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한국신문에서 노태우전대통령의초라한 모습을 담은 사진과 그옆에“동생이내 비자금을 가로챘다”는 헤드라인 아래 노전대통령이 친동생 재우 씨와 재산을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기사는 또 노전대통령이‘소뇌 위축증’이라는, 소뇌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치료가 불가능한 희귀한 질병과 싸우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소뇌위축증은 운동신경장애와 함께 손발, 안구, 언어장애와 어지럼 증세를 가져오고, 심해지면 보행이 어려워지고 시력 또는 청각을 잃을 수 있다고 한다.
이기사를 읽고 나는 너무도 슬펐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막강한 권좌에 있던 때를 떠올리면서 지금의 초라한 노전대통령의 모습을 보니 인생무상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미납한 추징금340억원을 내기 위해 친동생과 조카, 조카의 장인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했다니 그가족들의 심경이 어땠을까. 참으로 권력이 무언지, 별안간 내머리 속엔 노태우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처음 만났던 당시의 화려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가 1992년2월, 당시 노대통령의 초청으로 31년만에 고국땅을 밟게 됐다. 내가 미국에 건너간 한국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도시의 시장이 됐다는 영광때문이었다. 1961년 당시만 해도 한국은 부패가 심했다. 문교부 시험부터 출국수속에 이르기까지 뇌물집어주기에 너무 시달려 김포 비행장을 떠날 때는‘다시는 한국에 안돌아오겠다’고 비장한 결심을 했었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 일주일도 채되기전부터 얼마나 한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지. 한국을 떠날땐 다시는 안돌아 오겠다던 나라가 그렇게 그리울수가 없었다. 부자 나라 미국보다 가난에 쪼들려 사는 내조국이 더 좋았다. 그래서‘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하는 생각을 하며 비행기에서 서울 하늘을 내려다 보는 내마음은 부풀었다.
아, 얼마나 오랜 만에 다시 밟아보는 조국 땅인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모습은 고층 건물이 빽빽한데다 짙은 안개 때문에 잘알아볼 수가 없었다. 드디어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깜짝 놀랐다. 기자들이 새까맣게 몰려와 질문을 퍼부었다. 미인 아가씨들로부터 꽃다발도 증정 받았다“. 30년만에 고국에온 기분이 어떠냐?”
“시장이 된 기분이 어떠냐?”
내가“너무 감격스럽다”고 답변했더니“어찌 그리 한국말을 잘하느냐”고 재차 묻는다. 이런 답답한 친구들, 한국사람한테 한국말을 잘한다고칭찬하다니! 자기나라말을 어찌 잊을수가있나?
정부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여의도를 향해 가면서 그빽빽한 고층 건물들을 보고 너무도 놀랬다. 여기가 바로 내가 보던 여의도란 말인가. 내가 떠나올 당시 여의도는 미군 기지였고 허허벌판이었다. 마포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 갔었다. 30년 사이에 이렇게 변하다니! 서대문을 지나고 있다는 운전기사의 설명에 열심히 차창밖을 살폈지만 도무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광화문과 옛국회의사당, 시청, 덕수궁담을 보니 옛날 어렸을때의 친구들이 생각나며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때의 감격은 아마도 평생 잊을수가없을것이다. 지금도 그때의 감격이 생생하다.
그당시 그처럼 웅장하고 화려해 보이던 국회의사당이 어찌 이리 초라해 보이나 하고 물어보니 지금은 서울시의회의 사당으로 쓰인다고 한다. 서울시청은 30년전과 조금도 달라진것이 없고 이젠 색깔이 공기 오염으로 누렇게 변해 있었다. 숙소인 롯데호텔에 도착했다. 바로 옛날의 반도호텔 자리였다. 곳곳을 대리석으로 장식해 으리으리 했고, 호텔 라운지에 폭포 등을 갖춘 호사스러움이 대단했다.
이튿날 아침에 청와대에 들어가 노태우 대통령을 면담했다. 노대통령은 활짝 웃으면서나 를 환영 해주었다.
그때의 모습과 그분의 인상이 너무나 좋았다. 지금 신문에난 그분의 초라한 모습을 비교해 보고는 인생의무상함을 또 한번 절실히 느꼈다.
그날밤 강남이란 곳을 보고 너무나 놀랐다. 내가 떠났을땐 강남이란게 없었다. 질서있게 늘어선 멋진 건물들은 말할것도 없고 길에 다니는 여자들이 모두 늘씬하게 키가 큰 멋진 미인들 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금은 많은 강남 여자들이 얼굴 마사지와 성형수술로 모두 예뻐졌고, 잘먹어서 키도 늘씬해졌고, 우리 세대는 충분히 영양섭취를 못한 탓에 자라다 말았다고 한다.
지금 많은 북한사람들이 영양실조로 인해 체구가 작은것처럼….
어쩌면 이렇게 달라질수가 있을까. 전쟁의 잿더미 폐허를 어떻게 이렇게 바꿔놓을수가 있었단 말인가. 나는그 때부터 한국 사람이라는 데 더욱 긍지를 갖게 되고 자랑스러워했다.
그해 12월초에 이번엔 미연방하원의원 당선자 자격으로 노태우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다시한번 조국을 찾게 됐다. 마침 대통령 선거가 한창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을때다. 노대통령이 이끄는 민자당의 김영삼 대통령 후보가 무척 반갑게 맞아 주었다. 김영삼후보는 나를 충북옥천의 유세장에 초대했다.
일생 처음 대한민국대통령선거 유세장에 가보았다.
유세장은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 같은데 그넓은 운동장이 사람으로 꽉찼고 구석구석마다 수십명이 모여 조그만 천막 앞에서 뜨끈뜨끈한 오뎅 같은 안주와 막걸리, 소주들을 마시는 모습도 보였다. 축제같은 분위기 였다.
무대위에 앉아 수천명의 청중들을 내려다보니 모두 검은 머리에 체격도 얼굴 색깔도 비슷한것이 미국같이 노랑머리, 빨강머리에 키가 크고 작은 여러 인종이 섞인 청중들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아하 이 곳이 바로 내조국이구나. 다 똑같이 생기고 비슷비슷해서 마음이 편했다.
김영삼 후보의 연설은 아주 짧았다. 한마디 할때마다 무대앞 배우들이 춤을 추며 노래로‘김영삼 대통령’을 세번 외치기 때문에 연설을 길게할 수도 없고 또 그연설은 듣는 사람도, 들으려고 모인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온통 축제 기분, 이상해 보이면서도 무언가 따뜻한 민족애 같은 훈훈함을 느꼈다. 한국에서 정치를 하면 얼마나 재미 있을까 하는 생각을 퍼뜩 해보았다. 아차! 나는 미국 국회의원이 아닌가. 무슨소리를하나.
김창준
한국계 첫 미연방 하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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