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주 푼 천사들의 비상’
▶ 에인절스, 연속적 비극 딛고 힘찬 날개짓
무슨 일에나 ‘어두움’이 있으면 ‘밝음’도 있게 마련이지만 지난해까지 에인절스의 41년 역사를 살펴보면 밝은 면에 비해 어두운 면이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저주받은 팀’으로 불릴 정도였다.
에인절스의 역사를 돌아보면 왜 ‘저주받은 팀’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나왔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1960년 12월 로스엔젤레스 에인절스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이 팀은 이미 LA 다저스가 팬들의 가슴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린 남가주지역에서 홈타운 팬들에게조차 사생아 취급을 받는 설움 속에 컸다. 6살 때인 1966년 오렌지카운티에 자기 집(홈 구장)을 마련하기 전 까지 홈 구장이 없어 LA에서 리글리필드와 다저스테디엄을 오가는 셋방살이의 서러움도 겪었다. 짧은 역사동안 이름도 로스엔젤레스 에인절스에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1965), 애나하임 에인절스(1996)로 2번이나 바꾸는 등 다저스와의 차별화를 위해 몸부림을 쳐야 했다.
하지만 이런 서러운 성장과정보다 더 에인절스를 괴롭힌 것은 만성적인 패배로 인한 열등의식과 꼬리를 물고 찾아오는 연속적인 비극이었다. 1965년 에인절스의 루키피처 딕 완츠는 겨우 25살의 나이에 뇌종양으로 사망했고 3년 뒤 구원투수 미니 로하스는 교통사고로 자신은 반신불수가 됐고 부인과 두 자녀를 잃었다. 1972년에는 내야수 치코 루이스가 교통사고로 죽었고 74년에도 루키 구원투수 브루스 하인베크너와 숏스탑 마이크 마일리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1978년에는 외야수 라이만 보스톡이 다른 사람을 향해 쏜 총에 맞아 피살되기도 했다. 또 1986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에서 월드시리즈 진출에 원스트라익을 남겨놓고 역전 홈런을 허용했던 구원투수 다니 무어가 1989년 부인을 총으로 쏘고 자살한 것은 아직도 에인절스팬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슬픈 기억이다.
악몽같은 역사는 팀 멤버들의 비극적인 죽음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필드에서는 성적이 만년 바닥을 헤맸고 구장은 텅텅 비었다. 구장이 얼마나 비었었나 하면 한번은 배우 찰리 신이 당시 홈런볼을 ‘확실하게’ 잡기 위해 당시 애나하임 스테디엄의 레프트펜스 뒤 외야좌석을 몽땅 사들인 적이 있었을 정도다. 어쩌다 성적이 좋았던 시즌에도 실패의 고통은 여지없이 따라왔다.
1979년과 82년, 86년 디비전 우승후 모두 ALCS에서 탈락했고 특히 82년과 86년은 모두 월드시리즈에 1승을 남겨놓고 3연패를 당하는 쓰라린 경험을 해 ‘저주받은 팀’으로 굳어졌다. 오죽했으면 애나하임 구장이 세워진 위치가 옛 인디언 부족의 무덤자리였다는 괴 소문이 돌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저주는 끝났다. 한때 미키마우스 팀으로 놀림거리의 대상이었던 에인절스는 올해 놀라운 투지와 팀 전체가 하나로 뭉친 팀 플레이로 팀 역사상 첫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며 그동안 굳어졌던 ‘저주받은 팀’의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냈다. 에인절스의 어두운 역사에 마침내 밝은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김동우 기자>danny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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