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학(한국일보 브라질 상파울루 지사장)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지난 12일부터 시작된 범죄조직의 공권력 공격이 일주일만에 심야충돌 없이 지나가는 등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169명이 사망하는 등 상파울루의 치안부재 상태가 국내외에 알려짐에 따라 많은 한인들이 상파울루 교포들을 걱정하고 있다.나 역시 상파울루에 살고 있지만 미국과 한국을 자주 다니는 만큼 지인들이 “괜찮으냐”는 안부 전화를 많이 걸어오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브라질 한인 사회의 단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브라질에 사는 한인들은 미국보다는 큰소리치며 살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미국은 절대 다수 백인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나라다. 한인을 포함한 소수민족은 아무래도 주류사회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브라질은 다르다. 우선 주인이 없다. 이곳을 발견한 포르투갈인이 주인이어야 하지만 오늘의 그들은 소수민족이다. 함께 사는 100여 민족이 모두 자기만 잘 하면 주인이 될 수 있다. 모두가 고만고만한 민족사회여서 절대 다수의 횡포는 없다.
브라질에서 동양인에 대한 평가는 극히 우호적이다. 1856년에 이민온 일본인들이 150년간 보여준 성실함이 뒤늦게 와 살고 있는 한국인이나 중국인에게 도움이 된다. 이곳서 일본인은 ‘보증수표’다.
대도시 주변에서 과일, 채소 농사를 주로 하고, 시내에서도 수리업을 많이 하는 일본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환영받는다. 뭘 맡겨도 틀림없다는 인정을 받는다. 이들은 100만명이 산다. 그들이 갖고 있는 땅덩이가 일본 본토보다 크다.이제 4세대까지 이어가는 그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계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장관 자리 하나는 꼭 맡는다. 현 룰라 정부에는 통신장관, 그 이전에는 에너지 장관이 일본계다. 연방의원도 항상 10여명씩 배출하고, 지방의원, 서장, 주·시의원, 시장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상파울루 시내에는 리베르다지를 중심으로 커다란 그들의 타운이 있다. 거기에는 게다 신고 다니는 할머니, 행사 때 기모노 입은 분칠한 게이샤도 볼 수 있다. 일본 음식점, 수퍼마켓에서 호텔, 이발소에 이르기까지 브라질 속에 일본을 세워놓았다.초창기 일본인 브라질 이민은 정부 주도하에 ‘국제협력사업단’이란 사설 단체가 전담했다. 이주 후 여권을 보관하고 4년을 농장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계약 기간이 넘어서도 소심한
그들은 주로 농사를 짓고 살았다. 일본인들은 농업 이민이라는 약속을 충실하게 지킨 것은 물론 브라질 농업을 몇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반면 초창기 한국인 이민은 퇴역 장성과 동대문·남대문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실향민들이 주를 이루었다. 세대당 정착금이 300달러씩일 때 수만 달러 또는 일제 ‘세이코’ 시계를 3드럼 가지고 온 부자도 있었다.
한국인들의 이민도 시작은 농장이었지만 농사에 종사할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한인들은 이민올 때 갖고 온 물건들을 들고 나가 주변 농장, 도시 등지에 팔았다. 결국 이민 시작이 농사가 아닌 장사로 한 셈이다.
몇년 후, 모두들 남미 최대 도시인 ‘상파울루’로 나와 살았다. 80년대 들어서는 많은 교포들이 의류 제조 및 도소매업에 뛰어들었다. 옷을 만들기 위한 원단, 부속 등은 이민 선배격인 유태인 회사에서 공급 받았다. 80년대 중반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유태인 주변에서만 맴돌던 교포들이 하나 둘씩 그들의 시장 속으로 파고들었다. 물론 엄청난 권리금과 월세를 감수하면서 모였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금, 유태인 시장은 한인들이 장악했고 유태인 타운은 ‘코리아타운’으로 변해 있다. 이제 이곳에는 둥근 털모자에 귀밑머리를 기르고 검정 옷을 치렁거리며 다니는 유태인도 있고 그들 교회도 있지만 한국식품점, 식당, 교회, 한평 남짓한 ‘덜렁이네 튀김집’까지 파고 들었다. 점점 우리는 모이고 그들은 떠난다.
의류업 종사 한인들은 이제 모델과 색상, 원단 구입을 위해 세계 시장을 누빈다. 한 해에 두 번 열리는 프랑스 파리 전시나 이태리 밀라노,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드나드는 교포들은 숱하다. 유행에 민감한 브라질 사람을 한인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패션의 본고장 사람들도 와서 보고는 혀를 내두른다.
한인들이 성실하고 근면한 것은 브라질 대통령이 말했듯이 으뜸이다. 대통령을 하고 훗날 상파울루 시장을 했던 쟈니오 꽈드로는 한국인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세계 군인 사격대회 참가차 왔던 한국 대표팀 후송차가 전복됐다. 선수 절반이 부상을 입었는데
도 우승을 하자 인솔자에게 소원을 물었다. 대답은 한국인 이민을 받아달라는 것이었고 이것이 한국 이민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조직범죄단의 난동을 보고 교포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지금은 경찰이 어설프게라도 진압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폭동이라도 일어나면 눈에 띄게 잘 살고 있는 교포들을 그냥 스쳐 지날 리 없다는 게 중론이다.
얼마 전, 한 교포가 밤중에 칼을 맞았다. 나중에 알게됐지만 범인은 쫓아낸 종업원이었다고 한다. 교포들은 자만에 빠져있지 말고 이제부터는 자기 주위를 둘러볼 때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준 이 사회, 그리고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브라질에서 제일 좋은 것은 ‘브라질 사람’들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 고마운 땅, 고마운 사회를 둘러보고 베풀어야지만 혹 있을지도 모를 또다른 폭동에 휩쓸리는 일이 없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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