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키우면서 낯선 세상에 들어왔다. 낯선 세상이 그렇듯 일단 언어가 낯설다. 그중 하나는 반응성(reactivity)이다. 이 단어는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SNS에서 자주 보인다. 강아지의 반응성이 어떻게, 왜 발생하는지,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SNS에 넘쳐난다. 반응성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한 번 동영상을 본 대가로 알고리즘이 내게 쉴 틈 없이 들이밀어 대는 동영상들을 보면 뭔가 대단한 병인 것 같기도 하다.
알고 보니 반응성이란 짖거나 덤벼드는 행동이다. 사람을 보고, 개를 보고, 고양이를 보고,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가는 불자동차를 보고, 짖거나, 덤벼드는 행동이다. 여기저기서 얻은 정보를 종합해서 정리하면, 반응성은 강아지에게 자신감을 부여하고 충동을 다스리는 자제력을 키우는 훈련을 시키고, 한편으로는 반응성을 유발하는 요인들을 파악해서 하나씩 조금씩 익숙해지도록 끈질긴 훈련 과정을 통해 고쳐야 한다고 한다.
이 상황은 흥미롭다. 반응성은 고쳐야 하는 문제 행동으로 낙인찍혔지만, 사실 낯선 이를 보고 짖는 것은 개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인류는 몇만 년 전에 늑대와 연합 관계를 맺었다. 늑대는 사람의 삶에 들어와서 개가 되어 먹고 자고 짝짓기를 나름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빙하기의 척박한 하루를 조금 편하게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은 먹거리를 조금 나누어 주면서 개가 된 늑대에게서 어떤 이익을 얻었을까? 바로 늑대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다. 우리는 편의상 늑대와 개를 구분하지만, 이 둘은 같은 종이며, 아직도 교배할 수 있다.
우두머리가 있는 무리 생활을 하는 늑대는 사람과 무리를 짓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탁월한 사냥 솜씨로 인간을 도와서 빙하기 유럽에서 최고의 포식자라는 위치를 공동으로 차지하게 되었다. 그 뒤 재산을 모으고 정착 생활을 하게 된 인간에게 개는 같은 무리가 아닌 수상한 사람을 알아보고 경계하며 짖음으로써 침입의 위협을 알리는 한편, 큰소리로 짖거나 덤벼들어서 침입자를 쫓아내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근대사회로 들어오면서 개는 계속 집을 지키고 재산을 지키고 인명을 지켰다. 같은 무리인 가족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하지만, 수상한 사람, 주인이 지시하는 사람에게는 죽음까지도 불사할 정도고 덤벼들어 물고 놓지 않는 집요함과 충성심을 보였다. 셰퍼드와 같은 경찰견이 최고의 개가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20세기까지의 이야기다.
도시 생활을 하면서, 출산율이 줄고 인구가 줄면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개는 다시 한번 탈바꿈을 하고 있다. 이전 시대에 집 지키는 개에게 유용했던 의심 많은 성격은 이제는 ‘반응성’이라는 이름이 붙어서 바람직하지 않은, 교정해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개는 집 지키는 개가 아니라 정신없이 부산한 도시 한가운데에서도 무리 없이 잘 지낼 수 있는 개다. 21세기에는 경찰견보다 봉사견과 같은 개가 바람직한 개다. 봉사견은 차분하고 감정을 조절하여 흥분하지 않고 어떤 환경의 자극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최고의 자제력과 감정 조절 능력을 갖추고 있다.
낯선 이에게 경계심을 보이고 짖는, 어쩌면 개의 본성이라고 생각되던 행동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바뀌고 있다. 반응성을 고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차분하고 끈질기게 연습시키고, 애정을 가지고 다정하게 기다려주면 된다.
같은 행동이라도 환경에 따라 바람직할 수도, 교정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예를 들어, 주의력 산만은 학습 부진이라는 이름으로 교정의 대상이다. 하지만 주의력 산만은 언제나 교정되어야 할 행동은 아니었다. 인류의 진화 역사 중 99%를 차지하는 시간에 걸쳐 인류는 옮겨 다니며 살았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주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항상 검토하며 조금만 수상한 낌새가 있어도 즉각 알아차리고 집단에게 알려주는 사람은 그 집단이 사고를 당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옆에서 불이 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중해서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며 많은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주의력이 산만한 아이들을 보면 한숨을 쉬면서 걱정하지만, 이 행동을 문제 행동으로 만들어낸 것은 교실에 붙잡아 앉혀놓고 집중하기를 요구하는 우리 자신이다. 환경에 따라 같은 행동이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조금 더 차분하고 끈질기게 연습시키고, 애정을 가지고 다정하게 기다려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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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UC 리버사이드 교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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