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야 경찰 아빠·신문배달 엄마 집 비운 새
일 오전 서울 강동구 일반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로 질식해 숨진 3남매. 3남매는 서울경찰청 특수기동대 금모 경장의 자녀들로 금경장이 철야근무를 하고 아내도 신문배달을 나간 상태에서 불이 나 질식해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철야근무를 하던 경찰관 아빠와 박봉의 남편을 돕겠다며 신문 배달을 나간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어린 세 남매가 화재로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9일 오전 5시11분께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서울경찰청 특수기동대 71중대장 금모(35) 경장의 집에서 갑자기 연기가 피어 오르며 거실에서부터 불길이 치솟았다. 3층 단독주택 맨 위층에 있는 18평 규모의 방 3개 짜리 금씨 집은 순식간에 유독 가스에 휩싸였다.
한 방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던 금씨의 딸(11)과 8살, 6살 배기 두 아들은 방에서 나오지 못한 채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딸과 작은 아들은 침대에서, 큰 아들은 방바닥에서 발견됐지만 세 남매 모두 몸부림친 흔적 없이 자는 듯이 숨져 있었다. 같은 건물 2층에 사는 K(18)군은 오전 5시께 잠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위층에서 ‘펑’ 소리가 연거푸 났으며 곧 이어 매캐한 냄새와 함께 자욱한 연기가 계단까지 가득 찼다고 말했다.
사고 순간 아버지 금 경장은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주변에서 철야 경비를 서는 중이었고 어머니 정모(37)씨는 새벽마다 해오던 신문배달을 하던 중이었다. 비보를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이들 부부는 세 남매의 시신을 확인한 뒤 통곡했으며 정씨는 실신했다.
금씨 부부가 어린 세 남매만 집안에 남겨둘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밤낮없이 일해야 하는 경찰관의 근무현실과 다섯 식구를 부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경찰관 봉급 때문이었다. 금 경장은 사고 당시 노동계 동투(冬鬪)와 함께 시작돼 한달째 이어져온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 앞 철야근무로 추위와 싸우고 있었다.
동료 경찰관들은 금 경장은 1992년 경찰에 들어와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항상 근검절약하는 모범적인 경찰관이었다며 일요일에는 맞벌이하는 부인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함께 신문을 돌렸고,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항상 가슴아파 했다고 전했다.
3년전 금 경장과 재혼한 부인 정씨도 생활비를 보태겠다는 생각에 신문배달을 시작했고, 이날도 새벽시간에 일하러 나갔다 오전 7~8시께 돌아와 곤히 잠자는 아이들을 깨워 아침 밥을 먹이고 등교길을 보살필 생각이었다.
이날 강동성심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이들 부부는 나란히 찍은 세 남매의 사진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정씨는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죄인이야. 돈을 벌러 나가지 않았으면 너희들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울면서 몸부림쳤다. 금 경장은 허공을 쳐다보며 길게 한숨만 내쉬었다.
한편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아이를 보내고 비탄에 빠져있을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보낸다며 경찰은 앞으로 이런 불행한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찰관을) 무리하게 과잉배치하지 말라고 밝혔다.
전성철 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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