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베라크루즈 지방 도로공사 인부들이 석판 발견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의사소통 수단 추정
기원전 900년, 62개의 상징표기 일부는 중복 사용
마야 문명보다 앞서 꽃피웠던 ‘올멕 문명’의 유물
패턴·순서 체계적이고 일부는 시적인 내용까지
멕시코 베라크루즈 지방에서 기이한 석판이 발굴됐다. 이 석판에는 3,000년 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표기들이 각인돼 있었다. 학자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지구 서반구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표기로 여기고 있다.
이 석판을 연구해 온 멕시코 과학자들과 미국에서 현지에 간 학자들에 따르면 이 석판에 새겨진 표기들은 그 순서와 패턴으로 보아 진짜 하나의 표기 체계인 것으로 분석됐다. 콜롬비아가 미 대륙을 발견하기 전에 존재했던 올멕(Olmec) 문명의 상징표기들과 놀랄 만큼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표기 체계가 발견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1924년 고고학자들에 의해 명명된 인더스 밸리(Indus Valley) 표기체계 이후 처음이다. 석판의 표시는 모두 62개다. 일부는 반복해 사용됐다. 적어도 기원전 900년쯤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그보다 더 오래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학자들은 그 동안 올멕 문명과 분명하게 연계된 어떠한 글자도 발굴해내지 못했었다. 걸프만을 따라 베라크루즈와 토바스코 지역에서 번창했던 올멕 문명은 사실 마야문명보다 한 걸음 빨리 꽃피웠었다. 올멕 문명은 그저 돌로 만든 거대한 얼굴과 중심도시들에 남아 있는 기념비적인 건물이 고작이라고 여겨졌었다.
이번 발굴은 멕시코 국립고고학 및 역사연구소의 마리아 로드리게스와 베라크루즈대학의 폰치아노 오티즈 교수의 공동작품이다. 부부 사이인 이들의 발굴 내용은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이 논문은 “26파운드 무게의 석판에 새겨진 표기들은 올멕 문명이 그야말로 문맹이 아니라 진정한 문명을 이루었으며, 나름대로 잘 짜인 표기 체계를 지닌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고 주장했다.
이 논문은 이어 “표기의 패턴으로 짐작하건대 구문이 정립된 것처럼 보이며 내용 가운데 시적인 구절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물론 그 내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선 보다 많은 석판 표기를 발굴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올멕 문명의 표기는 수 세기 동안 만 지속됐으면 다른 문명에는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했다. 이번 연구에 동참한 고대 표시 권위자인 브라운대학의 스티븐 휴스턴 박사는 “석판의 표기가 후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내리기 어렵지만 올멕 문명 연구에 이정표를 제시한 발굴”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학자들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마찬가지다. 플로리다주립대학의 고고학자 매리 폴 박사는 ‘사이언스’지에 나란히 게재된 논문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발굴”이라고 했다. 기원전 1200년 경 출현했다가 기원전 400년 경 완전히 사라져버린 올멕 문명을 보다 깊이 있게 연구할 필요성을 일깨운 발굴이기도 하다고 언급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석판의 ‘나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석판이 채석장에서 발굴됐는데 당시 다른 유적들과 뒤범벅인 상태였다며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발굴팀은 다른 유적들은 올멕 문명의 한 단계가 끝난 기원전 900년 경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올멕 문명의 것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도 이 석판이 정치 엘리트들과 관계된 장소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종교의식이 행해진 곳에서 나온 것인지에 대해선 이렇다 할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했다. 또한 앨라배마 대학의 올멕 문명 연구 전문가 리처드 딜 박사는 “이 석판은 분명 올멕 문명 때의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석판은 1999년 처음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도로공사 인부들이 자갈밭을 파다가 다른 유적들과 함께 발견했다. 고고학자들은 “바로 이 장소가 올멕 문명의 중심지”라고 했다. 샌로렌조로부터 약 1마일 떨어진 남부 베라크루지의 작은 섬마을이다. 기원전 1200년경에서 기원전 900년경까지 번창했던 가장 중심적인 도시였던 이곳에서는 이미 적지 않은 유물이 발굴됐었다.
아무튼 공사장 인부들이 ‘기이한’ 물건들을 발견하자 로드리게즈 박사와 오티즈 박사가 현장으로 달려가 이 유물들을 조사하면서 올멕 문명의 의사소통 수단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 된 것이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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