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휴먼 드라마 ‘허브’서 엄마역…
여자에서 엄마로 넘어가는 단계
인터뷰 많이 했잖아요. 알아서 잘 써주세요.
기자는 이 말을 벌써 세번째 듣는다. 뇌종양에 걸린 아이 엄마의 슬픔을 연기한 ‘안녕,형아’ 당시 인터뷰에서도 배종옥은 대뜸 그랬고 그 다음 영화 ‘러브 토크’에서 사랑의 깊은 상처를 가진 여인을 그려낸 직후에 만났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또 그럴줄 몰랐다. 자 ~잘 아시니까 궁금한거 한개만 물어보세요~. 이런식이다.
처음엔 당황스러웠고 두번째는 신기했고 세번째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는 반가웠다. 배종옥 식 대화법의 시작은 바로 이런 절차를 지나왔다. 하지만 이제 겁먹지 않는다. 상대를 대뜸 기선제압할 듯한 그의 태도는 이내 호탕하게 웃고 거침없이 속시원히 말하며 상대를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묘한 ‘포스’를 느끼게 한다.
그의 신작 ‘허브’(허인무 감독, KM컬쳐 제작)는 다시 엄마의 모습이다. 항상 당당하고 도도한 모습의 이미지는 품고 있되, 이제 아이의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연기의 다른 모습을 배종옥 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 주인공의 모습에서 엄마역으로의 자연스런 과도기 지나
배종옥이 보여주는 여성상은 여느 여배우의 모습과는 달랐다. 여 주인공으로 중심에 있을때도 한 남자에 목매는 어찌보면 비련의 여주인공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고 새침떼기 말괄량이 같은 코믹한 모습도 아니다. 그가 잘 해왔고 빛이 나는 연기들은 주로 도시 삶을 영위하는 전문직 여성의 당당함과 적극성이 보여지는 캐릭터였다.
마흔이 넘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여전히 탄력적인 생동감을 가지고 있는 배종옥에게서 엄마의 모습이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는 이미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엄마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표현대로 ‘별로 부담스럽지 않게, 스스로 안도할 수 있을 만큼의 가능한 변화들을 느끼며’다가오고 있었다. ‘허브’에서 스무살 딸 아이를 둔 꽃집을 운영하는 엄마 김현숙은 다른 영화에서 보았던 엄마와 느낌이 다르다.
그것도 배종옥식 엄마 스타일일 수도 있다. 이제껏 영화에서 보여진 엄마들이 너무 자식에 지고지순적인 모습만 비춰져 정신지체아 딸아이를 강하게 키우는 김현숙의 모습에 어색할 수 도 있겠다.
사람들이 ‘말아톤’의 김미숙 씨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비슷한 엄마 캐릭터였으면 제가 했겠어요? 엄마의 자식에 대한 마음이야 당연히 같죠. 하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이런 엄마도 현실에 ‘당연히’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배종옥의 열세살 된 딸도 이영화를 보고나서는 엄마에게 후한점수를 주었다고.
배종옥은 또 배우로서 지금의 캐릭터 진행 과정을 만족스럽게 생각해요. 보통 젊은 여자 주인공을 연기하다 어느 순간 급격히 엄마의 캐릭터로 넘어가는 것도 배우 본인에게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인데 제 경우에는 ‘안녕 형아’ ‘러브 토크’그리고 이번 작품 하면서 엄마의 연기에 ‘고통없이’ 그 단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 좋아요라며 만족스러움을 나타냈다.
그런점에서 배종옥은 자신이 ‘운’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강혜정은 준비한 것 이상을 표현해 내는 친구
드라마 ‘굿바이 솔로’를 막 끝내고 영화에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아직 한참 어린 정경호와 강혜정과 친해지기도 전에 영화는 막 시작되고 있었다. 가장 고참인 배종옥이 나서서 서로를 알아가는 술자리 밥자리를 만들었다. 팀 호흡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강혜정이 깍듯이 다가왔다. 배종옥은 ‘나에게 너무 잘해주지말고 부담갖지 말라’며 분위기를 누그러 뜨렸다.
어차피 우리 배우들이 만난 건 다 영화 잘 만들자고 프로들끼리 만난 거잖아요. 잘해야죠. 서로가 서로에게... 강혜정이 영화 시작전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혹시나 장애우들을 영화에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배종옥은 그런 강혜정에게 네가 진심을 갖고 연기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며 위로했다. 배종옥 역시 ‘안녕 형아’를 찍으면서 소아암 등 중병에 걸린 어린이들에 대한 찜찜한 마음을 느껴봤기 때문에 강혜정을 위로할 수 있었다.
혜정이를 보면서 열정을 보았어요. 제가 저 나이쯤에 저런 열정이 있었지 하면서 혜정이를 보면서 옛날 생각도 나고 다시 자극도 받고...보통 배우들은 촬영 시작전에 많은 준비를 하고 와요. 하지만 현장에서 준비한 것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야 말로 진짜 배우죠. 그런 면에서 혜정이는 대단한 친구에요. 정말 자신을 다 쏟아 부는 모습에 놀랐어요.
그런점에서 연기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욕심을 가진 배종옥과 강혜정의 연기는 ‘허브’의 일면 진부함을 돌파할 수 있는 최고 강점이 되고 있다. 특히 두 모녀가 생사의 기로에서 언덕을 자전거를 타고 넘어가는 클라이 막스 지점은 관객이 함께 호흡하게 만드는 가장 숨막히는 포인트가 되고 있다.
배종옥은 여전히 덜 채워진 연기의 목마름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다. 언제고 오달수 식 코미디에 도전하고 픈 욕심도 있다. 조만간 그런 모습을 기대해도 될 것 같다. 제가 배우하면서 듣고 싶은 말은 여전히 ‘연기 잘하는 배우’가 첫째죠. 배우의 욕심은 언제나 한가지임을 환기 시켜준다.
연기를 사랑하는 열정이 아직도 계속 되는 걸 보면 전 행복한 사람이에요. 여러분도 여러분의 일에서 그런 행복을 가지시길 바래요. 배종옥의 새해 덕담이다.
[기사제휴] 노컷뉴스 방송연예팀 남궁성우 기자 socio9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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