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로비=연합뉴스) 권정상 특파원 = 3일 저녁(현지 시간) 케냐 수도 나이로비 시내의 야야 쇼핑센터. 20대 청년 2명이 커피숍에서 나누는 대화 중간 중간에 오바마라는 이름이 튀어나온다.
아무리 피가 섞였다고는 하지만 오바마는 온전한 미국인인데, 케냐 사람들이 너무 오바마에 몰입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어지는 대답. 오바마가 케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이유가 분명히 있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오바마는 흑인이다. 그는 흑인으로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표본으로, 우리가 본받아야할 인물이다.
케냐가 오바마 `향기’에 흠뻑 젖었다. 마타투(미니버스) 뒷창에 오바마의 얼굴 사진이 나붙고 오바마 게스트하우스, 오바마 미장원 등 오바마 이름 붙이기가 유행하고, 오바마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정서적 교감이 케냐 전역에 스며들었다.
화초 수출회사에 다니는 키지토 은달리로(25)는 오바마가 케냐를 한 데 뭉치게 했다는 말로 오바마 열풍의 순기능을 단적으로 표현했다.
케냐에서는 올해 초 대통령 선거 개표조작 의혹을 둘러싼 폭력사태가 종족 분쟁으로 비화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당시 키쿠유족과 루오족 간에 발생한 유혈사태로 1천500여명이 사망하면서 두 종족 간에는 좀처럼 씻기 어려운 앙금이 자리잡고 있었으나 오바마가 유력한 미 대선주자로 떠오르고 케냐 국민이 이에 열광하는 동안 자연스레 두 종족 간 화해의 장이 펼쳐지게 됐다는 얘기다. 1982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오바마의 아버지는 루오족 출신이다.
은달리로는 루오족은 물론 키쿠유족도 한 마음으로 오바마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면서 오바마로 인해 유혈사태 이후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던 두 종족이 부지불식 간에 서로 마음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주유소 주유원인 제임스 은제루(40)는 나는 키쿠유족이지만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이는 종족을 막론하고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물론 오바마가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경우 무역, 인도적 원조 등의 측면에서 케냐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팽배하다.
아냥 니옹고 보건장관은 이날 발행된 더 스탠더드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가 승리하기를 기도하고 있다면서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글로벌 지형도에서 케냐의 위상이 제고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경비원 던칸 와투타(34)는 오바마가 2006년 케냐를 방문할 당시 키베라 등 슬럼가 빈민의 생활상을 둘러본 적이 있다면서 케냐 경제를 살려주고 빈곤 해소에 도움을 주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표출했다.
그러나 오바마가 케냐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것은 환상일 뿐이라는 견해도 일부 제기되고 있다. 중소기업에서 비서로 일한다는 아니타 에다기자(30.여)는 그는 미국인이며, 케냐 할머니와의 관계는 개인사일 뿐이라면서 우리에게 도움을 줄 일은 없을 것이며, 다만 미국 대통령으로서 흑인의 역사를 다시 쓰기 바란다고 축원했다.
jus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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