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청소년 탈선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좌담회에 참석한 제22회 백상 장학생 수상자들. 왼쪽부터 심선진, 전혜리, 김 준, 오진아, 이수지, 양은규, 임수영, 강주연. <사진=김재현 기자>
한인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청소년 탈선이다. 일부에서는 이중문화권 속에서 혼란을 겪는 이민 청소년들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일종의 성장통으로 여기려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우리 집 아이들만큼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는 한인부모들의 철썩 같은(?) 믿음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에게 술·담배 등 고민을 털어놓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조차 학생들의 탈선행위 단속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청소년들의 탈선은 갈수록 사각지대로 빠져들고 있다.
이에 뉴욕한국일보는 제22회 백상 장학생 수상자를 초청, 31일 좌담회를 열고 한인 청소년 탈선의 현주소를 진단해봤다. <진행 및 정리: 이정은 기자>
좌담회 참석자(가나다 순)
강주연 (듀크 대학)
김 준 (브롱스 과학고)
심선진 (세인트 존스 대학)
양은규 (스타이브센트 고교)
오진아 (로체스터 대학)
이수지 (존스 합킨스 대학)
임수영 (웰슬리 칼리지)
전혜리 (JFK 고교)
■술·담배를 하는 한인 청소년들이 실제로 많은가?
강주연(이하 주연): 점심시간이면 학교 인근에서 담배 피는 한인학생들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부모가 없는 시간을 틈타 친구 집으로 몰려가 술 마시는 일도 많다. 특히 10·11학년의 술·담배가 가장 흔하다.
임수영(이하 수영): 한인 여학생들도 담배를 아주 많이 핀다. 명문고로 소문난 학교 앞 정문에서도 주위 시선에 아랑곳없이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한인 여학생들이 즐비하다. 학업 스트레스 때문인지 고학년일수록 술·담배를 하는 학생 비율이 더 많은 실정이다.
양은규(이하 은규): 남녀 구분할 필요도 없이 학교 화장실은 학생 흡연자들의 집결지다. 불씨가 남은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렸다가 화재 알람이 울리는 일도 잦다. 여럿이 우르르 몰려가면 거의 백발백중 담배 피러 가는 경우다.
김 준(이하 준): 한인 학생들은 학교에서 담배를 참 많이 피는 편이다. 하지만 술·담배를 한다고 해서 일명 ‘날라리 학생’이라고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담배 피는 학생들 중에는 정말 똑똑하고 머리 좋은 친구들이 많다.
심선진(이하 선진): 정확한 비율을 집계하긴 어렵지만 담배 피는 한인학생은 고교는 물론이고 이미 중학교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남학생은 물론, 한인 여학생도 흡연자가 많다.
오진아(이하 진아): 특히 고등학생이 되면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은 착각으로 거의 대부분 술·담배를 접하게 되는 것 같다.
■학교에서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나?
이수지(이하 수지): 교사나 학교 안전요원들 가운데 일부는 학생들과 화장실에서 같이 담배를 피울 정도다.
은규: 중학생 때 한 한인학생이 주스 병에 보드카를 담아왔는데 수업시간에 친구들과 몰래 돌려 마시다가 바닥에 떨어져 깨졌는데도 교사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넘어갔다.
준: 특히 학교 앞 도로 건너편에서 학생들이 담배를 많이 피운다. 학교 관할구역 밖이어서 교사들도 학생들보고 차라리 길 건너가서 피우라고 얘기한다.
■미성년자 신분으로 술·담배는 어떻게 구입하나?
수영: 아는 선배들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지만 위조 신분증을 이용하는 한인학생들이 상당수에 달한다. 플러싱이나 맨하탄 중국 타운에 가면 위조 신분증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다.
수지: 위조 신분증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천차만별이지만 60달러 정도 내고 장만했다는 학생도 있었다.
전혜리(이하 혜리): 롱아일랜드 지역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의 학생들이 많은 편이어서 술이나 담배를 구입하는 일이 비교적 손쉬운 편이라는 얘기를 교사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술·담배를 어떻게 처음 접하나?
수지: 아버지에게서 술을 배웠다는 한인학생들이 많다. 어차피 대학 가면 술 문화를 접하게 되는 만큼 차라리 아버지한테서 제대로 배우라는 뜻으로 미성년자녀에게 술 마시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한다.
주연: 술 권하는 한국식 음식문화에도 문제가 있다. 미성년자인데도 가족이나 친지들 모임에서 친척 어른들로부터 술을 권유받았다는 한인학생들의 경험담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준: 이왕 마실 거라면,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 제대로 마시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성 교제에서 비롯된 성적인 탈선은 어느 정도인가?
지나: 한인학생들의 이성 교제는 중학교부터 이미 흔한 일이다. 어른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성관계를 하는 학생들도 상당수다. 겉으로 볼 때는 우등생이고 모범생일 것만 같은 학생들도 이미 성적으로 경험이 많은 친구들이 많다. 한인들의 문화가 단지 드러내 놓고 얘기를 하지 않을 뿐
이다.
■왜 이런 문제가 계속될까?
선진: 일단 술·담배를 하는 일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거의 매일 술·담배를 입에 달고 사는 친구들도 있다.
준: 플러싱이나 맨하탄의 한인 술집도 청소년들이 자주 드나든다. 신분증 검사도 거의 없고 미성년 청소년들을 들여보내지 않으면 아예 장사가 안되는 형국이다.
주연: 취하면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다고 생각해서 더 많이 마시는 것 같다. 어른들의 술 문화가 사회생활에 있어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인 것처럼 청소년들도 나름대로 또래집단 문화에서 사교를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청소년이 보는 탈선의 기준은?
준: 부모에게 일단 말하고 술·담배를 하면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다. 겉멋으로 피우는 것이 아니라 가정사 등 나름대로 힘든 상황과 이유가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점을 부모에게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경우도 있다. 일 때문에 바쁜 부모들이 그 정도 선에서 이해하고 넘어가는 가정도 있다.
선진: 공부 열심히 해서 성적만 제대로 받는다면 다른 나쁜 짓을 해도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많다. 부모들이 주로 원하는 것은 좋은 성적 받아 좋은 대학 가는 것이니까.
수영: 술에 취하지만 않는다면 마시는 양은 상관없다고 여기는 학생들도 꽤 있다.
■나름의 해법이 있다면?
선진: 부모세대가 늘 하는 얘기들이 앞뒤가 맞지 않는 불합리한 경우가 많아 자녀들 입장에서는 무시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부모들이 먼저 합리적인 사고로 자녀들을 대해야 할 것이다.
지나: 무조건 부모 책임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전 과목 A 성적을 받는 우수학생이라고 해도 호기심에 한두 번쯤 유혹을 느껴볼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청소년기이기 때문이다.
혜리 & 주연: 부모가 하지 말라고 하면 반항심에 오히려 더 엇나갈 수 있다. 그나마 한인들의 가치관은 미국인보다는 옳고 그름의 가치기준이 보수적인 편이어서 다행이라 할 수도 있다.
수영: 부모 자식 사이의 관계형성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가정이 많다. 부모들도 자식 문제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언어장벽이 있어도 서로 대화가 많이 필요하다.
■기타 자유 의견은?
수지: 한국인에 대한 미국사회의 이미지가 갈수록 부정적으로 변해가는 느낌이다. 타인종 학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인학생들은 술을 너무 잘 마신다’고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다보면 공부 잘하고 성실한 우수민족이라는 그간의 한국인 이미지와는 분명한 거리가 느껴진다.
준: 경력 15년의 한 교사가 처음 교직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는 한인학생들이 최고 우수했는데 요즘은 아닌 것 같다는 얘기를 들으니 왠지 한인학생들이 타인종에 학업에서도 밀리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
지나: 자녀들이 부모에 반항적이지 않고 부모 몰래 자꾸 나쁜 짓에 유혹을 느끼지 않도록 자녀에 대한 한인 학부모들의 보다 폭넓은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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