성묘하며 술을 부어 제사드리면 풍년이 든다고 하여 지금까지 수백년동안 향화가 끊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이건 시달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고금동서의 변함없는 일이다. 세상파도를 다 덮어주고도 모자라 했던 그 어머니의 마음과 자식의 애틋한 효심을 생각하며 여름 뜰에 홀로 앉아 있으면 그저 망연자실 할 뿐이다. 꽃에 물을 뿌리고 공놀이를 하며 시끄럽게 뛰어 놀던 아이들도 다 커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신선한 바람 만이 예와 다름없는 빈 뜰에 앉아 있으면 내 아이들은 지금 여름 뜰에 앉아 지나간 일들을 어떻게 반추하고 있을지가 궁금하다.
여름의 뜰은 가정의 뜰인가 한다. 마음으로서 마음에 전해지는 그 무엇인가를 느끼게 하는 가족이 있는 여름의 뜰은 가정을 일구어가는 도량이다. 여름은 또한 열매의 맺음을 뜻하는 열음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니 삶의 꿈이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름에는 열음에의 꿈이 있고 이 꿈은 눈을 뜨고 자지 않으면서 꾸는 꿈이기 때문에 싱싱하고 풋풋하고 미숙하고 아름다운 꿈이다. 생명이 있고 환희가 넘치는 우리의 삶은 그러나 미숙한 것이기에 가정이라는 그릇에 감당되어 깨끗하게 보존되고 열매가 성숙되기를 기다라는 그러한 것이어야하리라.
나는 여름의 뜰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수많은 별들을 올려다 보면서 풀벌레들의 합창속에서 꿈을 꾼다. 사람은 늙어도 꿈이야 늙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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