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구 목사(호놀룰루한인장로교회)
돌이켜 볼 때, 한국의 근대화 정책은 민주화를 억제하고 사회적 특권 체계와 권력 체계를 형성하고야 말았다. 그 결과 권력층 밖의 다수 한국 민중들의 정치적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경제성장 제일주의는 국가 이념의 숙고는 물론 국가 개념에 관하여 어떤 논의도 허용치 않았다. 따라서 대중과 정치 권력 간의 간격은 물론, 독재로 인한 비민주
적 정치 구조는 모든 국가 체제와 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더구나 이런 갈등을 더욱 심화시킨 것은 이러한 독재 권력이 장기화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유신체제 이후에는 모든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물리적인 억압이 가중되면서 종교와 정치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또 개발 정책으로 인한 심각한 빈부의 격차와 농촌의 황폐화 현상, 도시빈민의 증가, 노동조건의 악화에 따른 헤어나기 어려운 사회문제에도 봉착하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 이와 같은 군사독재와 성장 제일주의의 개발 철학에 따른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맞물려 나타난 경제, 사회적인 큰 변화들로 인해 한국 사회는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진보적인 종교 이념을 가진 교회와 교인들이 거세게 반발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이런 진보 교회와 교인들의 정치 참여는 이념적인 근거에서뿐만 아니라, 분명한 사회 현
실의 인식의 근거에서도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서 왜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느냐, 교회는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라며 예수의 이름으로 나무라던 자들이 있었다. 특별히 국가의 성장제일의 경제 이념을 받들어 현세적 축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신도로 빨아 들여 급속하게 성장했고, 군사정권의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인 지배문화를 모방해서 당회장 목사 한 사람의 절대 교회 권력의 성
채를 쌓아 올렸던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이제는 오늘의 현실이 분단 후 최악의 위기라며 거리로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솔직히, ‘정교분리’를 하던 자들이 아니라, 정작 뒤로는 조찬기도회 등을 통해 ‘정교야합’을 일삼던 자들이다.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과거에는 자신들이 지지하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엄격한 정교 분리의 원칙을 주장해 왔지만, 이제는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있으므로 교회들이 정치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특별히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목사직의 세습이나 저급한 도덕성의 문제와 같은 부끄러운 일들이 노출되면서, 개교회의 문제들을 한국 전체 교회의 문제로 호도하기 위해 빈번한 반정부 집회의 전선이나 구축하고 있다.
오늘 한국 기독교의 현장을 목도하면서 우리는 강자의 힘에 사로잡힌 권력의 지배욕과 부정하게 쌓아올린 기득권의 유지 욕구가 과연 우리 기독교의 근본 정신인가를 새삼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저들이 하는 일이 그저 헛되고 헛된 일이 아닌가 한다. 하
나님은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값을 치르고 배부르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지 말라(사55:2)고 하셨다. 오늘 이 혼탁한 세상에 사는 우리가 과연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분별하는 혜안과 총이는 필요하지 않는지, 이렇게 마냥 넋두리만 해 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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