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서 열연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에 ‘야동순재’가 뜰 줄이야. ‘대발이 아버지’ 체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연출 김병욱)의 한방병원장 이순재(72). 몰래 ‘야동’을 보다가 가족에게 들키고 아내에게 관심을 보이는 할아버지를 추적하려 요가원까지 따라간다.
말도 안되는 추리로 손자의 친구가 도자기를 깼다고 의심하고 아내 몰래 어린 시절 짝사랑하던 여자를 만나 먹여주는 보쌈을 입에 물다 둘째며느리한테 걸린다.
아프게 침을 맞고 돌아간 초등학생에게서 ‘영감탱 너나 잘하3 OTL 성질 캐안습’이라는 복수성 문자 메시지를 받고 둘째아들(최민용)에게 ‘해독’ 강의를 받는 모습은 압권.
대발이 아버지(MBC ‘사랑이 뭐길래’)에 유의태 선생(MBC ‘허준’)처럼 등이 꼿꼿한 아버지와 스승 연기로 각인된 이순재가 이번엔 사정없이 망가졌다. 일각에서는 ‘이순재의 재발견’이라는 말이 나오고 손자뻘인 10대들도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서 이순재를 찾는다.
김병욱 감독도 나를 캐스팅하면서 모험을 했다는데 대본 처음 보고 기발하다 했어요. 예전이라면 점잖은 체면에 주책없는 것 아니냐는 질타도 받았을 겁니다. 대본 보고 난감할 때도 있느냐고? ‘야동’ 이상으로 난감하겠어?(웃음).
주책없는 할아버지 같지만 이순재는 극중에서 아들 내외와 손자까지 3대로 이뤄진 가족을 묶는 가장 튼튼한 끈이다. 시트콤의 특성상 누구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는 없지만 이순재의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무게감은 극의 중심에서 웃음과 감동을 조율한다.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큰아들(정준하)을 걸핏하면 발로 뻥뻥 차고 무안해지면 소리부터 지르다 핀잔을 듣는 할아버지지만 그런 일상적인 모습이 이순재의 캐릭터를 단단하게 만든다.
애정이 없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관심 없죠. 다 큰 자식 발로 자꾸 차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친밀함의 표현입니다. 그래야 정을 느끼고, 갑자기 안 그러면 노인네 어디 아픈 거 아닌가 싶은 거죠. 사랑을 바탕에 깔고 서로 충돌하면서도 가족이 곤경에 처하면 챙겨주고 하나되는 그 과정에서 웃음이 만들어집니다.
’목욕탕집 남자들’(KBS2)의 인기를 지나 할아버지를 정점으로 하는 대가족 형태가 이제 현실적이지도, 편하지도 않은 시청자들에게 이순재의 캐릭터가 공감을 얻는 것은 충돌하는 권위를 고스란히 내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헛기침하며 허리춤을 짚어도 집안의 실세는 사실 능력 있는 며느리(박해미). 더구나 극중에서 이순재는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아들 때문에 속이 썩고 ‘면’도 서지 않는다.
’…하이킥’에서는 손자와 중년, 노년의 문화가 공존하고 충돌해요. 며느리에게 열등감도 느끼지만 무시할 수 없죠. 또 아들이 취직을 못하잖아. 며느리나 손자처럼 앞서가는 세대에게 격차를 느끼기도 해요. 논리적으로, 감정적으로 충돌하는 재미가 있는 거죠.
권위와 인격을 동시에 갖춘 아버지 역으로 이순재를 기억하지만 이번엔 예상치 못했던 표정들이 쏟아져나온다. 말하는 톤도 약간 높고 걷는 속도도 조금 빨라졌다. 올해로 연기 생활 52년째. 젊은 연기자들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부분까지 두루 챙겨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대발이 아버지’ 이후에 나는 그 캐릭터를 재연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그 캐릭터로 밀고 나갔어도 캐스팅은 들어왔을 거야. 대사톤, 화법, 뉘앙스 같은 걸 어떻게 (역할마다) 다르게 하느냐를 늘 고민했죠. 조그만 변화를 창조해낼 수 있다면 그게 연기자의 쾌감이고 성취감 아닌가. 배우는 정형을 만들다 잘못하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는 걸 경계해야 합니다. 아니, 무슨 마트 상품도 아니고(웃음). ‘…하이킥’에서는 시트콤에 필요한 절묘한 표정을 만들어내는 데 관심을 많이 두고 있어요.
덕분에 ‘…하이킥’은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순재가 생각하는 ‘…하이킥’의 웃음은 어떤 것일까.
웃기려고 과장하다 보면 현실성이 떨어지죠. 그 선을 넘으면 안돼요. 요즘 초등학교 다니는 우리 외손녀가 자기들끼리 보내는 휴대폰 문자메시지 보여주면서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어요(웃음). 세대간 몰이해를 이해로 유도하는 소재 개발을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웃는 가운데 메시지도, 콧날 시큰한 감동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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