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에 있어서 검찰이 피의자를 구속 수사한다는 말은 판사의 구속영장을 발부 받아서 피의자를 일단 구속한다는 말이다. 즉, 검찰이 피의자를 구속 수사하고 싶어도 판사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판사는 우선 검찰이 제출하는 구속영장 신청서에서 설명하는 피의자의 범법 사실에 믿음이 가야하며, 피의자의 범법사실에 믿음이 간 다음에는 피의자를 구속하지 않을 경우 도주, 또는 증거 인멸의 이유가 있는지를 살펴야한다. 도주 또는 증거인멸의 이유가 있을 경우에만 구속영장을 발부해야한다. 미국에서는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관이 직접 구속영장을 청구함을 부언한다.
구속 수사라는 어구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구속 수사라는 말은 피의자를 구속한 상태에서 피의자를 조사한다는 말인데, 피의자는 헌법이 보장하는 묵비권을 행사함으로써 검찰의 심문에 응답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피의자를 심문하는 것은 불가능한일이다. 미국에서 피의자를 구속한다는 말은 도주를 예방하기 위해서일 뿐 심문할 목적이 아님을 부언한다. 형사사건의 대부분은 불구속으로 진행되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모든 사람은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을 때까지 무죄다”라는 원칙 하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제도다. 오늘날의 한국의 사법제도는 원칙적으로는 미국의 제도와 비슷하지만 운영 면에 있어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피의자를 재판에서 유죄판결이 내려질 때까지는 무죄로 대우해야한다는 이론은 고수하면서도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구속영장은 판사의 독립된 판단에 의해서 발부되어야 하지만 검찰이 청구하는 영장은 대부분 발급되는 것이 현실이다. 즉, 구속여부가 판사의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검찰이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총장이 어떤 사건을 수사함에 있어서 피의자를 구속 수사 하라고 예하 검찰에 지시하는 경우를 가끔 보게된다. 검찰이 무슨 권한으로 피의자를 구속한단 말인가.
요즈음 한국에서는 강정구 교수의 불구속 수사를 명령한 천정배 법무장관이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러나 불구속수사를 명령한 천 장관의 처사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음을 천명한다. 모든 형사피의자를 도주의 우려가 없고 증거인멸의 이유가 없는 한 불구속 수사를 해야하는 원칙을 명령했을 뿐이다. 당연한 원칙을 명령했으니 오히려 쑥스럽게 여겨져야 할 일이다.
강 교수가 발표한 논문 중에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대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직업이 확실하고 가족과 함께 살고있는 강 교수가 도주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증거인멸의 이유는 더더욱 해당되지 않는다. 이 사건의 증거는 강 교수가 이미 발표한 논문으로서 온 세상이 알고 있는 내용인데 이를 인멸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당연한 불구속사건을 불구속수사 하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파문이 일어난 이유는 이제까지 지켜지지 않았던 관행을 깨어버린 파격적 변화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법이나 룰(Rule)을 고친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존재하고 있는 법을 준수하라고 명령했을 뿐이다. 한국의 사법관행은 조선시대의 “네 죄는 네가 알렸다” 식의 수사에 의존해오고 있다. 피의자를 조사한다는 관행이 바로 그것이다. 사법당국은 피의자를 심문할 수 없다. 피의자의 도움 없이 수집되는 증거와 증언으로 재판에서 피의자의 유죄를 증명해야할 것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60년.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한지 5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국민은 민주주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있다. 특히 형사소송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불구속으로 입건될 권리가 있음을 알아야한다. 사직당국의 심문에 응답할 의무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천 장관의 불구속명령은 국민의 자유를 수호하는 데 일조를 한 조치로서 높이 평가될 것이다.
intaklee@intaklee.com
이인탁/변호사.애난데일,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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