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3일로 결혼 60주년 회혼식을 갖는 김용득(오른쪽), 정학선씨 부부가 손을 꼭 잡고 부부애를 자랑했다.
해방 1년 전 얼굴도 모른채 집안의 중매로 결혼식 올려
현대사의 고난을 모두 겪으면서도 성공한 후손들 일궈
“6남매가 모두 건강히 장성해서 회혼식까지 해준다니 고마울 뿐이지요”
오는 13일(토) 정오 서니베일의 가주부페에서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식(回婚式)을 갖는 김용득(80), 정학선(77)씨 부부는 “돌이켜보면 지난 세월이 꿈만 같다”고 흐뭇해했다.
현재 산호세에 거주하는 김옹 부부가 결혼한 것은 1944년 3월 16일. 해방 전해에 중매로 결혼식 당일까지 서로 얼굴도 모른 채 신방을 차렸다.
‘죽느니 사느니’ 열애 끝에 결혼해도 OECD국가중 이혼률이 세계 2위라는 오늘날 한국의 실정에 비추어 결혼식 전에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부부가 60년을 해로했다는 것은 보통 인연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까 두 부부의 얼굴이 너무도 닮았다. 이렇게 말하자 정학선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가리키며 “이리 못난 사람 뭐가 닮았나?”라고 살짝 핀잔을 주면서도 싫지 않는 표정이었다.
두 사람이 결혼한 곳은 경북 영일군 신광면 토성동 340번지. 320호 가구의 한 동네에 살았지만 일면식도 없었다. 김옹 큰어머니의 중매로 당시 스무살의 총각과 열일곱의 처녀가 맺어지게 된 것이다.
당시 왜정 말기로 남자들은 군대나 징용으로, 처녀들도 정신대로 끌려가기 십상이어서 양가는 이들의 결혼을 서둘렀다고.
사모관대를 쓴 신랑은 식장에서 살짝 신부의 얼굴을 보았지만 신부는 첫날 밤 신방에 들 때까지 신랑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첫날밤에 대해 정학선씨는 “아무것도 모르고 무섭고 겁이 나기만 했다”고 회상했지만 김용득씨는 “잘 몰랐지만 기분이 좋았다”고.
아들만 5형제 둔 집안의 장남인 신랑과 딸만 6녀를 둔 집안의 장녀가 만났으니 자손은 골고루 나왔다. 이들 부부는 3남 3녀를 두었고, 천안에 사는 장녀 김순희씨를 제외하곤 모두 가주에 거주하고 있다. 장남 김상길씨는 홀리스터에, 차남 김원길씨는 마티네즈에, 삼남 김국길씨는 몬트레이에, 그리고 차녀 김순필씨와 삼녀 김순향씨는 각각 몬트레이와 샌디에고에 터를 잡았다.
자녀의 초청으로 1980년 이민오기 전까지 포항과 대구에서 살았던 김옹 부부는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 회혼식을 맞는 소감을 묻자 김옹은 “이리 세월이 흘렀나 감개무량하다”고. 정할머니는 “벌써 이리 늙었는가 서글픈 마음”이라면서도 “남남이 만나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살아 자녀들이 애먹이지 않고 장성한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세월의 무상함과 함께 정할머니는 “우짜 생각하면 여자의 일생이 이렇구나 하는 생각에 이집의 머슴살이로 얽매여 할말도 많이 못하고세월이 이리
변하는구나 생각한다”고 곱게 푸념했다.
혹독한 일제시대와 6.25 동란, 또 현대화의 변화와 미국이민에 이르기까지 숨가쁘게 달려오기만 했던 김옹 부부는 요즘 금실좋은 신혼부부처럼 여생을 즐기고 있다. 매일 새벽 5시부터 부부가 2시간씩 산책을 즐기고 함께 차를 몰아 나파와 몬트레이 등지로 돌아다니는 등 건강에 별 이상이 없다.
60년 해로의 비결을 묻자 김옹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정 할머니는 “모든 것을 참고 사는 것이 제일 좋다”고 젊은이들에게 조언했다.
“다시 태어나도 두분이 또 결혼할 것이냐?”고 묻자 김옹은 “하겠다”고 서슴없이 말했지만 정 할머니는 “새로 태어나면 다른 사람에게 가보고 싶다”고 말해 자녀들을 웃겼다. 그래도 정 할머니는 “83년에 핸드백 선물해준 것이 제일 감동적이었다”면서 “물건을 하나 사도 최고급으로만 선물한다”고 은근한 할아버지 자랑을 잊지 않았다.
<한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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