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문제는 사회 일원으로서 자신의 위치가 불확실할 때 드러나는 현상으로 주로 정체성의 부재나 혼란의 형태를 띤다. 자신이 속한 조건이나 환경으로 스스로를 치장하는 데에 그치지 말고, 그것들을 자원으로 삼아 개발해 온 자신의 잠재능력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키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민 생활과 정체성의 문제는 마치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처럼 동반자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민 생활자들이 이 정체성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들이 찾는 주요 접근법에 우리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주로 이민 생활자들은 정체성 문제의 해법을 자신들이 속한 인종, 언어, 문화, 가치관의 동질성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이러한 접근법이 잘못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종, 언어, 문화, 가치관의 차이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안주하여 정체성 문제를 풀어나갈 경우 자칫 잘못하여 배타적인 성향으로 빠질까 염려된다. 우리 한인 이민 사회가 배타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점을 미국내의 다른 이민 사회들이 종종 지적하는 것을 들은 바 있다. 이는 바로 우리들의 정체성이 배타적인 성향을 지녔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이는 전체 사회가 지향하는 조화와 화합의 물결에 분명 역행하는 흐름이기도 하다. 또한 이민 1.5세나 2세들은 인종적인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언어, 문화, 가치관 등의 측면에서 그들 부모 세대들이 서로 느끼는 것과 같은 동질성을 함께 갖추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전에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의 어떤 토종 주부가 길거리에서 미국식 억양으로 한국말을 하는 한국 아이를 보았는데 별로 정이 안 갔을 뿐만 아니라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질성도 느껴지지 않더란다. 이는 그냥 흘려버릴 얘기가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정체성의 확립은 이미 내게 주어진 조건이나 환경에 자신을 짜 맞추어 동질성을 느끼는 수준을 넘어서야 할 것 같다. 오히려 그러한 조건이나 환경의 배경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전체 사회에 유용한 것이 될 수 있도록 적용시키고자 하는 의식에서부터 출발하여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특히 미국은 다양한 인종, 문화, 가치관이 한데 어울려 돌아가는 사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성 가운데 조화와 화합의 추구가 이 사회의 원동력이며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는 의식체계는 환영받을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내가 지니고 있는 인종, 문화, 가치관의 배경이 전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데 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석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한 구석이 바로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설 수 있는 위치이며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는 자리이다. 그 구석은 다름 아닌 정체성 확립의 토양인 것이다. 이러한 토양 위에 나의 배경을 밑거름 삼아 스스로의 잠재력을 찾아 길러내고 실천함으로써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열매를 만들어 보자. 이는 분명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된다.
우선 중요한 것은 자기가 속한 사회를 채색하는 데 나의 색깔이 기여할 수 있다는 강한 의식이며, 이러한 의식은 바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핵심이다. 그러한 의식 속에 우리가 살아갈 때, 우리의 모습이 작거나 당장 쓰임 받는 존재가 아니라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다. 정체성은 내 색깔을 완전히 잃어버리거나 또는 배타적으로 톡톡 튀게 만드는 것이 아닌, 주변의 색깔과 나의 것을 조화시키는 방법으로 키워가야 한다고 본다. 이게 바로 건강한 정체성 확립이 아닐까.
ahntk@hanmail.net
안성중 워싱턴 DC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