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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 모두 승리하는 새해…’ ‘쥐처럼 근면성실하고 다산번성 하는 새해…’
금년 1월1일자 본보 신년특집의 제목들이다. 쥐띠 해 마지막 달을 남겨놓고 뒤돌아보면 근면성실은 맞지만 다산번성은 빗나갔다. 승리의 해와도 거리가 멀다.
요즘 한인사회에서 살 맛 난다는 사람은 눈 씻고 봐도 없다. 모두들 이민 온 뒤 이런 불경기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겨울폭풍보다 더 모진 감원바람이 연일 몰아친다. 잘 나가던 사업가 한분이 최근 파산신청을 내 큰 충격을 받았다. 필자도 신문사의 경비절감 묘안을 궁리하느라 머리가 복잡하다. 시애틀에 온 뒤 10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다.
물론 한인사회만 어려운 건 아니다. 지난 10월 푸드 스탬프를 받은 워싱턴 주민이 61만7,000여명이었다. 작년보다 7만4,000명 늘었다. 신규신청자만 4만8,000명으로 9월보다 1만2,000명이 많았다. 극빈층에 식품을 나눠주는 ‘푸드 뱅크’도 부쩍 붐빈다. 렌튼의 구세군 푸드 뱅크엔 10월에만 1만1,700여명이 몰려와 작년 10월보다 58%나 늘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 2,500여명에게 하루 두 끼 식사를 배달해주는 킹 카운티의 ‘밀즈 온 휠즈’ 프로그램도 새 신청자가 늘어나자 11~12월 두 달간 한 끼로 줄였다. 내년엔 다시 두 끼로 환원될 예정이지만 대신 신규 신청자들이 대기자 명단에 오를 수도 있다.
어쩌다가 미국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졌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동포사회에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당장 끼니가 없어 굶주리는 사람, 아파트 렌트를 못 내 쫓겨날 상황인 사람, 병에 걸렸지만 보험이 없어 자포자기한 사람도 있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자녀와 함께 가출해 보호소에 수용된 여인들도 적지 않다.
본보의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 모금 캠페인이 24일 시작됐다. 1985년 이후 23년째다. 본보는 본국 수재민 돕기 의연금은 걸러도 불우이웃 돕기 캠페인은 해마다 벌이며 동포의 화합과 상부상조 정신을 함양해왔다. 본보뿐 아니라 시애틀 양대 일간지인 시애틀타임스와 시애틀 포스트-인텔리전서도 이번 주 각각 불우이웃 돕기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경제가 어려운 데 무슨 기부금 타령이냐고 힐난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인들은 상황이 어려울수록 기부를 많이 한다. 보잉 직원들은 최근 장기파업으로 거의 두 달분 봉급을 못 받았지만 푸드 뱅크에 예년의 3배나 많은 액수를 기부했다. 미국 적십자사도, 미국 심장협회도, 페더럴웨이에 본부가 있는 월드비전도 올해 모금액이 작년 수준을 웃돌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최대 자선모금기관인 유나이티드 웨이의 전국 지부 가운데 가장 실적이 좋은 킹 카운티 지부도 올해 1억1,000만 달러의 모금목표 달성을 낙관하고 있다.
본보는 지난해 한인사회에서 3만1,500여 달러를 모아 14명의 불우이웃에 최고 3,000 달러씩 분배했다. 올해도 캠페인이 시작되자마자 벌링턴의 한인교회에서 신도들이 추수감사절 예배 때 따로 모은 1,000달러를 기탁했다. 불우이웃 돕기의 기본덕목은 ‘십시일반’이다. 큰 손 한명이 1만 달러를 내는 것보다 1,000명이 10달러씩 내는 것이 훨씬 값지다. 실제로 본보의 불우이웃 돕기 성금(Korean Emergency Fund)은 10 달러부터 접수한다.
지난 60년대에 ‘위를 보고 걷자’라는 최희준의 노래가 크게 히트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래를 보고 걸으며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할 때다. 지혜의 왕, 풍요의 왕 솔로몬은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해지고,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해질 것”이라는 잠언을 남겼다.
올해도 많은 독지가들과 업체, 교회, 사회단체, 친목단체, 동창회 등이 송년 선물이나 파티 경비를 줄여 불우이웃 구제에 참여함으로써 더 풍족해지고 더 윤택해졌으면 좋겠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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