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다 단풍이 알록달록 곱다. 2번 하이웨이를 타고 독일촌(Leavenworth)까지 가지 않아도 빨갛게 물든 시내 가로수에서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추석과 추분이 지난 게 벌써 20일이 넘었고 보름 후면 겨울을 알리는 입동이다. 양력으로나 음력 절기로나 바야흐로 가을이 무르익었다. 가을은‘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대로 산과 들로 놀러 다니기에 좋은 계절이지만‘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말처럼 책읽기에 더 없이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필자가 젊었을 때 한국에서는 해마다 가을에 독서주간이 설정돼 책읽기 캠
페인이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국민이 오죽 책을 읽지 않았으면 정부가 그
런 캠페인까지 벌였나 싶다. 미국에서는 계절과 별로 관계없이 사람들의 독서패턴이 연중 계속되기 때문인지 등화가친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린다.
미국인들은 틈만 나면 책을 읽는다. 공원이나 비행기 안에서 독서 삼매경
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여행 갈 때도 책을 반드시 챙긴다.
미국에선 책방들이 별로 계절을 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학시즌보다도 오히려 여름에 책이 더 잘 팔린단다. 긴 방학이나 휴가를 독서로 소일하는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책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가 제일 큰 대목이지만 이 때 팔리는 책은 거의가 선물용이다.
책 읽는 미국인이 많은데 비해 책방은 이상할 정도로 드물다. 서울에서는 교보문고나 종로서적 같은 초대형 서점 외에도 소규모 동네 책방들이 쉽게 눈에 띄지만 시애틀에서는‘반스 & 노블’등 커피샵을 겸한 대형체인 서점
이 몇 군데 있을 뿐 구멍가게 식 책방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 한국에서는
학생 방이 온통 책 투성이다. 필자도 중고교 시절 어깨가 휠 정도로 무거
운 책가방을 들고 다녔다. 미국학생들 방엔 책을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다.
불요불급한 책들은 학교 락커에 두고 다닌다. 그런데도 독서량은 오히려 미
국학생들이 한국학생들을 앞선다. 책을 일일이 사는 대신 도서관에서 빌어
보는 것이 생활화 돼있다.
시애틀 지역에도 한국 책방이 너댓 군데 있다. 시집도, 소설도, 수필집도,
종교서적도, 교양물도 있다. 신문을 장기구독하면 월간잡지도 무료로 보내
준다. 물론 수입품이므로 서울보다는 책값이 비싸다. 그래도 책 살 돈이 없
어 독서 못한다는 말은 핑계로 들린다. 대부분의 한인가구들이 한 달에 책
한 권 값 정도는 따로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시간이 없어서 독서 못한다
는 말도 좀 이상하다. 밤새워 연속극 비디오를 본다는 사람은 많기 때문이
다.
요즘은 미국인들도 책을 덜 읽는지 퍼스트 레이디가 몸소 책읽기 캠페인을
벌였다는 소식이다. 로라 부시여사는 지난 12일 의사당 앞 잔디밭에서 제2
회 연례 책 페스티벌을 열고‘책벌레들의 순박한 즐거움’을 강조했다. 처
녀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했던 부시여사는 남편 부시 대통령이 텍
사스 주지사 시절 해마다 책 페스티벌을 열고 주민들의 독서를 권장했는데
퍼스트 레이디가 된 후 작년 처음으로 페스티벌 무대를 백악관으로 옮겼다.
책 페스티벌은 백악관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다. 서북미 지역에서도 해마
다 비슷한 축제가 열린다. 비영리 기관인 북페스트(Bookfest)가 여는 이
책 축제는 이번 토~일요일(19~20일) 레이크 워싱턴의 샌트 포인트 매그너
슨 팍에 있는 한 허름한 격납고 안에서 펼쳐진다. 불경기 탓으로 기업체나
문화관계 재단에서 들어오는 기부금도 크게 줄어 올 축제의 주제는 좋았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듯‘향수(Nostalgia)’로 정했다고 한다.
부모의 독서습관은 자녀교육에도 매우 좋은 영향을 미친다. 컴컴한 방에서
비디오를 보는 부모보다는 불을 밝히고 책을 읽는 부모가 훨씬 존경스럽
다. 한인들 사이에 이번 가을이 TV 가친이 아닌 등화가친의 계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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