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밤 11시 15분. 새해를 45분 남기고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진동했다. 왁자지껄한 망년회 장을 벗어나 전화를 받은 나는 상대방의 다급한 목소리에 놀랐다. 대학원서 마감 45분을 앞두고 한 학생이 겨우 에세이 작성이 끝냈다며 그 부모님이 교정을 부탁한 것이다.
그 학생은 학년초부터 진학상담을 통해 에세이의 중요성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대학을 복수지원 하려면 공동원서 외에 각 대학이 요구하는 보충 에세이가 필요하므로 늦어도 추수감사절 전까지 준비하라”고 조언했건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마지막 시간까지 온 것이다.
연방 세금보고 마감일인 4월 15일 오후 우체국 앞에 장사진이 이뤄지는가 하면 선물로 받고도 쓰지 않은 상품권 금액이 전국적으로 매년 25억 달러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이렇듯 늦장을 부리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첫째, 완벽주의자들이다. 에세이를 쓰기 전에 지저분한 책상부터 정리하고, 에세이 작성 시간표를 짜는 등 정리정돈과 계획에 시간을 소모하는 바람에 정작 에세이 작성은 소홀히 한다.
이들은 모든 것이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상태를 추구하기 때문에 실수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못할 바에야 차라리 안 하겠다’는 논리이다. 이들은 지금은 잘못 쓸 것 같다. 완전하고 번득번득한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겠다 며 미루기 일쑤다.
둘째, ‘실시간 순간주의자’들이다. 이들은 TV시청, 비디오게임, 쇼핑 등 주변의 재미부터 먼저 즐기고 에세이 작성은 뒤로 미룬다. 이런 것들이 유익하지 않은 줄 알면서도 오늘까지만 쉬고 내일부터 쓰자고 다짐한다. 그러나 이들은 내일도 똑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된다.
셋째, 변명주의자들이다. 자기의 게으름을 집안 내력, 혹은 학교 일이 워낙 바빠서, 밴드부와 사회봉사 시험이 겹쳐서 등등 핑계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들은 친구생일 파티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미루는 버릇은 유전이 아니고 주위 환경에서 온다는 것이 조셉 페라리 교수(드폴 대학)의 연구 결과이다. 그는 특히, 권위주의적 부모 밑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부모의 무조건적인 요구에 대한 반항심에서 자기가 할 일을 뒤로 미룬다고 지적했다 .
넷째, 미화주의자들이다. 이들은 게으름을 여유로 착각한다. 여유는 자기 할 일을 하면서 다음 일을 위해 휴식을 취하는 능동적 선택이지만 게으름은 할 일이 있음에도 회피를 선택하는 것이다. 참된 여유에는 능률과 풍요로움이 따르지만 게으름 뒤에는 후회만 기다릴 뿐이다 .
어떤 유형이든 일을 미루는 것은 시체말로 ‘귀차니즘’에 귀결된다. 마감시간 45분 전에 전화한 게으름뱅이의 에세이는 번갯불에 콩 구어 먹듯 교정을 받았지만, 학생의 부모와 필자는 때아닌 소동을 겪어야했다. 미리미리 준비 를 마다한 그 귀차니스트의 마음은 지금 진작 해둘 껄 하는 후회이즘으로 가득 차있다.
다니엘 홍(C2 교육센터 카운슬러)
(425)672-8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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