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은 음식 먹을 때 노래를 하지 않는다. 기념행사 식순이나 강연회나 시사회 중에 음식을 먹으면 큰 실례가 된다. 그래서 보통 행사 직전에 식사를 하거나 행사 후에 식사를 한다.
지난 가을 열린 한 여성모임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 진행자가 다큐멘터리를 틀자 그것을 제작한 초청 연사는 화를 벌컥 내며 상영 중지를 요청했다. 사람들은 ‘그래 그 진지한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음식물을 먹으면서 보게 하다니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하고 작가 입장을 수긍했다.
그런데 지난주 우연히 들어간 맨하탄 브로드웨이에 있는 식당에서 빚어진 풍경은 평소의 이런 선입관을 돌아보게 했고 뉴욕이란 도시에 대한 매력을 새삼 느끼게 만들었다. 오후 늦은 시간에 열리는 콘서트를 보기 전에 저녁을 먹으러 공연장이 있는 건물의 1층 식당에 들어갔다. 허름한 전철 안 같은 실내장식에 싸구려 테이블, 평범한 바, 값싼 가격의 메뉴가 서민층이 부담 없이 끼니를 때울만한 곳이었다.
특이한 점은 한쪽 벽면에 브로드웨이 뮤지컬 비디오가 큰소리로 틀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올리버 트위스트’, ‘메리 포핀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 에 나오는 노래가 뮤지컬 장면과 함께 온 식당 안을 울리고 있었다.자리에 앉아 웨이터에게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콜라잔을 나르던 웨이추레스가 빈 의자에 걸터앉더니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청아한 목소리로 얼마나 열심히 잘 부르는 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그녀의 노래가 끝나자 이번에는 자리를 안내해 주던 웨이터가 마이크를 이어받아 계산대 옆에 서서 미성으로 노래를 한다.
‘앗, 이러다가 우리에게 스파게티와 수프를 가져다 준 저 웨이터도 노래를?’빨강과 검정이 조화된 유니폼에 주문 받는 메모장과 볼펜을 넣은 앞치마를 두른 종업원들이 모두 돌아가면서 노래를 하는데 마치 무대에 선 뮤지컬 배우처럼 손님들이 앉아있는 의자 뒤 난간에 올라가 걸어가면서, 혹은 빈 의자에 걸터앉아서 노래를 하는데 프로 뺨치게 잘했다. 손님들은 포크에 찍은 양상추를 입으로 가져가며 완두콩 수프를 떠먹으며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면서 연신 싱글벙글한다.
‘역시 브로드웨이 거리는 다르네. 식당에서 고되게 일하면서도 언젠가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길 꿈꾸며 발탁되기를 기다리나 보다. 그런데 어설픈 프로보다 훨씬 낫네. 진지함, 열정, 정성이 모두 들어있다’고 처음엔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 대부분이 실제 프로 배우로서 파트 타임으로 식당에서 일하면서, 노래하면서, 언젠가 대성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커피를 날라주고 계산서를 가져다주는 종업원들이 유니폼 차림으로 노래하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듣는 것과 기침도 참아가며 시선을 무대로 고정시킨 채 화려한 무대에 선 배우들의 매끈한 노래를 듣는 것이 무엇이 다른 가를 짚어보게 했다. 출연자가 다르고 노래의 격이 다르고 관객의 수준이 다르다면 얼마나 다르랴.
또 성공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대망의 무대에 서면서부터 더 이상의 꿈을 잃어버린 것과 비록 번잡한 식당안이지만 풋풋한 꿈이 살아있는 지금과 어느 때가 더 행복하다고 재는 잣대는 있는가?
방금 전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나른 손이지만 마이크를 잡자 너무나 행복해 하며 노래한 종업원들의 노래는 콘서트 시간이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신선했다.
가장 훌륭한 음악은, 예술은 이렇게 사람들의 오감(五感)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문학이나 음악이나 영화, 철학이 지나치게 지성적이라 심오한 내용이 그저 난해하게만 느껴진다면 이런 것들을 자주 접한다하여 교양이 높아졌고 격조 있는 삶을 산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격식과 예의를 따지지 않고 그저 우리의 눈과 귀를 편하게, 한마디로 오체만족을 가져다준다면, 마냥 좋다고 느낀다면 그것이 최고 노래이고 뮤지컬이고 예술이고 최고 인생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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