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제작 현실 책임 분담… 여전히 더 받으려는 배우들도 많아
영화 제작이 극도로 위축되면서 한국 영화계가 찬바람을 맞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100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됐으나 손익분기점을 넘는 영화가 몇 편되지 않아 투자 난항을 겪고 있고, 이로 인해 제작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 와중에 주연급의 스타 배우들이 영화계의 위기에 공감해 스스로 개런티를 낮추는 훈훈한 광경을 보이고 있다.
장진 감독의 ‘아들’(제작 필름있수다)에 출연 중인 차승원은 평소 자기가 받는 개런티보다 훨씬 적은 개런티를 받고 출연을 선뜻 결정했다. 영화 개봉 후 흥행이 잘되면 보너스를 받는, 즉 러닝개런티 방식으로 계약한 것.
차승원은 장진 감독과 ‘박수칠 때 떠나라’를 같이 했다. 시나리오가 좋고, 사람이 좋은데 안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영화의 순제작비가 20억 원 정도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내 개런티를 그대로 다 받겠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저처럼 이제 영화계에서 꽤 일한 사람에겐 나름대로 인맥이 있죠. 영화계가 어려운데 배우만 개런티를 그대로 받는다는 건 같이 영화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입니다. 하나님께 늘 감사하지만 솔직히 전 먹고 살만 하잖아요. 작품이 좋으면 돈에 상관없이 함께 작업하는 거죠. 장 감독에게 잘되면 ‘과자값이나 달라’고 했습니다. 하하. 이제 ‘아들’ 보충촬영 1회 정도만 남았는데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차승원의 말이다.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감독 정윤수, 제작 씨네2000)에 출연하는 엄정화, 박용우, 이동건, 한채영 등 네 명의 배우도 최근 계약서를 다시 썼다. 30% 정도 삭감된 출연료를 받기로 한 것.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는 최근 영화계 현실이 어려워지면서 배우들이 공동으로 책임지려는 자세가 나오고 있어 무척 반갑다며 엄정화 등 주연배우들이 제작사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흔쾌히 출연료를 다른 때보다 적게 받았다. 물론 흥행에 성공하면 배우들에게 인센티브를 줄 것이라며 배우들의 이런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제작비 100억 원이 드는 대작인 김지운 감독의 차기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제작 바른손 영화사업본부)에 출연하는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 등 톱배우 세 명도 다른 영화보다 적은 출연료를 받기로 했다.
이병헌 측은 아직 계약서를 쓰지는 않았지만 스타급의 세 명이 주연을 맡은 만큼 혼자 주연을 맡을 때보다는 개런티를 덜 받는 것으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밝히며 만약 세 명이 예전대로 개런티를 받는다면 제작비에서 차지하는 개런티 비중이 너무 높지 않느냐. 배우들 스스로 이는 작품을 위해서 좋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강호는 이미 ‘괴물’ 출연시 개런티 5억 원을 모두 제작비로 돌렸다. 영화의 소액투자자의 개념으로 참여했던 그는 ‘괴물’의 흥행 성공으로 이를 충분히 만회했다. ‘괴물’을 통해 연기력을 새삼 인정받음과 동시에 봉준호 감독과의 의리도 지키고, 영화인으로서 책임감을 보이기도 했다. 흥행 성공에 따른 보너스는 이런 그에게 선물이 된 것.
정윤철 감독의 ‘좋지 아니한가’에 참여한 김혜수와 박해일도 마찬가지다. 기존 자신들의 개런티에 턱없이 못 미치는 몇 천만 원대의 개런티만 받고 선뜻 조연으로 출연에 응했다. 두 배우 모두 독특한 시나리오가 눈에 들어왔으며, 정 감독과 함께 작업하고 싶었기 때문에 출연료나 배역은 따지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오랫동안 영화배우로 활동해온 스타들이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특히 투자 자본의 대거 유입으로 호황기를 맞았던 2~3년 전만 해도 배우들이 제작 지분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잦았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달라진 태도다. 배우 역시 영화제작의 중심축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모습.
이춘연 대표는 물론 여전히 개런티를 더 받으려는 배우들도 많다. 그러나 영화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배우들이 이처럼 영화 제작에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고 있어 다른 배우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의 흐름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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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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