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逆鱗)이라는 말이 있다. 거스를 역(逆), 비늘 린(鱗) - 직역하면 거꾸로 박힌 비늘이 된다.
전설에 의하면 용은 순한 동물이었다. 잘 길들이면 사람이 올라타고 다닐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단 하나 조심할 게 있었다. 목 아래에 거꾸로 박힌 비늘이 하나 있는 데 그것만 건드리면 용이 불처럼 화를 내면서 그 사람을 죽여버린다는 것이었다.
‘한비자(韓非子)’의 ‘세난편(說難篇)’에 나오는 이야기로 임금을 용에 비유, 임금의 노여움을 일컫는 말로 역린을 썼다. 용처럼 임금에게도 거꾸로 박힌 비늘이 있으니 신하들은 이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임금을 설득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역린을 요즘 말로 바꾸면 무엇이 될까. 건드리면 몹시 아픈 부위, 그래서 아무리 순한 사람도 무섭게 화를 내게 만드는 그 무엇 - 바로 콤플렉스이다. 콤플렉스를 건드리면 돌부처도 돌아 앉는다고 했다.
예를 들어 모든 조건 완벽하지만 키가 작아 고민인 남성은 키에 대한 언급에 과민반응을 보일 수가 있고, 젊은 여성의 기분을 망쳐놓고 싶으면 “살찐 것 같은데 …” 한마디면 대개 충분하다. 취업난 심각한 한국에서 얼마전 한 취업 정보 사이트가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들의 가장 아픈 한마디는 “너 아직도 놀고 있니?”이다.
지난 9일 독일 월드컵 결승전에서 발생한 ‘박치기 사건’파장이 좀처럼 수그러들지를 않고 있다. 평소 축구 영웅으로 전 세계 축구팬의 존경을 받아온 지네딘 지단이 무슨 이유로 그렇게 격분하며 상식 이하의 행동을 했는지 추측이 난무하다.
이제까지 확인된 바에 의하면 발단은 경기 시작 110분이 지난 시점. 선수들 모두 지치고 신경이 날카로워 있을 때 이탈리아 수비수 마르코 마테라치가 지단의 운동복 상의를 잠시 붙들고 늘어졌다. 마테라치의 말이다.
“지단이 돌아서더니 잔뜩 비웃는 태도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아주 거만하게 이러는 거다. ‘내 셔츠 갖고 싶으면 나중에 줄께’그래서 나도 욕을 좀 해줬다”
문제는 그 ‘욕’, 몹시 모욕적인 그 말의 내용이 무엇이냐 인데 양측 모두 거기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브라질,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 “여동생을 매춘부라고 욕했다”“지단을 더러운 테러리스트라고 했다”“그의 어머니를 모욕했다”등 추측 보도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확인된 것은 없다.
지단이 경기 중 이렇게 불같이 화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98년 월드컵 중 사우디아라비아 선수가 ‘북 아프리카 출신 야만인’이라고 욕설을 퍼붓자 그를 발로 밟아 퇴장 당한 전력이 있다. 알제리계 이민 2세로 몹시 가난한 성장기를 보낸 그에게 ‘인종’이나 ‘태생’은 아픔일 수가 있을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그만의 고유한 역린과 상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조사에 착수한다고 했으니 조만간 사정은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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