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며 배우며
▶ 하순득 /워싱턴여류수필가협회
은퇴생활 해보니 한가한 삶이 뜻이 없어 무슨 일이든 다시 해 보자고 나섰다. 외견상 교회사철이 한가한 작업인 줄 알고 시작해보니 학교가 부설돼 있어 우리 둘에게는 과도한 중노동이었다.
낮에는 교회일, 밤에는 학교일 등 밤낮으로. 매일 메일 바삐 돌아가는 중노동인데도 내게 내리신 하나님 은혜가 너무 커 걸레를 들고 휘파람이라도 불며 즐겁게 일 할 수 있었으며 무보수로 자원봉사 할 지라도 얼마든지 삶이 즐거운 상태였다.
어느 날 늦은 오후 기름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으러 본당에 들어가니 저 구석에 어떤 젊은 아가씨가 깊이 엎드려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교회 문을 잠그러 남편이 사찰 돌 때 인데 5시가 되면 외인은 누구나 밖으로 나가야한다. 피곤한 길손이 들어와 쉬기도 하고 삶의 문제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문을 좀더 늦게까지 열어놓으면 좋겠다고 한번 문의했더니 나이 많은 장로님 대답이 교회 비품이 없어지고 트럭을 몰고 와 피아노까지 싣고 가버리는 일 당한 후로는 오후 5시에는 교회 문을 닫는다고 한다. 노을이 지고 방금 어둡기 시작하는데 눈치를 보니 이 얌전케 생긴 아가씨가 나의 남편에게 쫓겨 나가게 생겼다. 조심스럽게 가까이 가서 살며시 얼굴을 들여다보니 동양 사람이다.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는 얼굴이 온통 눈물 범벅이다. “나는 일본사람입니다.” 일본사람이라는 말에 능히 일본말로 대화할 수 있으나 일본말은 안 한다. 어릴 때 일본사람들로부터 받은 멸시와 천대와 학대의 깊은 골의 상처가 너무 깊어 아물 줄 모른다.(잊어야겠는데)
“뭐 도움이 필요합니까. 예수를 믿습니까? 같이 기도 드릴까요?”
“아니요, 나는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교회에 와서 기도 드리지요?”
그 아가씨도 나도 영어가 변변치 않다.
“저에게 미국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늦게야 결혼해서 애기를 낳았어요. 너무나 좋아 온 세상이 자기를 축복해주는 거 같아 행복했는데 이번에 그 아기가 죽었어요. 아기가 죽으니 내 친구도 죽어요. 일어나지 않고 밥도 안 먹어요. 친구 제이앤을 살려야겠는데, 제이앤이 믿는 예수님께 부탁하러 왔어요. 내 친구 살려달라구요. 제이앤이 죽으면 나도 죽을 거 같아요.”
그 소리를 듣자 와락 껴안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흐느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목도 쉬었다. “사랑의 하나님, 지금 요시꼬가 친구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 눈물 보시고 친구 제이앤을 일으켜주세요. 예수 믿음 가지고 찾아 왔으니 제이앤을 살려주세요.”
내가 기도 드리는 동안 내내 “오, 가미 사마 가미 사마 오, 예수 사마 예수 사마 예수 사마 예수 사마” 내 옷자락을 잡고 매달리는데 눈물이 흘러 콧물인지 침인지 흐르는 대로 흘린다. 숙녀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휴지로 얼굴과 콧물을 닦아주니 코끝이 시큰하더니 내 목이 매인다.
두 팔로 그를 일으키며 “교회 문 닫을 시간이니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신 답니다. 특히 친구를 위해 흘리는 눈물은 더욱 귀하지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친구를 살리기 위해 죽으셨어요. 그것이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내쫓다시피 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일어선다.
그가 출구를 향해 가는 뒷모습 을 바라보고 섰는데 다시 돌아와 내 목을 안으며 “사요나라, 아리가도, 아리가도.” 요시꼬(일본)가 예수님을 찾아 왔기 때문에 그들을 향해 차돌같이 굳어 딴딴하던 내 마음이 물같이 녹아버렸다. 일본사람 특유의 연속 고개를 까딱까딱 고인 눈물 미소로 뒤돌아보며 사라져갔다
하순득 /워싱턴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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